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사꾼 박태진의 황토이야기(9) 황색 빛, 생명을 피워내는 대지의 빛
유기농사꾼 박태진의 황토이야기(9) 황색 빛, 생명을 피워내는 대지의 빛
  • 관리자
  • 승인 2012.12.14 15:14
  • 호수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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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태진씨는 노지재배와 유기농법만을 고집하는 60년 경력의 전문 농사꾼이다. 5세부터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시작해 농업중·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농촌지도소에서 34년 간 활동했다. 은퇴 후에는 ‘김장채소이야기’ ‘마늘이야기’ 등 자신만의 유기농법 노하우를 책으로 정리해 농협 귀농귀촌대학 및 공무원연금공단 퇴직공무원지원센터 등에서 강사로 활동 중이다. 


황토의 밝은 황갈색, 또는 누런 흙색에는 놀라운 신비가 있다.

생명의 원천인 흙의 빛깔이 그러하고, 또 그 땅에서 자란 작물들이 그 색을 닮았다. 또한 황색은 황금빛 들녘을 상징하는 풍요의 의미가 담겨있으며, 밝은 황색은 권위와 부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무엇보다 도시화 문명을 살아가고 있는 노년세대에게 황토색은 어릴적 논·밭길을 따라 걷고 뛰놀던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향수어린 빛이기도 하다.

특히 황색은 빛의 색인 동시에 흙의 색이다. 세상을 밝히는 빛을 닮았고, 세상을 품고 있는 흙은 닮고 있는 황색은 운명처럼 생성과 소멸이 돌고 도는 생명의 순환장소로 활용된다.

이른 봄, 개나리와 유채꽃이 생동하는 노란빛으로 새 생명의 탄생을 알리고, 여름이면 탐스러운 해바라기가 노란 물결을 이룬다. 가을에는 황금 들판이 절정을 이루며 눈부시게 빛난다.

겨울에는 추수 뒤 묶인 볏짚이 창고에 가득 쌓여 소소하게 봄을 기다리는 빛을 발한다. 이처럼 사계절 내내 우리의 일상을 풍요로움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황색, 권위와 부의 상징
한국인에게 황색의 이미지는 화려함으로 다가온다. 신라 왕관의 눈부신 황금색이 뇌리에 깊이 각인 돼 있기 때문이다. 권력과 부를 의미하는 영화로운 색인 금색인데, 황색과 금색은 광택의 차이만 있을 뿐, 광학적 특성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황금은 영예로운 빛을 발하는 최고 권의의 상징이었다. 왕의 권위로 국가를 다스리는 자가 누릴 수 있는 빛이 바로 금빛, 즉 황색의 극치였던 것이다. 전통적인 음행오행설에서 황색은 동서남북의 중앙에 해당하며 천하를 통치하는 하늘의 아들을 상징한다. 우주의 중심을 의미하는 황색은 예로부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귀한 색, 황제의 색으로 통했다.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친 고종(高宗·재위 1863~1907)이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고, 황룡포(黃龍袍)를 입었다는 사실은 우리 민족에게 황색의 의미가 어땠는지를 잘 나타내 준다.

황토가 주는 역사적 가치도 높다. 우리나라의 대지는 적황색, 곧 붉은 기운이 감도는 노란색 흙이 많은데 이들 적황색, 황색 흙이 없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려청자도 조선의 백자도 구워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대지 닮은 황토색, 풍요의 상징
일반 서민들에게도 황색은 풍요의 상징이었다. 불과 몇 십 년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흙을 닮은 황토빛은 만물을 소생시키는 근원이며 풍요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부녀자들이 황의(黃衣), 즉 황색 저고리를 즐겨 입었던 것은 집안의 넉넉함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가을철 황금색 들녘을 꿈꾸는 농민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또한 고가구의 장식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 황색을 사용하고 있다.

황색 옷을 입을 수 없었던 일반 서민들은 치자 열매를 물들여 노란 빛을 냈다. 노랗다, 노르께하다, 노르다, 노르스름하다, 누렇다, 누르퉁퉁하다, 뉘렇다 등 황색을 뜻하는 수많은 단어들이 있는 것처럼 우리 민족이 선택할 수 있는 노란빛의 스펙트럼은 넓고 깊었다. 그래서 치자, 홍화, 괴화 등 다양한 천연 염료로부터 다채로운 노란색을 얻을 수 있었다.

▲몸·기 보(補)하는 황색 먹을거리
흙의 색, 대지의 색인 황색은 그 풍요로움으로 갖가지 먹을거리들을 키워낸다.

한때 왕과 왕족에게만 허락돼 일반 서민들은 쉽게 다가가기 힘든 색이긴 했지만 의외로 우리의 소박한 밥상을 채웠다. 특히 황색 음식들은 영양가가 높다. 흉년의 시름을 덜게 했던 구황작물(救荒作物)인 감자와 고구마는 그 자체로 쪄 먹어도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속이 노란 단호박은 찜, 죽 등으로 다양하게 조리된다.

도라지, 콩나물 등 갖가지 황색 나물들 또한 우리의 입맛을 돋우는 데 빠질 수 없다. 황색이 땅의 중심을 책임지는 것처럼 황색 먹을거리도 우리의 몸과 기를 지탱하고 보해주는 역할을 예부터 감당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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