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노인학대, 고령화의 어두운 그늘
[금요칼럼] 노인학대, 고령화의 어두운 그늘
  • 관리자
  • 승인 2012.06.29 11:37
  • 호수 3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정란 한서대학교 노인복지학과 교수

 지난 6월 15일은 ‘제 7회 세계 노인학대 인식의 날’이었다. 노인학대 인식의 날이 주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노인학대에 대해 바르게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1년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 중 13.8%가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즉, 노인 7명 중 1명 꼴로 학대를 당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에 대한 효와 어른에 대한 공경을 중시하는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에서 노인학대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는 노인학대를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알면서도 노인학대를 감추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우가 상당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노인학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이미 사회 문제의 하나가 돼가는 노인학대에 대해 정확히 알고 그 문제를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흔히 학대라고 하면 신체적인 폭행이나 가혹 행위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학대의 범위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다양하다.

노인학대는 신체적 폭력은 물론이고, 정신적·정서적·성적 폭력과 경제적 착취 그리고 방임이나 유기까지 모두 포함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노인학대의 사례는 정서적 학대와 방임의 형태다. 정서적 학대란, 노인을 무시하거나 겁을 주는 행위, 혹은 위협하거나 협박하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거나 비웃는 등의 행위를 포함한다. 또 방임은 식사나 필요한 약을 제때 주지 않거나 신체적 수발이나 보호가 필요한 노인에게 수발과 보호를 제공하지 않는 것, 그리고 의도적으로 필요한 보건·복지·의료 서비스 제공을 거부하는 것을 말하며, 노인을 따돌리거나 고립시키는 것도 방임에 해당된다. 노인학대 중 가장 많은 사례가 노인만 따돌린 채 다른 가족들끼리 외출하거나 대화에 노인을 끼어주지 않거나 노인의 말을 못 들은 척 무시하는 등의 방임과 정서적인 학대다. 얼핏 듣기에 뭐 그 정도가 학대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러한 반복적인 무시와 따돌림은 노인에게 심각한 정서적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

그 외에도 노인에게 욕을 하거나 모욕감을 주고 비난하거나 놀리는 것 같은 언어적 학대와, 노인의 재산이나 돈을 탈취하거나 노인의 동의 없이 맘대로 자기 명의로 변경하는 것, 무단으로 노인의 신용카드나 소유물을 사용하는 것, 연금 등을 가로채는 것, 노인 소유의 부동산을 무단으로 처리하거나 생활비나 용돈 등을 주지 않는 등의 경제적 학대,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를 하거나 합의 없이 성적 접촉을 하거나 성희롱, 성추행을 하는 등의 성적 학대, 보호자 또는 부양의무자가 노인을 버리는 유기 등도 학대에 속한다. 이러한 노인학대의 구체적인 범위와 형태에 대한 이해는 노인학대 행위를 감시하고 예방하기 위한 기초가 된다.

다음으로 노인학대 인식의 날이 주는 두 번째 의미는 노인학대에 대한 예방과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노인학대와 관련해 충격적인 사실은 노인에 대한 학대가 주로 자녀나 배우자 등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벌어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만큼 많은 노인들이 학대에 노출돼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학대는 특수한 상황에 처한 노인들에게 국한된 위험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노인학대가 가장 많이 발생한 장소는 노인 자신의 가정 내였으며, 그런 학대의 대부분이 주 1회 이상 혹은 매일 발생할 정도로 자주 일어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즉, 흔히 노인이 가장 안전하게 보호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정 내에서 가족에게 주기적으로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더 이상 노인학대를 개인적인 문제로만 봐넘겨서는 안 되며, 구체적이고 제도적인 보호대책이 강구돼야 한다. 이에 정부에서는 2004년 노인복지법을 개정하고 전국 16개 시도에 노인보호전문기관을 지정했으며, 현재는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 1개소와 23개소의 지방노인보호전문기관이 설치,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노인학대에 대해서는 가족의 문제라는 인식이 강하고 학대의 범위나 유형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어서 신고나 상담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물론 노인학대에 있어 엄중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노인학대에 관한 인식 교육과 상담, 그리고 학대 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한 복지 서비스 등 예방적인 차원에서의 문제해결이 더 중요하다. 또한 피해 당사자인 노인 뿐 아니라 학대 가해자와 피해 노인이나 가해자의 가족 등 대상 면에서도 폭넓은 접근이 필요하다.

앞으로 고령화가 진전될수록 우리 사회에서 노인부양에 대한 중압감은 더 커질 것이고, 노인의 입장에서도 스스로의 희망과는 무관하게 가족을 비롯한 누군가에게 부담스런 짐이 돼 살아가야 할 시간이 더 길어질 것이다. 따라서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노인학대의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누구나 학대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고, 또는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언제까지나 노인학대 문제에 대해 가정 내 문제라는 이유로 혹은 효를 근본으로 하는 우리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수치라는 이유로 쉬쉬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문제를 드러내서 원인을 파헤치고 도려내야 한다. 이번 세계 노인학대 인식의 날을 맞아 우리 사회도 노인학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보다 많은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