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삶에 지친 노년층에 성찰·회복 선사… 행복한 노후 자양분
인문학, 삶에 지친 노년층에 성찰·회복 선사… 행복한 노후 자양분
  • 이다솜 기자
  • 승인 2012.07.27 09:29
  • 호수 3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둔 대한민국의 인문학계가 ‘노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인문학은 인간과 인간의 가치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 영역을 총칭하는 말로, 언어·문학·역사·철학·예술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일반인들에게 인문학은 다소 추상적이고 어렵게 느껴지지만, 인간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이기에 여타 학문보다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인문학(계)이 ‘노년’을 조명하는 것도, ‘노화’의 과정 자체가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특성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즉, 노화는 모든 인간이 경험하게 되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통과 의례다. 특히 노인들에게 인문학은 척박하고 피폐한 마음에 자양분을 제공하는 거름이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인문학(계)은 더 행복한 노후를 위해 지금까지의 노년을 성찰하고 대안을 찾고 있다. 인문학을 통해 바라본 노년의 의미를 짚어보고, 어르신들이 실생활에서 인문학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을 소개한다.

▲ 최근 노년에 대한 성찰을 주제로 한 인문학이 인기다. 어르신들이 인문학 강의를 듣고 있다. 사진=백세시대DB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올해 4월 개봉한 영화 ‘은교’(연출 정지우) 속 주인공 이적요(박해일 분)의 대사다. 그의 말처럼 노화는, 젊은 시절의 선행 또는 악행, 부와 명성 등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는 생물학적 현상이다. 따라서 ‘노년’은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화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는 대체로 노년에 대해 무관심했고, 50~60대가 돼 신체의 변화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노년을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노인인구가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일반인은 물론 학계에서도 노후를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특히, 인간과 인간의 가치를 연구하는 인문학은, 노년에 대해 개인적 차원에서 심도 있는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현재 노인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가 사회의 제도적인 측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상황에서, 생계의 문제에서 더 나아가 어르신 한 명, 한 명이 질 높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조건을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인문학’ 인가
지난 5월, 한국은 세계에서 7번째로 ‘20-50클럽’(1인당 소득 2만 달러 이상, 인구 5000만명 이상인 국가)에 가입해 경제적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동시에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자살사망률(10만 명당 31.2명)을 기록, 한 해 1만 5566명이 목숨을 버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2011년 기준, 2008년보다 약 21% 증가한 수치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증가폭을 기록하기도 했다. 노인자살률도 OECD 회원국 중 1위로, 인구 10만명당 65~74세는 81.8명, 75세 이상은 160명이 넘고 있다. 일본, 미국 등과 비교하면 4~5배 높은 수치다.

이 같은 수치는 6·25전쟁 이후 폐허의 땅에서 반세기만에 세계가 놀랄 만큼 빠른 경제성장을 거둬 물질적 환경은 과거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윤택해진 반면 국민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더 이상 배곯는 일은 없어졌지만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위화감, 소외감을 느끼는 국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경희대 박인철 교수(철학)는 “특히 어르신들은 과거 앞만 보고 달려왔기 때문에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부족했다”며 “이 때문에 자신의 삶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제2의 사춘기처럼 방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인문학은 자신과 세계에 대한 성찰을 통해, 상실된 자존감을 회복하도록 돕는다”며 “어르신들은 자주 소외감을 느끼고, 소통에 미숙하기 때문에 인문학이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어르신들이 인문학을 통해 먼저 자신과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면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며 또, 존중받아야 할 존재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문학 책 속의 ‘노년’
먼저, 노년을 다루고 있는 인문학 책을 살펴보자. 올해 5월, 부경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소장 송명희 교수)는, 노인문제를 인문학적 시각으로 조명한 ‘인문학자, 노년을 성찰하다’라는 책을 펴냈다. 책은 부경대 송명희(국어국문학)·한혜경(신문방송학)·강인욱(사학) 등 6명의 교수가 자신의 전공인 소설, 대중매체, 역사, 윤리 등에 나타나는 노년 담론을 살피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문학작품 ‘마른 꽃’(박완서), ‘화장’(김 훈), ‘제스처라이프’(이창훈)를 통해, 또는 어휘 ‘늙음’과 ‘낡음’의 관계 속에서 노년의 긍정적 의미를 밝히는 등 흥미롭고 다양한 접근이 눈길을 끈다.

