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쉼터…, 알지. 그런데 몸이 아파 가지를 못해”
“무더위 쉼터…, 알지. 그런데 몸이 아파 가지를 못해”
  • 이다솜 기자
  • 승인 2012.08.10 14:49
  • 호수 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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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과 사투 벌이는 쪽방촌 어르신들…“집앞 ‘쪽 그늘’이 오아시스”


연일 지속되는 폭염에 한반도가 시름하고 있다. 특히 쪽방촌에서 생활하고 있는 어르신들에게 이번 여름은 말 그대로 ‘불지옥’이다. 1평 남짓한 방은 통풍조차 되지 않아 바깥보다 더 습하고 무덥기 때문이다. 낡은 선풍기를 틀어도 후덥지근하고 불쾌한 바람만 간신히 쐴 수 있지만, 그 흔한 선풍기조차 없는 어르신들도 적지 않다. 올해 6~8월 초까지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7명에 달하고, 이중 6명은 65세 이상 어르신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더위만큼이나 가혹한 국가와 사회의 무관심이다. 쪽방촌 어르신들의 힘겨운 여름나기가 연일 자극적인 내용으로 보도되고 있지만 어느 곳도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더위를 이겨내고 있는 쪽방촌 어르신들의 삶을 가까이서 살펴보고 실질적인 대안을 고민해본다.
 

8월 7일 오후 1시. 세상을 태워버릴 듯 무서운 기세로 이글거리는 태양이 중천(中天)에 걸린 시각,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이곳에서 생활하는 홀몸어르신들을 돌보는 사랑실천공동체 두재영 목사가 안내했다. 어르신들은 이렇다 할 대책 없이 펄펄 끓는 쪽방 안에서 말 그대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쪽방촌 인근 공원, 그늘을 찾아 삼삼오오 짝을 지어 벤치나 길에 나앉아 하염없이 해가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어르신들이 눈에 띄었다. 그 뜨거운 대낮, 그늘이래야 겨우 몸이나 가릴 수 있는 곳에, 이 어르신들이 나앉은 이유는 무엇일까.

김영자(67) 어르신은 “방에 있으면 더워 견딜 수가 없다”며 “밤에도 후끈후끈 열기가 확 올라와 잠을 잘 수 없는 지경인데 낮엔 오죽하겠냐”고 했다. 이어 “선풍기도 없어 온 몸에 땀띠가 났다”며 직접 상의를 걷어 올려 군데군데 붉게 돋아난 땀띠를 내보였다. 가슴과 배, 등에 퍼져 돋은 땀띠가 폭염과 싸우는 어르신들의 불편한 심기를 대변하는 듯 했다.

전국 458개 응급의료기관이 발표한 ‘폭염 건강피해 표본감시’에 따르면, 올해 6~8월초까지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7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6명은 65세 이상 노인이다. 요즘처럼 살인적인 폭염에 가장 취약한 연령층이 노인이란 얘기다. 지난해 공식 집계된 전체 폭염 사망자수는 6명. 올해 폭염의 심각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수치다. 변변한 냉방기기도 없이 생활하는 쪽방촌 어르신들에게, 올 여름 무더위는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시원한 무더위 쉼터…이용자 적어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행정안전부는 어르신들이 주로 이용하는 경로당·마을회관 등을 ‘무더위 쉼터’로 지정키로 했다. 또, 냉방비도 특별교부세로 긴급 지원, 냉방기기를 충분히 가동토록 조치했다. 경로당 ‘전기세’만큼은 안 받겠다는 얘기다. 최근 폭염 탓에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예비전력을 우려하며 절전을 강조하고 있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강진으로 원전을 가동하지 못하는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정부의 절전지시를 충실하게 따르던 노인들이 에어컨은 틀어보지도 못한 채 폭염에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남의 일이 아니다.

보건복지부도 폭염 특보 발령시 노인돌보미를 통해 홀몸노인의 안전을 확인하고, 질환을 가진 경우 방문보건서비스 등과 연계해 집중 관리한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폭염과 사투를 벌이는 어르신들의 현실에서, 허겁지겁 내놓은 정부의 대책은 미봉책에 불과했다.

동자동 쪽방촌에서 500여m 떨어진 동자동경로당. 이곳은 행안부의 특별지시에 따라 ‘무더위 쉼터’로 지정돼 있다. 출입문에는 ‘무더위 쉼터’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경로당 실내로 들어가니 ‘무더위 쉼터’라는 말에 어울리게 시원했다. 가동 중인 에어컨의 실내온도는 26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동자동경로당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은 “최근에는 대체로 시원하게 이용한다”고 했다. 어르신들은 “집보다 훨씬 시원해 자주 찾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어르신들의 무더위 쉼터로 손색이 없었다.

