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읽는 이슈이슈] “강제징용 한국인에 日기업 배상하라”
[쉽게 읽는 이슈이슈] “강제징용 한국인에 日기업 배상하라”
  • 관리자
  • 승인 2012.06.01 16:15
  • 호수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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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초, 한국 청년들은 제철소에 취업을 시켜준다는 광고를 보고 오사카로 떠났지만 그들이 받은 것은 ‘징용장’이었다. 청년들은 뜨거운 용광로 앞에서 ‘정신봉(몽둥이)’으로 맞아가며 하루 10시간씩 중노동을 하고 임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이로 인해 긴 세월 가슴 속에 한을 품고 살아온 강제징용 피해자 여운택씨 등 9명은 마침내 대법원으로부터 승소판결을 받았다.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패소판결을 받은 후, 한국 법원의 1·2심에서도 연이어 패소한 끝에 얻은 결과였다. 하지만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금이 언제쯤, 얼마나 돌아가게 될지 확실히 정해진 것은 없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을 내리기까지 경위, 판결의 의미와 향후 집행 여부·방식 등을 알아본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한’ 풀다
대법원은 5월 24일 일본 기업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드디어 눈물겨운 승소 판결을 받았다. 지난 1995년부터 일본에서 소송을 시작한지 12년만의 승소 판결이었다. 이번 소송을 위해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2년 전이었다. 이번 판결은, 미쓰비시중공업이 원고 5명에게 각 1억100만원씩, 신일본제철은 원고 4명에게 각 1억원씩 지급하도록 했다.

그러나 법원 판결의 영향력은 국내에서만 효력을 갖기 때문에 일본 기업으로부터 실제로 배상 받을지는 불투명하다. 해당 일본 기업이 국내에 자산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에 따라 원고의 배상 여부도 결정되기 때문이다.

미쓰비시의 경우 한국에 지사가 있어 배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신일본제철은 한국 지사가 없어 배상 가능성이 희박하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추가 소송이 이어질지, 1인당 배상이 얼마일지, 유사 소송은 얼마나 이어질지 지금으로써는 예측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헌법적 가치를 근거로 이뤄진 판결”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원심 재판부의 패소를 뒤집은 것이어서 획기적인 결과로 평가된다.

원심 재판부는 당시 ‘기판력’을 근거로 일본에서 확정된 판결을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기판력이란 확정된 재판의 판단 내용이 소송당사자와 후속법원을 구속하고, 이와 모순되는 주장·판단을 부적법한 것으로 하는 소송법상의 효력을 말한다. 또한 10년의 시효 소멸, 전쟁 전 회사와 현 회사의 법인이 다르다는 점 등을 주요 근거로 원고 패소를 확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는 헌법 전문 등 헌법의 가치와 원고측이 패소한 모든 근거가 정면으로 충돌한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일본 판결에 대한 기판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일본의 판결이 일제강점기의 동원 자체를 불법이라 보는 국내 헌법의 가치와 배치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시효에 관해서도 “원고 등이 이 사건 소를 제기할 시점인 2000년 5월까지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봐야한다고 판결했다.

또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현행법령으로서 대한민국 법질서에 편입된 일본의 법례(법률 제 10호)는 법인의 동일성 여부는 설립준거지법이나 본거지법에 의해 판단한다고 밝히고 있다”며, 이를 토대로 소송의 대상이 되는 일본 기업은 실질적으로 동일성을 갖는다고 보고 있다.

대법원은 1965년 체결한 한일청구권협정을 근거로 한 청구권 소멸도 마찬가지로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봤다. 근거는 국가와는 별개로 법인격을 가진 국민 개인의 동의 없이 국민의 개인청구권을 직접적으로 소멸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헌법의 정신을 오롯이 반영하고 있는 이번 판결로 인해, 강제징용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들은 통한의 응어리를 늦게나마 풀게 됐다.

▲실제 집행 여부·방식에 ‘주목’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는 22만명, 유족까지 포함하면 100만명이 넘는다고 추산하고 있다. 손해배상 청구권은 상속되기 때문에 현재 고령층인 피해자가 사망해도 유족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미쓰비시중공업에 소송을 낸 박창환씨 등 5명도 소송 도중 숨져 유족들이 대신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번 판결과 집행은 강제징용 피해자뿐만 아니라 유족까지 포함하는 잠재적 원고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실질적인 집행이 어떻게 이뤄질 것인가에 대해서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한국에 지사가 없는 신일본제철의 경우, 포스코 등에 투자한 돈이 있지만 이를 강제적으로 회수할 수 있을지 여부는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

일본 기업이 자발적으로 판결을 수긍하고 배상을 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을 수용하지 않는 일본 기업의 법적 이의제기가 연이을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집행 과정을 떠나, 판결 자체가 갖는 역사적 의미는 상당히 크다. 그간 한일청구권협정을 근거로 일제강점기 당시의 과거사를 방관해 왔던 것과 달리, 이번 판결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승소뿐만 아니라 한일청구권협정의 위헌성까지 명확히 밝혔기 때문이다.

그간 실제적인 역사 현실을 외면한 채 협정과 법리 등을 교조적으로 해석, 일제강점하의 피해자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줬던 사법부의 태도가 전환되는 새로운 국면이라 볼 수 있다. 이다솜 기자 soyo@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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