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노인 빈곤문제와 새로운 노동체계
[금요칼럼] 노인 빈곤문제와 새로운 노동체계
  • 관리자
  • 승인 2012.05.25 14:46
  • 호수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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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록 대한노인회 중앙회 사무총장/국립 한국재활복지대학 교수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나라 노인의 빈곤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OECD가 발간한 보고서(Pensions at a Glance 2009)를 보면, 상대빈곤의 개념에 기초할 때,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빈곤비율은 45.1%로서 노인인구의 절반 정도가 빈곤층이다. 동시에 우리나라 노인의 빈곤비율은 전체인구의 빈곤비율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은 수준으로 우리나라 노인의 소득수준은 전체인구의 소득수준에 비해 매우 낮다.

이러한 현실에서 관건은 노인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방식이다. 먼저 우리나라 노인의 소득구성을 살펴보면 공적 이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낮고 근로소득의 비중이 높은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연금제도가 미흡해 생계를 위해 일해야만 하는 노인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일을 해서 빈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 노력하지만, 저임금으로 인해 빈곤으로부터의 탈피는 여전히 어렵다는 것이다. 즉 임금을 받고 일하는 65~79세의 고령층 중 77.2%가 저임금을 받고 있으며, 법정 최저임금보다 낮은 초저임금 고용도 59.6%에 달하기 때문이다.

한편 노년기 이전의 소득불평등이 노년기에도 지속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고령층으로 갈수록 저임금 일자리에서 탈출할 확률이 적었다. 청년층은 47.9%가 두 번째 일자리에서 저임금을 벗어난 반면, 중장년층이 저임금 일자리를 벗어날 확률은 29.5%였고, 고령층의 확률은 13%에 불과했다. 이는 곧 현실적으로 임금노동은 노년세대의 빈곤탈피를 위한 수단으로서 부적합함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노인들은 노후 생활보장이 결핍된 상태에서 임노동 시장을 맴돌며 자구책을 찾고 있다. 정부정책 역시 소위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라는 발상에 기초해 고령자를 노동시장에 더 오래 머물도록 하기 위해 공급측면에서 조기은퇴에 대한 유인을 줄이고, 수요측면에서 고령자 고용비용을 낮추고 능력개발을 통해 고용기회를 확대하겠다는 식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러한 접근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공식적 은퇴 시기는 가장 빠르지만 실질적 은퇴 시기는 가장 늦다. 공식적 은퇴 후에도 노동을 통해서 생계유지의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노동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고 적정 임금을 받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국가차원에서 노인들이 빈곤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소득을 보장하고 근로기간 동안 유지했던 생활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연금제도를 개선해야 하지만 급속히 늘어나는 노인 인구에 대응하기엔 현실적으로 기대난망이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은 현재 “용돈” 수준의 기초노령연금을 확대하겠다고 한다. 물론 기초노령연금은 당연히 증액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장기적으로는 수십조 원이 소요되는 증액 논의에 재원확보 방안이 사실상 결여돼 있다는 것이다. 한정된 재원을 모든 노인인구에게 나누어 주기는 어렵다. 지금도 기초노령연금은 취업자 2400만 명이 1년에 1인당 15만4000 원씩 부담해야 하는 큰 액수인데 세금을 더 걷지 않는 한 다른 복지예산을 줄이거나 국가채무를 늘려야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게다가 기초노령연금이 A값(국민연금 가입자 전체 평균소득월액의 3년치 평균액)의 10%로 상향된다고 하더라도 노인 빈곤비율은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노인의 상당수가 매우 빈곤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급여수준을 상향해도 노인의 빈곤을 일부 개선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기초노령연금을 “용돈” 수준으로 모든 노인에게 제공할 것이 아니라, 더 빈곤하고 필요한 이들에게 집중하는 전략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 물론 향후, 기초노령연금을 노인 100%에 제공하는 보편적인 기초연금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한정된 재원으로 인한, 용돈수준의 급여를 탈피하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고 결국 대상을 제한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빈곤으로부터 노후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노인빈곤 문제는 임노동 시장으로부터 배제에서 비롯된다. 필요 노동력만 수용해야 하는 임노동시장의 기제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러면 국가가 소득보장을 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결국 노동의 개념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노동체계를 구축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산업혁명 이후 지속돼 온 노동력의 가치에 따라 임금을 지불하는, 그래서 노인에게는 부적합한 시장노동 유일체계에서 탈피, 공동체노동을 창출해 노동의 다원체계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공동체노동의 개념의 핵심은 노동기회 상실에 따른 소득보장이다. 따라서 빈곤계층 노인에게는 빈곤탈피 효과가 나타나도록 실질적 연금으로 증액함과 동시에, 건강한 노인들에게는 사회적 생산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노인주도형” 사회적 기업과 “노인이기에 가능한” 일자리 등 공동체 노동을 창출하는 데 재정을 과감히 투자해 새로운 노동체계를 구축한다면 이는 현 노인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노인세대에게도 이전됨으로써 고령사회 대응 세대 간 통합은 물론 장기적으로 국가재정의 효율성도 높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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