문제는 이용인원. 1층은 여성, 2층은 남성 전용으로 분리돼 있었고, 각 층당 20여명은 충분히 수용가능했지만 실제로 평소 이곳을 이용하는 어르신은 6~7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예상과 다르게 한산한 모습에 의아했다. 한 어르신은 “최근 무더위를 피해 경로당을 이용하는 노인은 남녀를 통틀어 많아야 20여명”이라고 말했다.

인근 또 다른 무더위 쉼터도 사정은 마찬가지. 서울시는 동자동경로당 인근 공동헬스장인 ‘푸른나눔터’도 지역 어르신들과 주민들을 위한 무더위 쉼터로 지정했다. 이곳 역시 에어컨이 가동돼 실내는 매우 시원했다. 30여명은 충분히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규모였으나 실제 이용인원은 10여명에 그쳤다. 동자경로당, 푸른나눔터와 마찬가지로 주로 노숙인을 대상으로 하는 인근 사회복지관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경로당과 복지관은 대체로 냉방이 잘 이뤄지고 있었지만, 공간 규모에 비해 이용자가 매우 적은 편이었다.

▲“거동불편, 무더위 쉼터 가지 못해”
이날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34도. 나무 한 그루 없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심의 체감온도는 수치화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 같은 폭염에 어르신들은 왜 ‘무더위 쉼터’를 외면하는 것일까.

동자동 쪽방에서 만난 한 어르신께 경로당이나 복지관 등에 ‘무더위 쉼터’가 운영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그는 “알고 있지만 요즘처럼 무더운 날에는 경로당까지 걸어가는 것조차 힘들어 쪽방 인근 길가 그늘에서 쉰다”고 말했다.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공동부엌에서 끼니를 위해 감자를 삶고 있던 변태연(82) 어르신도 “경로당에 가면 시원하다는 걸 알지만 고관절이 좋지 않아 나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소형 선풍기가 있지만 틀어도 하나도 시원하지 않다”며 “항상 문을 열어두고 주로 집 앞 공원에 나가 그늘에서 더위를 피한다”고 말했다.

박석근(74) 어르신도 “밤이면 출입문과 창문을 모두 활짝 열어놓고 자지만 너무 더워 잠을 이루기 힘들다”면서 “몸이 안 좋아 무더위 쉼터는 나갈 엄두를 못낸다”고 말했다. 박석근 어르신이 생활하는 쪽방은, 통풍이 잘 되지 않아 바깥보다 더 습하고 무더웠다.

저소득층 홀몸 어르신들이 밀집해 거주하는 동자동 쪽방촌에서 ‘무더위 쉼터’가 운영되는 동자경로당과 ‘푸른나눔터’는 약 50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다. 젊은 사람이 걸어서 이동하면 5~10분 걸리는 거리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뙤약볕을 맞으며 20분 안팎을 걸어야 한다. ‘무더위 쉼터’로 이동 중에 변을 당할 수도 있다. 어르신들이 ‘무더위 쉼터’를 꺼리는 이유다.

박일춘(75) 어르신은 “방이 덥지만 무릎관절이 안 좋아 경로당까지 나갈 생각도 못한다. 방 청소도 못할 만큼 몸이 성치 않는 노인들이 이 더위에 어떻게 경로당까지 가겠느냐”며 “덥고 힘들어도 가만히 앉아 쉬는 게 낫지 다른 방도가 없다”고 했다.

▲“정부·민간영역 협력체계 중요”
올해 지속되는 폭염 속에서 행안부의 시책으로 운영되는 ‘무더위 쉼터’는 어르신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상당수의 어르신들은 몸이 불편해 쉼터를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에게 ‘무더위 쉼터’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였다.

김미혜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전문대학원)는 “어르신들은 거동이 불편하시다보니 아무리 가까운 경로당을 ‘무더위 쉼터’로 지정해도 접근성의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 차원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폭염은 자연재해 즉, 긴급상황인 만큼 지자체의 협조가 매우 중요하다”며 “며칠 전 방문한 영등포구의 경우처럼, 노인종합복지관이나 지자체가 나서서 홀몸 어르신들을 직접 방문, 선풍기와 얼음을 공급하는 배려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거동이 힘든 노인들뿐만 아니라 경로당·복지관과 멀리 떨어져 지내는 어르신들까지 신경 쓰려면, 지자체를 중심으로 민간단체·기업이나 자원봉사자 등 지역 주민들이 함께 도와야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폭염은 충분히 예방이 가능한 재해이기 때문에 국가는 보다 체계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긴급상황이 닥쳤을 때마다 지자체와 자원봉사자들이 주먹구구식으로 대응할 수 없는 만큼 국가와 민간 차원의 관심이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이다솜 기자 soyo@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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