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들의 아버지, 사회복지 53년 외길 인생
고아들의 아버지, 사회복지 53년 외길 인생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2.11.30 11:54
  • 호수 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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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책임지는 시니어리더] 조규환(80) 은평천사원장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마태복음 25장의 성경말씀을 몸소 실천하며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평생을 바쳐 헌신해 온 원로 사회복지가가 있다. 53년 동안 1400여명의 고아·장애인들을 돌봐온 ‘전쟁고아의 아버지’ 서울 은평천사원의 조규환(80) 원장이다.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은평천사원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회복지시설로 손꼽힌다. 윤성렬(1885∼1977) 목사가 전쟁 고아를 돌보기 위해 1959년 3월 설립한 후, 반백년 동안 그 정신을 지켜온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곳이다. 현재도 이 곳에는 비장애 고아(98명)와 장애 고아·성인(115명), 오갈 곳이 없는 모자(母子)가족 10가정과 출소자·노숙자 등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가고 있다.

조 원장은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은평천사원을 키우고 지켜온 산증인이다. 특히 조 원장은 천사원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아이들과 함께 생활한다. 부모와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에게 더 큰 사랑을 가르치기 위해선 살을 맞대고 동고동락(同苦同樂)하는 것이 최고의 교육이라는 신념 때문이다.

“내 집은 은평천사원이다. 아버지가 자녀들과 함께 생활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웃음) 무엇보다 자녀들은 부모가 하는 대로 보고 자란다. 감사하고 베풀며 사는 모습을 본 아이들은 본대로 따라한다. 아이들에게 본이 되는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사실 그가 은평천사원에서 생활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하나를 가지면 둘을 갖고 싶은 인간의 욕심을 버리기 위해 자신의 집과 퇴직금마저도 모두 사회에 기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자신 명의로 된 재산이 하나도 없다. 급여와 판공비도 어렵게 살고 있는 천사원 출신들을 위해 사용하고, 심지어 사후에는 장기기증까지 서약한 상태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원장실에는 재활용품을 가져다 놓은 책상과 의자, 응접세트가 놓여 있었다. 또한 그의 가디건 옷 소매는 군데군데 오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조 원장은 “미군에게 지원받은 24인용 천막 두 개에서 40여명의 고아들을 모아놓고 천사원을 처음 시작했을 때를 한 번도 잊어 본 적이 없다”며 “은평 천사원의 성장은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정성의 결실인 만큼 그 귀한 뜻을 온전히 이어가기 위해 개인적인 욕심을 버린 것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세상이 볼 때는 내가 가진 게 없어 보여도 난 마음의 부자”라며 “부모도 집도 없는 아이들, 장애라는 편견과 맞서 싸우는 아이들의 맑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가장 큰 재산”이라고 덧붙였다.

청렴과 진실된 봉사정신을 강조하는 그의 운영철학 덕분에 은평천사원의 사업은 더욱 확장돼 갔다. 작은 전쟁고아 보호시설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해외아동, 장애고아 재활·치료, 문화체육시설 등을 운영하는 종합복지시설로 성장했다. 현재 천사원은 거주시설 9곳, 이용시설 7곳, 부속시설 4곳, 위탁시설 7곳 등 27곳을 운영 중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로도 눈을 돌려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1997년부터 아프리카 우간다, 캄보디아에 3명 직원을 파견, 재활의료 서비스 및 교육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는 은평천사원 설립 초기, 외국인 후원자들에게 받았던 도움의 손길을 이제는 빈곤국가 아이들에게 되돌려 주기 위함이다.

조 원장은 보다 조직적으로 해외원조 사업을 전개하기 위해 2007년 8월 ‘나눔센터’를 개관하고, 북한을 비롯해 우즈베키스탄, 필리핀, 네팔 등으로 구호활동 및 봉사활동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그는 “이렇게 사업을 확장하고 내실을 기할 수 있었던 것은 천사원을 믿고 후원과 봉사로 사랑을 모아주신 분들이 계셨기 때문”이라며 “은평천사원의 모든 사업성과는 2만여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들과 후원자들이 이룬 놀라운 기적”이라고 말했다.

‘사랑의 빚진 자로서 사회에 필요한 빛과 소금이 되라’고 강조하는 조규환 원장. 그는 원생들에게 ‘누구든지 원하면 대학교와 대학원, 해외유학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고, 지금까지 그 약속을 지켜오고 있다. 이로 인해 원생 출신 중에는 미국, 독일, 스위스, 일본 등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국내외에서 의사, 교수, 사업가, 목사, 사회복지사, 음악가 등으로 활약하는 이들이 많다. 아버지인 조 원장의 희생과 열정, 봉사정신을 자녀들이 그대로 물려받은 셈이다.

그는 “천사원 아이들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의젓한 사회인으로 성장했을 때, 그 기쁨은 말로 형언할 수 없다”며 “무엇보다 성공한 원생들이 천사원의 후원자로 다시 돌아오는 모습을 볼 때면 큰 보람과 긍지를 느낀다”고 털어놨다.

올해 여든을 넘긴 한국 사회복지계의 든든한 거목 조규환 원장. 그는 은퇴 후에도 늘 사랑을 나눠줄 수 있는 자리에 있기를 소망했다. 너무 소박해서 더욱 커 보이는 꿈이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남을 위해 기꺼이 베풀고, 봉사와 나눔을 평생 몸소 실천한 그가 이 시대의 진정한 시니어리더가 아닐까. 후원 : 농협 100121-55-000220(예금주 은평천사원)
글=안종호 기자 / 사진=임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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