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여성 독립운동가②
권기옥(權基玉, 1901.1.11~1988.4.19)
시로 읽는 여성 독립운동가②
권기옥(權基玉, 1901.1.11~1988.4.19)
  • 관리자
  • 승인 2012.06.01 15:22
  • 호수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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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해설=시인 이윤옥

황거를 폭격하리라,
한국 최초의 여자 비행사 권기옥

은단공장 키 작은 어린 소녀
훨훨 하늘을 날고 싶은 꿈
스미스 아저씨 여의도 상공에서 곡예비행 하던 날
조그만 주먹 불끈 쥐고 꿈꾸었지

하늘을 날아야겠다
하늘을 날아야겠다

숭의여학교 시절
기숙사 사감 호시코 따돌리고
만세운동 부르다 쫓기던 몸

중국 땅 비행학교 들어가
대륙의 하늘을 날면서
암흑의 조선 땅 바라보며 가슴 태웠지

높은 창공 조종간 돌려
아시아 침략에 눈 벌겋던
일왕의 도쿄 황거 폭격코자
몇 번이나 다짐한 마음
장개석 휘하 혁명군 되어
일본군 상대로 싸우던 11년 세월
꿈에도 놓지 않던 조국 광복의 꿈

군복 벗고 비행기 내려와
백발 할머니 되었어도
카랑카랑하던 목소리
독수리같이 불타던 두 눈동자
큰 날개 접은 적 없는 한국 최초의 여자비행사.


▲ ▲1935년 중국 선전비행을 준비하던 무렵의 권기옥(왼쪽에서 두 번째), 가운데 이탈리아 교관과 중국 최초의 여자 비행사 이월화와 함께.
‘한국인 최초의 여자 비행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권기옥은 1919년 평양에 있는 숭의여학교 졸업반 때 운명적으로 3·1 독립만세 운동과 조우했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항일투쟁에는 무조건이었습니다. 감옥이 아니라 죽음도 두렵지 않았지요. 나이가 어리고 여자라는 게 참으로 원통했습니다. 그때 하늘을 날며 왜놈들을 쉽게 쳐부술 수 있는 비행사가 되려고 마음을 다졌지요.” 환갑 나이이던 1961년 ‘여원’ 잡지 7월호에서 권기옥은 당시를 그렇게 회상했다.
권기옥은 3·1 만세운동 이후 임시정부에 자금을 모아 송금하는 일을 했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출감 후에는 독립전쟁을 위한 군관 양성을 추진하고 있던 임시정부의 추천을 받아 1923년 4월 중국의 운남육군항공학교(雲南陸軍航空學敎)에 제1기생으로 입학하게 된다. 비행학교 시절 권기옥은 훈련비행 9시간 만에 단독비행이 허가될 만큼 우수한 학생이었다. 1925년 2월 28일 권기옥은 운남항공학교 제1기생으로 졸업해 여성으로서는 한국 최초의 비행사가 됐다.
이후 권기옥은 북경에 위치한 군벌 풍옥상군의 항공대에 들어갔고, 1932년 만주를 기습 점령한 일본이 상해전쟁을 일으키자 비행기를 몰고 일본군에게 기총소사를 한다. 이 상해전쟁에서 활약한 공로로 권기옥은 무공훈장을 받았다.
1935년 당시 항공위원회 부위원장이던 송미령이 비행기가 무서워서 공군에 자원하지 않는 중국 청년들을 독려하기 위해 여류비행사 권기옥에게 선전비행을 부탁했다. 권기옥은 그 비행을 마치고 일본 폭격을 마음먹었으나, 선전비행 출발 당일 북경의 대학생 시위로 정국이 불안해지자 계획 자체가 취소된다.
1939년 임시정부가 충칭으로 옮겨오자 권기옥은 좌우로 분열돼 있던 부인들을 설득해 임시정부 산하의 여성 조직인 한국애국부인회를 재건하고 사교부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1943년 여름 권기옥은 중국 공군에서 활동하던 최용덕, 손기종 비행사 등과 함께 한국 비행대 편성과 작전계획을 구상한다. 1945년 3월에 임정 군무부가 임시의정원에 제출한〈한국광복군 건군 및 작전 계획〉중 ‘한국광복군 비행대의 편성과 작전’이 그 결실이었다. 미국과 중국에서 비행기를 지원받아서 한국인 비행사들이 직접 전투에 참여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예상보다 일찍 패망해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다. 정부에서는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시로 읽는 여성 독립운동가’는 민족시인 이윤옥 씨가 집필한 시집‘서간도에 들꽃피다’의 내용을 요약·정리한 것입니다. ‘서간도에 들꽃피다’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집대성한 최초의 시집으로 저자가 10여년 동안 중국, 일본을 비롯한 전국을 누비며 수집한 사료를 토대로 구성됐습니다. ‘시로 읽는 여성 독립운동가’를 통해 역사 뒤편에 묻혀있던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행적과 업적,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문의 02-733-5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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