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여성 독립운동가④ 김향화(金香花, 1897. 7. 16 ~ 미상)
시로 읽는 여성 독립운동가④ 김향화(金香花, 1897. 7. 16 ~ 미상)
  • 관리자
  • 승인 2012.06.15 14:54
  • 호수 3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해설=시인 이윤옥

 

수원의 논개 33인의 꽃, 김향화

하얀 소복 입고 고종의 승하를 슬퍼하며
대한문 앞 엎드려 통곡하던 이들

꽃반지 끼고 가야금 줄에 논다 해도 말할 이 없는
노래하는 꽃 스무 살 순이 아씨

읍내에 불꽃처럼 번진 만세의 물결
눈 감지 아니하고 앞장선 여인이여
춤추고 술 따르던 동료 기생 불러 모아
떨치고 일어난 기백

썩지 않은 돌 비석에 줄줄이
이름 석 자 새겨주는 이 없어도
수원 기생 서른세 명
만고에 자랑스러운 만세운동 앞장섰네

김향화 서도흥 이금희 손산홍 신정희
오산호주 손유색 이추월 김연옥 김명월
한연향 정월색 이산옥 김명화 소매홍
박능파 윤연화 김앵무 이일점홍 홍죽엽

김금홍 정가패 박화연 박연심
황채옥 문롱월 박금란 오채경
김향란 임산월 최진옥 박도화 김채희

오! 그대들 수원의 논개여!
독립의 화신이여!


▲ 청초한 김향화 모습. 기생의 몸으로 독립운동을 한 사람도 있는데 그때 친일 안한 사람 어딨냐는 궤변은 이제 듣지 않길 바란다.
1919년 3월 1일 일제 침략에 항거하는 전국적인 독립만세 운동은 수원 지방에서도 있었다. 매일신보 1919년 3월 29일자에 보면 ‘수원은 3월 25일 이후 4월 4일에 이르는 동안 읍내를 비롯해 송산, 병점, 오산, 발안, 의왕, 일형, 향남, 반월, 화수리 등 군내 각지에서 연이어 시위가 있었는데 대체로 수백 명이 모였으며 더욱 장날을 이용한 곳에서는 천여 명이 넘었다. 일경의 발포로 수십 명이 사상되고 수백 명이 체포됐는데 29일 읍내 만세 때는 기생일동이 참가했고 기생 김향화가 구속됐다’라는 기사가 눈에 띈다.

행화(杏花), 순이(順伊)라는 이름으로도 불린 김향화는 3월 29일 경기 수원군 자혜병원 앞에서 기생 30여 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불렀다. 그는 수원 기생조합 출신으로 건강검진을 받으려고 자혜병원으로 가던 중 동료와 함께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주도해 의기(義妓)로서 기상을 높였다. 서슬 퍼런 일제 강점기에 경찰서 앞에서 독립만세를 주도했다는 것은 강심장이 아니고는 행동에 옮기기 어려운 일이다.

김향화가 속한 기생조합은 1914년 이후 일제에 의해 일본식 명칭인 ‘권번’으로 바뀌게 됐는데 권번은 파티나 연회장에서 시중을 드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에서 유래한다. 이것은 일본 내 기생들의 기관이자 기생학교였던 ‘교방’의 기능을 민간에서 모방한 것으로 대정(大正·1912~1926) 기간에 일본에서 예기들의 조합을 좁혀서 ‘칸반(爛番)’이라고 했고, 조선총독부는 그 한자음을 따와 ‘권번’ 시대를 열어갔다. 권번은 어린 기생들에게 노래와 춤을 가르치고 요릿집 출입을 지휘하는 역할을 했는데 김향화는 특히 검무와 승무를 잘 추고 가야금을 잘 뜯던 일등 기생이었다.

김향화를 비롯한 수원기생들은 고종 임금이 돌아가셨을 때도 나라 잃은 설움을 토해냈다. 당시 고종 임금의 승하 발표가 나자 기생, 광대, 배우들은 모두 휴업을 하고 근신에 들어갔다. 그리고 덕수궁 대한문 앞에 백성이 모여 곡을 할 때 기생들도 함께 참여했다. 1월 27일 고종 장례에 맞춰 수원기생 20여 명은 소복을 입고, 나무 비녀를 꽂고, 짚신을 신고 수원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 대한문 앞에서 ‘망곡’(국상을 당해 대궐 문 앞에서 백성이 모여 곡을 하는 것)을 하기도 했다.

이렇듯 김향화를 중심으로 한 수원기생들의 애국 혼은 불타올랐다. 그러나 만세운동 이후 김향화의 행적은 전해지고 있지 않아 안타까움을 더한다. 이에 수원시에서는 김향화의 공훈을 기려 국가에 공훈 심사를 올린 결과 200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시로 읽는 여성 독립운동가’는 민족시인 이윤옥 씨가 집필한 시집 ‘서간도에 들꽃피다’의 내용을 요약·정리한 것입니다. ‘서간도에 들꽃피다’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집대성한 최초의 시집으로 저자가 10여년 동안 중국, 일본을 비롯한 전국을 누비며 수집한 사료를 토대로 구성됐습니다. ‘시로 읽는 여성 독립운동가’를 통해 역사 뒤편에 묻혀있던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행적과 업적,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문의 02-733-5027)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