[기고] 유엔기념 공원과 나라사랑
[기고] 유엔기념 공원과 나라사랑
  • 관리자
  • 승인 2012.05.25 14:45
  • 호수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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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식 부산시노인복지단체연합회장

 수 년 전부터 봉사활동으로 봄, 여름마다 매월 한 번씩 찾는 이곳 대연동 유엔기념 공원을 올해에도 찾았다. 그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요히 누운 외국인 용사들의 명복을 빌었다. 비석 하나하나 비둘기 똥이며 먼지를 털고 닦으면서, 한국전쟁 시 먼 길을 찾아온 용사들을 기려본다. 평화의 사도로 이곳에 와 젊음을 바친 희생에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당시 이들의 죽음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젊은이들은 이 사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걱정이 된다. 1950년 6월 25일 아침, 북한의 일방적 침공에 나라를 지키려다 수많은 국군장병이 희생됐다.

특히 이곳은 세계에서도 유일한 유엔군의 묘지로 세계평화를 위해 생명을 바친 유엔군 전몰장병이 잠들어 있다. 이러한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정부는 2007년 10월 24일 유엔기념 공원을 근대문화재 제359호로 지정해 특별히 관리하고 있다.

정문을 들어서면서 마음은 숙연해진다. 잘 가꾸어진 묘지는 꽃들로 둘러싸여 있어 이곳을 찾는 누구든 공원에서 산책하는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잠시 잊었던 애국심을 가지게 돼, 조국이 있어 내가 행복함을 새삼 느껴본다.

지난달 25일 이곳에서는 눈물겨운 만남의 시간이 있었다. 유엔군으로 함께 참전했던 캐나다의 친형제 조시프 허시와 아치볼 허시 형제의 합장 의식이 61년 만에 진행된 것이다. 형인 조시프는 1951년 전사해 이곳에 안장됐고, 동생은 귀국 후 한국에 잠든 형을 늘 생각하며 살았다.

그는 형의 곁에 묻히길 원한다는 유언을 남겼고, 캐나다정부와 한국정부간의 지원으로 경건한 안장식을 거쳐 합장한 것이다. 아치볼의 딸 데비씨는 합장을 위해 아버지의 유해를 안고 부산을 찾았다.
당시, 스물한 살 난 청년이었던 아치볼 허시는 캐나다 몬타리오 주의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직장을 그만 두고 한국전쟁에 참전을 결행했다. 형은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마찬가지로 다니던 직장을 뒤로 하고 동생에게 알리지 않은 채 한국전에 참가한다. 안타깝게도 형은 1951년 10월 13일 치열한 전투에서 총상을 입고 나서야 동생을 만나게 된다. 이후 동생은 자신을 위해 희생한 형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살다가 지난해에 유언을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순애보적인 형제애에 감동을 받아 정부는 이번 합장식에 최대한 예우를 다했다. 정부 관계자는 두 형제가 양국 간의 선린우호의 상징으로 남아,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는 좋은 사례로 우리 국민의 가슴속에 남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시민은 깊은 역사가 담긴 유엔기념공원을 얼마나 찾아봤을까. 아마 미약한 수준일 것이다.

우선 모든 학교의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순례코스를 들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멀리 갈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인도로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유엔참전 용사들에게 보다 많은 관심을 갖도록 지도하는 것이다. 말로만 하는 애국이 아니라, 진정 가슴으로 나라사랑을 느낄 수 있는 6월 보훈의 달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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