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여성 독립운동가③ 김락(金洛,1863.1.21~1929. 2.12)
시로 읽는 여성 독립운동가③ 김락(金洛,1863.1.21~1929. 2.12)
  • 관리자
  • 승인 2012.06.08 13:16
  • 호수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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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해설=시인 이윤옥

 독립운동가 3대 지켜 낸 겨레의 딸,
아내 그리고 어머니 ‘김락’

나라의 녹을 먹고도 을미년 변란 때 죽지 못하고
을사년 강제 조약 체결을 막아 내지 못했다며
스무나흘 곡기를 끊고 자결하신 시아버님

아버님 태운 상여 하계마을 당도할 때 마을 아낙 슬피 울며
하루 낮밤 곡기 끊어 가시는 길 위로 했네

사람 천석 글 천석 밥 천석의 삼천 석 댁 친정 큰 오라버니
백하구려 모여든 젊은이들 우국 청년 만들어
빼앗긴 나라 찾아 문전옥답 처분하여 서간도로 떠나던 날
내앞 마을 흐르던 물 멈추어 오열했네

의성 김 씨 김진린의 귀한 딸 시집와서
남편 이중업과 두 아들 동흠 중흠 사위마저
왜놈 칼 맞고 비명에 보낸 세월

쉰일곱 늘그막에 기미년 안동 예안 만세운동 나간 것이
무슨 그리 큰 죄런가
갖은 고문으로 두 눈 찔려 봉사 된 몸
두 번이나 끊으려 한 모진 목숨 11년 세월
그 누가 있어 한 맺힌 양가(兩家)의 한을 풀까

향산 고택 툇마루에 걸터앉아
흘러가는 흰 구름에 말 걸어본다
머무는 하늘가 그 어디에 김락 애국지사 보거들랑
봉화 재산 바드실 어르신과 기쁜 해후 하시라고
해거름 바삐 가는 구름에게 말 걸어본다.



◆독립운동가 3대를 지켜낸 민족의 어머니
3·1만세운동 당시 김락은 쉰여섯이었다. 우국지사 시아버지의 단식과 남편의 순국에 이은 두 아들의 독립운동을 몸소 겪은 김락은 친정 집안 역시 대단한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1911년 1월 전 가족을 이끌고 서간도 유하현(柳河縣)으로 망명한 친정 오라버니 김대락은 이상룡·이동녕·이시영 등과 뜻을 같이해 항일투쟁을 전개한 인물이다.
김락이 3·1운동에만 나선 것은 아니다. 그는 독립운동가 3대를 지켜낸 중심인물이다. 열다섯 살에 안동 도산면 하계마을로 시집 가서, 양산현령을 지낸 이만도의 맏며느리이자 이중업의 아내가 됐다. 새댁 시절 시어머니를 여읜 그는 시누이와 시동생을 돌보며 안방 주인으로서 집안을 도맡았다. 그런데 1895년 시아버지는 예안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이 됐고, 남편도 마땅히 함께 나섰다. 일제의 공격으로 이웃 퇴계 종가가 불타는 황망한 가운데서도 그는 흔들리지 않고 집안을 지켰다. 48세 되던 1910년, 나라가 망하자 시어른은 24일 간의 단식 끝에 순국했다. 장례를 치르고 상복에 눈물도 마르지 않았는데, 아버지처럼 여기던 큰오빠 김대락과 김동삼 등 친정 집안이 대거 만주로 망명길에 나섰다. 큰 형부 이상룡 집안도 함께 갔다. 서간도에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떠난 고난의 길이었다.

◆두 눈을 잃고도 멈출 수 없었던 애국운동
그의 남편과 두 아들도 독립운동에 나섰다. 1914년 남편 이중업은 안동과 봉화 장터에 격문을 돌렸다. 맏아들 이동흠은 대한광복회에 가담했다가 구속됐다. 1919년 3·1운동 당시 서울에서 활동하던 남편은 ‘파리장서’라 불리는 독립청원서를 발의하고, 강원도와 경북 지방 유림 대표의 서명을 받는 일을 맡았다. 바로 이때 김락은 57세의 나이에 예안면 만세운동에 나섰다가 일본군 수비대에 붙잡혔고, 취조를 받다가 두 눈을 잃는 참극을 당했다.앞을 못 보고 귀로만 듣고 살던 터에 다시 놀라운 일과 마주쳤다. 독립청원서를 가지고 중국으로 떠나던 남편이 갑자기 사망한 것이다. 한숨짓는 사이에 맏사위 김용환이 일제에 붙잡혔다. 학봉 김성일의 종손인 맏사위는 만주 독립군 기지를 지원하던 의용단에 가담했던 것이다. 김용환은 ‘조선 최대의 파락호’ 소리를 들으며 노름꾼으로 위장해 독립자금을 댔다. 그 바람에 요즘으로 치면 100억 원이 훌쩍 넘을 종가 재산이 거덜 났다. 둘째 사위 류동저는 안동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둘째 아들 이종흠은 1925년 제2차 유림단 의거에 참여했고, 그 바람에 두 아들이 모두 잡혀갔다. 이런 사이 두 번이나 자살하려다 가족들 손에 살아난 그는 1929년 2월, 67세 나이로 눈을 감았다.

◆누구도 찾지 않는 독립운동가의 무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또한 안동에서 매년 6월 그의 애국정신을 되살려 인형극과 뮤지컬을 공연한다고 한다. 이는 ‘겨레의 딸, 아내 그리고 어머니’의 삶을 제대로 기리기 위해서다.35년 동안 김락의 시가와 친가에서는 뜨거운 독립운동의 해가 뜨고 졌다. 그 한가운데 김락이 있었다. 그를 중심으로 3대에 걸쳐 독립운동이 펼쳐졌다. 현재 그의 사진 한 장 없다. 그가 시집가서 살던 하계마을은 1970년대 안동댐 건설로 수몰됐다. 쓸쓸하고 횡한 마을에 독립운동 내력을 전하는 기적비만 남아 있다. 김락 여사의 무덤을 찾기 위해 수소문했지만 그 주소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김락 여사의 친정 오라버니의 후손 김시중 선생을 통해 안동에 모셔진 묘지를 겨우 찾았지만 그의 인생처럼 이름없이 조용히 묻혀 있었다. 독립운동가의 묘라고는 상상도 못 할 정도였다. 먼 곳에서 김락 여사의 무덤이나마 보고 싶어 찾아가는 길손을 위해서라도 현재의 무덤 가는 길에 안내판이라도 곳곳에 세워줘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덤 앞에서 절이라도 할 수 있게 좁디좁은 상석 자리도 약간 넓혀주면 좋겠다. 

‘시로 읽는 여성 독립운동가’는 민족시인 이윤옥 씨가 집필한 시집 ‘서간도에 들꽃피다’의 내용을 요약·정리한 것입니다. ‘서간도에 들꽃피다’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집대성한 최초의 시집으로 저자가 10여년 동안 중국, 일본을 비롯한 전국을 누비며 수집한 사료를 토대로 구성됐습니다. ‘시로 읽는 여성 독립운동가’를 통해 역사 뒤편에 묻혀있던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행적과 업적,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문의 02-733-5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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