프랑스의 작가 겸 철학자 시몬 느 보부아르는 저서 ‘노년(나이듦의 의미와 그 위대함)’에서 사람들이 갖고 있는 노인에 대한 이중 잣대를 폭로한다. 그에 따르면, 출판물, 영화, TV 프로그램에서 유아, 청소년 등과 달리 노년층을 겨냥한 것들은 거의 제작되지 않고 있다.

또, 사람들은 노인을 정서적인 측면에서 젊은이들과 전혀 다른 사람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어르신들도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저자는 청년들이 노인들에게 보잘 것 없는 적선을 하고나서 자신들의 의무를 다했다고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는 2000년 전 쓰인 라틴어 원전을 번역한 것으로, 노년과 죽음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것인지 간결하고 아름답게 정리한 고전이다. 그는 인생이라는 연극의 마지막 장에 해당하는 노년기를 배움의 양식을 갖고 즐겁게 보낼 것을 권하고 있다. 육체적으로 진행되는 노화는 피할 수 없지만, 개인의 노력에 따라 정신적으로는 젊을 때보다 더 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국학 석학 김열규 교수도 ‘노년의 즐거움’을 펴냈다. 저자가 60세 되던 해 고향으로 낙향, 자연과 함께 노년의 삶을 살며 느낀 즐거움을 고스란히 담은 책이다. 그는 주름살과 수염이 섬세히 묘사돼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자화상을 예로 들며, ‘노당익장’을 강조하고 있다.

이어, 행복한 노년은 거저 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잔소리를 하지 말 것 △노하지 말 것 △기죽는 소리를 하지 말 것 △노탐을 부리지 말 것 등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충고를 한다. 이처럼 노년의 기쁨을 말하는 책은 노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유도하고 있다.

▲인문학, 일상에 스미다
책을 통해서만 인문학을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독서가 적성에 맞지 않거나 어렵게 느껴진다면,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고 있는 가까운 기관을 찾을 수 있다. 각 자치구 단위로 다양하고 쉬운 인문학 강좌가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블로그산업협회(02-6052-9634)는 주 2회 건강, 미술, 글쓰기 등의 인문학 강좌 ‘인문학 아카데미’를 진행하고 있다. 강의를 통해 학습한 내용을 개인 블로그에 올리는 방법까지 교육하고 있다.

서울시노인종합복지관협회(02-812-8065)는 주 2회 여가문화생활을 위한 인문학 강좌를 진행 중이다. 인문학을 세부적으로 어렵게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 밀접하게 닿아 있는 수준에서 유쾌하게 진행한다. 이를 테면, 직접 궁궐을 탐방하기도 하고, 문학가 또는 문학작품을 함께 탐구하는 식이다.

한국고령사회비전연합회(02-919-4700)는 한 기수마다 홀몸노인, 노숙인 등 소외계층 100명을 대상으로 ‘감동을 주는 노년 생활’ ‘우리 노인 건강’ ‘갈등해결커뮤니케이션’ ‘노인장기요양보험’ 등에 대한 강좌를 주 2회 제공하고 있다.

서울 강남시니어플라자(02-554-5479)는 주 1회 ‘클래식, 시대를 듣다’ 강좌를 통해 쇼팽, 베토벤 등 클래식 음악가의 음악과 함께 그들이 살았던 시대 배경을 알아본다. 또, 월 1회 ‘인문학’ 강좌를 통해 논어, 중용, 중국 한시 등을 교육하고 있다.

서울시니어아카데미(02-765-8458)는 오는 9월 4일부터 주 2회 ‘노년준비교육’이라는 타이틀로 ‘한국인의 종교심성’ ‘시니어가 알아야 할 세계문화유산’ ‘시니어가 알아야 할 미디어 이야기’ 등을 강의할 예정이다.
이다솜 기자 soyo@100ssd.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