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시로 읽는 여성 독립운동가⑧
어윤희(魚允姬, 1877.6.30~1961.11.18 )
시로시로 읽는 여성 독립운동가⑧
어윤희(魚允姬, 1877.6.30~1961.11.18 )
  • 관리자
  • 승인 2012.07.13 15:46
  • 호수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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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해설=시인 이윤옥

 

개성 3·1 만세운동을 쥐고 흔든 투사, 어윤희

가녀린 여자에게 수갑을 채우지 마라
수갑 들고 군화발로 잡으러 온 순사
호통치며 물리친 여장부

동학군 앞장선 남편
신혼 3일 만에 왜놈 칼에 전사한 뒤
나선 독립투사 길

저 앙큼한 년
저년을 발가벗겨라
협박 공갈하는 순사 놈 앞에 서서
스스로 홀라당 옷을 벗은 그 용기

이화학당 어린 유관순 함께 잡혀
먹던 밥 덜어주며 삼월 하늘 우러러 보살핀 마음

만세운동으로
군자금 모집으로
애국계몽운동으로
헐벗은 고아의 어머니로 살아낸
꺼지지 않는 불꽃

여든 해 삶 마치고 돌아가던 날
내리던 희고 고운 눈 순결해라


2011년 5월의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어윤희 선생. 그는 신간회와 근우회 개성지회 창립의 주역으로 활동한 독립투사로 충북 충주군 소태면 덕은리 산골에서 태어났다. 1894년 16살에 결혼했지만 3일 만에 남편이 동학군으로 나가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하고 2년 뒤엔 아버지마저 사망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조국을 위해 희생되자 그 또한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자 개성으로 이주했다.

1910년에 개성 북부교회 교인이 됐으며, 1912년 34살의 나이로 미리흠 여학교를 다녔다. 이후 43살 되던 해에 3월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고, 당시 기숙사 사감을 맡고 있었던 어윤희도 이에 동참하게 된다. 독립선언서 2000장을 개성 읍내 만월정, 북본정, 동본정의 각 거리에서 손수 뿌리면서 독립의식을 고취시켰다. 이것이 개성지역 3·1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이 일로 어윤희는 일본 경찰에 연행돼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다. 비록 몸은 옥중에 갇혔으나 유관순 등 어린 동지들을 보살피며 일제에 단호히 맞선 당당한 여성 독립투사다.

어윤희는 당시 만세운동과 연루돼 형사들이 수갑을 채우려 하자, “천하 만방에 여자에게 수갑을 채우는 나라가 일본 말고 또 어디에 있느냐? 당신들이 내 몸을 묶어갈망정 내 마음은 못 묶어 가리라”하고는 땅에 동그란 원을 그리고 그 안에 서서 “여기 며칠을 서 있으라 해도 그대로 서 있을 나다”라고 오히려 당당히 큰소리를 치며 형사들을 기죽게 했다.

그뿐 아니라 조사를 받을 때에 배후가 누구인지 캐묻는 이들을 향해 “새벽이 되면 누가 시켜서 닭이 우냐? 우리는 독립할 때가 왔으니까 궐기한다”라고 호통을 쳤으며 감옥에서 옷을 벗기려 하자 스스로 홀라당 옷을 벗어 보여 형사들이 눈 둘 바를 모르게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당당했다.

1920년 7월 15일 개성여자교육회 창립에 동참해 국권회복과 여성의 권익 신장을 목표로 강연 활동을 전개했다. 민족운동의 여성 지도자의 역할뿐 아니라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역할도 적극 수행했다. 독립 운동가들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육혈포 탄환을 비밀리에 전달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고향을 떠나 독립운동을 하는 수많은 애국청년들을 뒷바라지하고, 독립군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는 일도 적극적으로 도왔다.

또한 일제 말 개성에 우리나라 최초 보육원인 유린보육원을 설립해 헐벗은 고아들을 돌보는 따스한 인정을 베풀었다. 1961년 11월 22일 자 경향신문에서 유달영 씨는 어윤희 만한 독립운동가는 조선을 다 뒤져도 몇 안 되는 분이라면서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베개를 적셨다는 글을 남기고 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역사엿보기
만세사건 연루자 가운데 가장 형량이 많았던 어윤희
평강읍내 만세사건 연루자 중 가장 형량이 많았던 어윤희는 <매일신보> 1929년 4월 18일 자에 그 이름이 실렸다. 당시 공판 기록을 살펴보면 어윤희의 형량은 1년 6개월. 그가 가장 많은 형량을 선고받은 이유는 그 누구도 선뜻 전단물 배포를 꺼려할 때 민족의 독립을 고취시키는 전단물을 배포해 개성의 만세 운동을 주도한 죄가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로 읽는 여성 독립운동가’는 민족시인 이윤옥 씨가 집필한 시집 ‘서간도에 들꽃피다’의 내용을 요약·정리한 것입니다. ‘서간도에 들꽃피다’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집대성한 최초의 시집으로 저자가 10여년 동안 중국, 일본을 비롯한 전국을 누비며 수집한 사료를 토대로 구성됐습니다. ‘시로 읽는 여성 독립운동가’를 통해 역사 뒤편에 묻혀있던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행적과 업적,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문의 02-733-5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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