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노인취업 예산 갈등 ‘밥그릇’ 아닌 ‘감정’ 다툼
[기고] 노인취업 예산 갈등 ‘밥그릇’ 아닌 ‘감정’ 다툼
  • 관리자
  • 승인 2012.06.22 15:34
  • 호수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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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배승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디자인학과

 노인과 청년의 갈등은 역사적으로도 수 천 년 동안 지속돼 왔다. 시대를 막론하고 청년들은 ‘이제 그만 그 자리에서 좀 비켜줬으면’ 하는 자세로 윗세대를 몰아내려 했다. 노인들은 젊은이의 존경을 억지로 이끌어내려 권위를 앞세웠다. 4000년 전 바빌로니아 점토판에서 ‘요즘 젊은 것들은 너무 버릇이 없다’라는 문장이 나왔다고 한다. 앞으로 4000년 후엔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라는 문장이 메모된 스마트폰이 발견될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 노인과 청년의 갈등이 직접적으로 빚어지고 있는 사안이 노인 취업 예산이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노인 취업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됐다. 이를 위한 예산이 편성 되자 한편에서는 청년들이 취업을 못해 나라의 미래가 어두운 판국에 그럴 예산이 어디 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밥그릇 싸움 같아 보이는 이 세대 싸움은 사실 이권 싸움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노인 취업’은 미래에 결국 노인이 될 청년들에게도 중요한 문제이다. 마찬가지로 다음 세대에게는 지금의 청년실업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노인과 청년의 일자리 문제는 동시에 해결해야 할 것이다. 어떤 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다. 문제의 핵심을 들여다보면 이는 결국 밥그릇의 문제가 아니라, 노인층과 청년층 간의 앙금이 오랫동안 쌓여 만들어진 감정싸움인 것이다.

솔직하게 이야기해보자면, 노인층은 대한민국이 이와 같은 성장을 이룬 데에 큰 역할을 했으며 사회적으로 마땅히 대우를 받아야 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만한 존경이 되돌아오지 않아 화가 난다. 청년층은 사회에서 무언가를 해보기도 전에 박탈감을 느끼는데 그 박탈감을 제공하는 이들이 어른들이라고 생각해 화가 난다. 때문에 이런 감정싸움을 해결하는 것이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감당할 수 있는 감정의 폭이 넓은 노인층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20대는 그 어느 시대의 20대보다 허약하다.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학원의 시간표에 맞춰 보냈기 때문에 성인이 되기 전에 쌓은 경험치가 그 어느 세대보다 적기 때문이다. 이는 곧 감당할 수 있는 감정의 폭을 좁게 만든다. 감당할 수 있는 감정의 폭이 좁은 사람을 지속적으로 압박하면, 그 사람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나쁘게 말하면 지금의 20대는 통째로 소인배가 되었다는 뜻이고, 마음 기댈 곳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노인층은 전쟁 직후의 위기 상황을 극복해냈다는 자부심이 있고, 중년층은 민주국가를 이뤄낸 자부심이 있다. 우리세대가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을 갖고 있는 중·장년층과 20대의 분위기는 다르다. 지금의 20대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 훨씬 많은 공부를 했지만 이전 세대보다 해낼 수 있는 것이 적다고 느낀다.

청년층이 노인취업 예산안에 발끈하는 건 결국 밥그릇을 빼앗겨서가 아니라 박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세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20대들에게 그들의 문제에 공감해주고 한 목소리를 내주는 역할을 노인층이 해준다면 이런 감정적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풀릴 수 있다. 더 나아가 노인취업 문제를 해결할 더욱 창의적인 방법을 20대가 끌어내도록 할 수도 있다. 지금의 20대에겐 “네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런 거야”라고 나무라는 아버지가 아닌 “누가 그랬어?”라며 다독여주는 할머니가 아주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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