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로 내모는 ‘정신장애’ 노년층 위협
외톨이로 내모는 ‘정신장애’ 노년층 위협
  • 이호영 기자
  • 승인 2012.10.19 15:03
  • 호수 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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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성 인격장애’ 정체성 혼란 원인… 감정조절 실패로 대인관계 망쳐
노년기 삶의 근간을 뒤흔드는 문제들은 많지만 ‘외로움’은 노년층 자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외로움은 인간관계의 단절에서 시작된다. 대부분의 노년층은 직장에서 은퇴 후 홀로 지내며 사회관계가 약화되고 대인관계도 위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노년기 대인관계를 망치는 또 다른 원인이 있다. 연령을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분노나 공격성 등 격한 감정조절의 실패다. 상대방을 향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발현되면서 인간관계를 망치게 된다. 그렇다면 왜 감정 조절에 실패하는 것일까. 이유는 다양하지만 유달리 대인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이 가운데 ‘경계성 인격장애’를 갖는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다. ‘격한 반응’으로 감정조절에 곤란을 겪으면서 주변을 놀라게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경쟁과 무관심이 만연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누구나 감정조절에 실패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대인관계에 불안함을 느끼고, 상대방에 대한 호감과 비호감의 극단을 오가며 인간관계 유지가 곤란하다면‘경계성 인격장애’가 있는지 의심해야 한다. ■도움말=관동대 의과대학 명지병원 노인의학센터(문의:031-810-6650)


최근 81세 남편과 사별한 김모씨. 3년간 요양시설에서 거주하고 있는 김씨는 파킨슨병과 고혈압을 앓고 있다. 김씨는 평소에도 자아상이 불안정한 데다 공허감과 자포자기 감정에 시달리며 자신과 남들을 비난하고 항상 화를 낸다. 김씨는 이 같은 감정조절 실패로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이루거나 유지하는 것이 힘들다. 대인관계 실패에 따른 자신에 대한 실망이 두려움과 분노로 나타나며 감정기복도 심하다. 요양시설의 간호사에게 욕을 하거나 치료약과 음식을 거부하는 등 격한 태도로 인해 환자 자신과 치료자 모두의 삶의 질을 훼손하고 있다.

김씨가 바로 ‘경계성 인격장애’를 갖고 있는 경우다. 이 같은 ‘경계성 인격장애’는 대인관계 및 정체성 혼란, 불안정한 정서, 심한 충동성을 광범위하게 나타내는 인격장애다. 이 장애를 앓는 사람들은 흔히 인간관계에서 지나친 기대를 갖고 상대방에게 접근했다가 실망 또는 원망하며 멀리하는 극단을 반복한다. 상대방을 극도로 이상화하거나 극도로 평가절하하는 모습을 보이는 과정에서 인간관계가 단절된다.

‘인격장애’라는 병명은 정신질환과 정상 범주의 경계에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를 방치하면 우울증이나 조증을 겪기도 하고 자해 행동으로 이어지는 등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악화될 수 있어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특히 어르신들은 ‘경계성 인격장애’에 더욱 취약해 유의해야 한다. 이미 경계성 인격장애를 갖고 있는 어르신들은 사회관계 약화로 진단이 더욱 어렵다. 또, 치료와 관리도 소홀해 대인관계가 더욱 악화되는 등 악순환이 거듭돼 삶의 질을 떨어뜨리게 된다.

[원인] “불안정한 자아상… 모순된 정서가 불안 야기”
경계성 인격장애의 원인은 정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자신에 대한 불안정한 정체성이 ‘경계성 인격장애’를 겪는 이들의 특징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내가 누구인지’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른다. 자신에 대해 잘 모르고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고정적인 인간관계를 힘들어한다. 이처럼 불안한 정체성 등으로 스트레스가 극도에 달해 인간관계에서는 공격성이 나타나면서 자해행동을 하기도 하고 정서불안도 야기돼 초조와 우울증도 나타난다.

원인은 성장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장기에 부모가 애정과 증오, 독립과 의존, 존경과 경멸 등 상반되는 감정이 공존하며 모순되는 ‘양가감정’을 보이면 자녀들은 가치관의 혼란을 경험한다. 이때 주체성이 모호해지면서 성장 후 대인관계에서 모든 사람을 선과 악, 극과 극으로 분리시켜 왜곡된 인간관계를 맺게 된다. 다소간 유전적인 요인도 작용한다. 현재 전 인구의 약 2% 정도가 이로 인해 대인관계에서 고통을 겪고 있다.

