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경제민주화를 넘어 동반성장 사회로
정운찬 전 국무총리
[특별기고] 경제민주화를 넘어 동반성장 사회로
정운찬 전 국무총리
  • 관리자
  • 승인 2012.10.19 15:29
  • 호수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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싣는 순서
①왜 경제민주화를 논하는가
②경제민주화란 무엇인가
③정치권의 경제민주화론과 한계
④근원적 양극화 해소와 동반성장
⑤경제민주화를 넘어 동반성장사회로


인간사회가 공동체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사용하는 사람이 누구든 하나의 단어는 동일한 의미로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공유돼야 합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사용하는 단어가 여러 가지 의미로 이해된다면 공동체는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마치 바벨탑을 쌓던 인간들의 공동체가 언어의 혼선으로 일순간에 무너졌듯 하나의 단어에는 하나의 의미가 부여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동체는 분열과 대립을 가져올 것입니다. 특히 정치지도자와 국민 사이에는 정책에 대한 동일한 이해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대선후보가 제시한 정책공약에 대해 정치지도자와 국민이 서로 다른 내용으로 이해할 경우, 정책집행과 결과를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그 결과 국민들은 정권에 대해 불신을 갖게 돼 국정운영에 협조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치권은 정책공약과 관련된 단어를 선택할 때 국민이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내용을 전제해야 합니다.

이번 대선에서 정치권과 국민 사이에 동일한 의미로 공유돼야 할 가장 중요한 정책용어는 ‘경제민주화’입니다. 경제민주화는 여야뿐 아니라 국민들도 반드시 차기 정부에서 실천해야 할 정책과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논의를 살펴보면 여야가 담고 있는 내용이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헌법 119조에 경제민주화 내용이 들어있다고 일반적으로 이야기하지만 구체적으로 ‘경제민주화 사회란 어떤 모습인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결과 여야 정당과 정치인들이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책방향은 매우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경제민주화’에 대해 서로가 인정하는 공통의 개념이 정리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1990년 ‘도전받는 한국경제’에서 경제민주화에 대해 ‘경제민주화란 시장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주체들인 기업, 노동자, 소비자 등이 대등한 관계가 되는 사회’라고 설명했습니다.

대등한 관계란 평등한 관계가 아닙니다. 대등한 관계가 형성된 사회란 경제주체들 사이에 선택의 자유가 있는 사회입니다. 예를 들어 노동자가 일자리를 구할 때 기업과의 관계에서 대등한 관계가 된다는 것은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먼저 노동자가 기업이 제시하는 근로조건이 맞지 않으면 거부하고 다른 직장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창출돼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 생계걱정을 하지 않을 정도로 복지제도가 갖춰져야 합니다. 또, 다른 일자리로 옮겨갈 때 필요한 새로운 기술을 익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이런 사회가 될 때에야 노동자는 기업과 대등한 관계가 돼 기업이 나쁜 근로조건을 제시하면 거부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만일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거나 당장 일하지 않으면 생계를 걱정해야 할 사회라면 노동자는 기업이 제시하는 근로조건이 나빠도 취업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소비자와 기업관계도 동일합니다. 소비자에게 비교 선택할 수 있는 제품이 없다면 소비자는 자유로운 구매 선택권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소비자와 기업관계에서 경제민주화란 소수 기업들에 의한 독점체제가 형성돼서는 안됩니다. 다양한 제품이 생산될 수 있는 경쟁체제가 갖춰져야 합니다.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에서도 중소기업이 불공정한 계약관계를 거부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경제민주화된 사회입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불공정한 하청관계를 벗어날 수 없다면 경제민주화가 됐다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경제민주화 사회란 기본적으로 중소기업이 강한 국가이고, 사회안전망이 충분히 구비된 사회입니다. 그리고 경제력 집중이 존재하지 않는 경제체제이며, 노동권, 소비자 권리 등 공동체 구성원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입니다. 따라서 경제민주화 사회를 조성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조건 중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은 경제력 집중 해소입니다. 그 이유는 소수 재벌과 대기업에 경제력이 집중되면 중소기업, 노동자, 소비자들이 경제활동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제한되고, 재벌과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순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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