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값 2500원 아까워 복지관 맴도는 어르신 많다
점심값 2500원 아까워 복지관 맴도는 어르신 많다
  • 조종도 기자, 안종호 기자
  • 승인 2013.03.22 14:21
  • 호수 3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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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한 그릇에 함축된 복지정책의 고민

▲ 지난 1월 초 서울시 전농동 밥퍼나눔운동본부에서 열린 무료급식 행사에서 독거노인, 무의탁노인들이 점심식사를 배식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노인복지관 점심값 강남구 2000원, 다른 곳 2500원
경로당도 지역마다 큰 차… 아예 식사 제공 않는 곳도

서울 노원에 사는 이모 어르신(70)은 점심식사 시간에도 노인복지관에 들어가지 않고 근처를 배회한다. 왜 복지관에서 같이 식사를 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기초생활)수급자만 무료로 밥을 준다. 나는 수급자가 아니라 2500원 주고 사 먹어야 하는데, 그 돈이 어디서 그냥 나오느냐”라고 되묻는다. 그는 2500원이 아까워 끼니때가 다 지난 시각에 집에서 혼자 차려먹는다. 공예품 공장에서 자개농을 만들던 솜씨 좋은 기술자지만, 지금은 일자리가 없어 아들에게서 용돈을 타 쓴다. 새 일자리를 찾으려 해도 좀처럼 구하지 못해 “이렇게 살 바엔 차라리…” 하며 힘없이 고개를 떨군다.
수급자인 김모씨(여·62)는 점심시간에 노인복지관 앞 벤치에서 햇볕만 쬐고 있다. 당뇨로 인한 합병증으로 전동 휠체어를 타는 유 모(64)씨도 자판기 율무 차 한 잔 마시는 게 전부다. 수급자라도 65세 이상만 무료급식을 하기 때문이다. 김 씨나 유 씨처럼 만 60세가 되면 노인복지관 시설을 이용할 수가 있지만, 등록하고도 활동을 안 하는 사람이 많다. 70대가 대부분이라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다.
복지관에서 무료로 점심식사를 했다는 윤모 어르신(여·85)은 밝은 표정으로 다른 어르신과 담소 중이다. 교통사고로 몸을 크게 다친 아들(58)과 함께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생활하는 그는 “몸이 아파 아들 식사 차려 주기도 힘들다”면서도 “빠듯한 생활이지만 국가에서 살아갈 수 있게 집도 주고 쌀도 주고 무료로 점심도 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한다.
따뜻한 점심 한 그릇은 행복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국민행복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점심시간이 쓸쓸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무료 급식이 가능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사회보장 혜택의 온도차를 느낀다. 그렇다고 무조건 무료급식을 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국민 누군가의 혜택은 누군가의 짐이 되기 때문이다.
◇노인복지관, 무료급식이냐 유료급식이냐=서울의 노인복지관이라도 지역에 따라 점심시간의 풍경은 확연히 다르다.
서울 노원구 하계동에 있는 노원노인종합복지관의 경우 점심식사를 하는 사람이 하루 약 245명이다. 이 중에 무료급식자는 145명이고 100명이 2500원을 주고 사먹는다. 책정된 한 끼 식비가 2800원이지만 300원을 낮췄다. 동대문노인복지관의 경우도 비슷하다. 무료급식자가 208명이고, 204명은 2500원을 주고 사 먹는다.
이 같은 양상은 강남에서 정반대로 나타난다. 강남구청은 관내 노인복지관에 식비를 지원해서 어르신들이 내는 점심값을 2000원으로 확 낮췄다. 압구정노인복지센터의 이용현황을 보면, 무료급식자는 10명 이내이고 유료급식자는 100명이다.
2011년 10월 강남구 역삼동에서 개관한 강남시니어플라자도 무료급식자가 드물다. 구내식당인 해피레스토랑을 이용하는 사람은 하루 300명. 이들 중 대부분은 유료 이용자이며, 무료급식자는 50명 이내다. 이곳의 점심값은 세 종류다. 강남구 주민으로 60세 이상 정회원인 사람은 2000원, 60세 이상으로 강남구민이 아닌 사람은 3000원, 그 외 사람은 4000원이다.
해피레스토랑에서 가끔 식사를 한다는 이 모 어르신(74)은 “점심값이 2000원이라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고 말한다. 무료로 하면 어떻겠냐는 질문에 “그러면 그 돈을 누가 다 대느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이곳에서 자주 식사를 한다는 김 모 어르신(70)도 “점심값에 비해 식사가 잘 나온다”고 만족해했다.
서울시민뿐 아니라 수도권 거주 어르신에게도 소문 난 서울노인복지센터의 경우, 지난해 10월부터 점심값 자진납부제를 시행하고 있다. 형편에 따라 양심껏 내도록 한 것이다. 현재는 노후건물을 리모델링하느라 휴관상태이지만, 지난해 점심시간 하루 이용자는 무려 2000명이다. 이 가운데 서울시가 지원하는 무료급식자는 250여명에 불과하다.
◇경로당의 점심 풍경=노인복지관에서 무료급식이 안 되거나 복지관까지 거리가 먼 어르신들은 경로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소일을 한다. 최근에는 경로당이 활성화 돼 복지관 못지않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도 있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예술의마을 경로당은 점심시간이 즐거운 곳이다. 월~금요일 매일 반찬 7~8가지의 점심이 제공된다. 매월 첫째 주 월요일과 둘째, 셋째, 넷째 주 토요일에는 백년옥, 해청면옥, 소들녘, 온돌집 등 인근 음식점의 초청을 받아 외식까지 한다. 왕태식 회장은 “경로당 도우미 지원이 안 되는 12월~2월이 문제다. 이 기간에는 우리 경로당에서 25만원을 주고 도우미를 채용해서 점심을 해결한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김 모 어르신(여·70)은 월·수·금요일에만 경로당에 간다. 일주일에 3일만 경로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자율규칙을 정했기 때문이다. 식사준비는 도우미와 함께 70대 초반의 노인들이 돌아가면서 한다.
점심 식사를 아예 제공하지 않는 경로당도 있다. 서울 중구의 한 경로당 관계자는 “물가는 비싸고 찬조금은 거의 없어 부식비 마련이 어렵다”면서 “점심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한노인회 관계자는 “경로당의 운영은 회장 등 임원진의 의지와 후원자 유무에 따라 천차만별”이라고 말했다.
◇점심값 적절한가=노인들의 점심 한 끼에도 사회복지 정책의 방향과 사각지대 문제가 함축돼 있다. 결식의 우려가 높은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는 무료급식이 당연하고,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다. 문제는 무료급식 혜택에서 제외된 사람들이다. 점심값 2500원이 아까워 사 먹지도 못하고 소외감에 젖는 어르신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 어르신복지과 관계자는 “시에서는 1만명에게 무료급식을 하기 위해 200억원의 예산을 쏟고 있다”며 “물가에 비해 2500원의 식사비는 적절하다”고 말했다. 반면 강남구청 노인복지 관계자는 “지역 어르신의 식사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1인당 1000원씩을 지원한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가장 부유한 강남지역의 점심값이 가장 싸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노인복지관의 점심값에 대해서는 지자체의 재량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중앙정부에서 관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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