[증상] “관계 의존적…버려지거나 멀어지는 것에 공포”
경계성 인격장애를 갖게 되면 관계 의존적인 성격이 된다. 혼자 있게 되면 버림받는 느낌으로 견디지 못한다. 관계를 맺는 사람에게 버려진다거나 멀어진다는 사실에 심한 공포를 느낀다. 따라서 상대방의 거부에 민감하고 예민해 대인관계가 매우 불안정하다. 또, 남이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인정해주기를 바라며 공감을 구하는 등 항상 불안감에 시달린다.

경계성 인격장애를 앓는 이들은 남과 어울리기는 하되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극명히 갈린다. 또,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방과의 관계가 ‘아주 좋거나’ ‘아주 안 좋은’ 상태로 분명히 나뉘면서도 불안정하다. 이 장애는 우울과 분노를 오가며 감정의 기복도 매우 심하다. 관계 의존에서 비롯된 심한 정서불안이 분노와 공격성을 낳기 때문이다.

자해나 자살, 알코올 중독이나 약물 중독 등 예측할 수 없는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이들이 겪는 우울함은 외로움과 공허함, 지루함, 분노 등을 동반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우울증과 다르다. 경계성 인격장애는 일생 동안 지속되는 경향이 있고 악화되면 우울증이나 조증이 되기도 한다.

[치료] 정신행동치료가 중심 약물치료병행…“자존감 세우는 인정치료가 핵심”
경계성 인격장애를 적절히 치료하면 2년 이내에 50% 가량 증상이 호전된다. 하지만 방치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진다. 어르신의 자존감을 높이는 정신행동치료와 함께 이에 걸맞는 정신과적 약물치료를 병행한다. 이를 통해 심약감이 줄고 인간관계를 공감하면서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개선할 수 있다. 인격장애를 겪는 어르신들에게 맞춰 고안된 인정(認定)치료(확인치료·정당화치료)는 행동수정치료의 핵심인데, 가장 바람직한 치료로 알려져 있다. 약물은 보조적으로 사용한다.

정신행동치료는 환자 스스로 감정조절 방법을 익히고 관련 능력을 높여 자해나 자살을 막도록 돕는 심리치료법이다. 특히 인정치료는 문제 행동을 수정하되 행동보다 말로 표현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환자의 견해를 인정하고, 그 근거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환자가 스스로 자신에 대한 존경심을 강화하는 방법인데, 환자와 치료자간 공감을 유지하며 치료할 수 있다. 한마디로 예민하고 감정조절이 어려운 어르신들이 존재감을 정당화하도록 도와 치료하는 방법이다.

기분조절제와 같은 약물을 병행해 분노와 충동성, 정서 불안정성, 극단적인 이상화와 평가절하 등의 분리증세도 치료할 수 있다. 약물치료는 항정신병 약물이나 항우울제 등이 사용되지만, 우울증과는 달리 약물의 용량을 늘려도 효과는 없다.

경계성 인격 장애 진단기준(미국정신의학회)

다음 중 다섯 가지 이상의 항목에 해당할 경우‘경계성 인격장애’를 의심해야 한다.

□ 실제적 혹은 상상 속에서 버림받지 않기 위해 지나칠 정도로 신경을 쓰고 과도하게 노력한다.

□ 상대편을 지나치게 이상화하거나 평가절하하는 극단적인 행동 사이를 왕래하는 불안정하고 격렬한 대인관계 양상을 보인다.
□ 주체성 장애(자기 이미지 또는 자신 자신에 대해 현저하고 지속적으로 불안정한 느낌을 갖는 증상)가 있다.
□ 자신을 손상할 가능성이 있는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경우의 충동적인 성향이 있다.
(예: 과소비, 물질남용, 좀도둑질, 난폭한 운전, 과식 등)
□ 반복적인 자살 시늉이나 자살 위협, 자해 행동을 보인다.
□ 현저한 기분 반응성으로 인한 정동의 불안정이 있다. (예: 격렬한 불쾌감, 과민성 불안)
□ 만성적인 공허감이 있다.
□ 심하고 부적절하게 화를 내거나 화를 조절하지 못한다. (예: 자주 울화통을 터뜨리거나 늘 화를 내거나, 자주 신체적 싸움을 함)
□ 일시적 스트레스와 관련된 피해 망상적 사고 또는 심각한 정도의 해리증세(통합되고 있어야 할 심리활동이 그 통합을 잃는 증상)가 있다.

이호영 기자 eesoar@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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