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영 기자의 뉴스브리핑] ‘저파라치’를 아시나요?
[유은영 기자의 뉴스브리핑] ‘저파라치’를 아시나요?
  • 유은영 기자
  • 승인 2013.04.05 10:44
  • 호수 36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0세시대에 접어들어 70~80대 어르신도 인터넷을 한다. 예쁜 사진을 올려 블로그를 꾸미고 친한 이들에게 음악을 담은 좋은 글귀를 메일링 하며 우정을 다지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1992년 하이텔에 만들어진 국내 최초 노년층 온라인 커뮤니티 ‘원로방’을 모태로 2009년 설립된 한국고령자정보화교육협의회(회장 이도필)는 그 좋은 예다. 60세 이상 어르신들은 전국 각 지회 원로방에 모여 컴맹에서 컴퓨터 달인으로 거듭난다. 워드 자판도 생소했던 어르신들이 교육을 통해 시와 음악이 어우러진 멋진 작품을 1시간만에 만들어내는 것이다. 능숙한 솜씨로 지인에게 안부를 묻는 메일을 보내거나 단체 회원들에게 소식을 전하면서 어르신들이 느끼는 성취감은 클 것이다. 이렇듯 인터넷은 현직에서 은퇴해 사회 주변인으로 작아진 노인들을 다시 사회 속으로 이끌어내는 소통의 장이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난데없는 저작권법이 말썽이다. 현행 저작권법은 저작권자에게 공연, 복제, 전시, 배포, 공중송신권, 대여권 등 7가지 권리를 보장해 주고 있다. 언뜻 창작자의 창의성을 보호해 주는 듯하지만 별도 등록절차 없이 창작자가 창의성 있는 무언가를 만들면 즉시 권리가 생긴다는 데에 함정이 있다. 나도 모르게 일상생활 곳곳에서 저작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쉬운 말로 남이 찍은 사진을 허락없이 블로그에 올리면 저작권법에 걸린다. 대중 앞에서 자신이 작사작곡한 노래 외의 것을 부르면 저작권자의 저작물을 공연한 것이 되므로 이 역시도 법에 위배된다. 얼마 전 공중파 시사 프로그램에 나온 노래교실은 한국음악저작권협회로부터 월 3만원씩 저작권료를 내라는 공문을 받았다. 주부와 어르신들 앞에서 노래를 가르치는 행위가 ‘공연’이라는 이유다. 이미 노래교실에서 쓰는 반주기와 교재에 저작권료를 내고 있지만, 협회는 동사무소나 구청, 농협에서 하는 노래교실을 상대로 저작권료를 받겠다는 공문을 전국 지자체에 보낸 상태다.
앞으로 미용실이나 옷가게, 음식점 등에서 노래를 트는 것도 저작권료를 받겠다는 계획이어서 조만간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하모니카를 불며 구걸하는 이에게도 저작권료를 받는 우스꽝스런 상황이 나올 전망이다.
무심코 한 행동이 저작권법에 걸리는 것은 일상생활과 법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노래교실에서 노래를 가르치는 행위가 공연이냐 아니냐를 두고 이해가 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법의 경계가 모호한 틈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저파라치’도 생겨났다. 법을 잘 아는 법무법인이 인터넷의 사진이나 상가 간판 서체를 도용했다며 내용증명을 보내 합의금을 요구하면 서민들 대부분은 겁을 먹고 돈을 보내고 만다. 민형사상 처벌이라는 용어만 봐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가릴 엄두도 못 내는 것이다.
인터넷을 하는 어르신들도 이 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블로그에 담을 예쁜 사진 하나 찍으려고 전국을 돌아다닐 수는 없으니 말이다. 창작자에게 대가를 주어 창작의 동기를 부여해 준다는 취지로 생긴 저작권법이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켜 모방을 통한 기발한 창작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사진 하나 썼다고 득달같이 달려들어 돈을 뜯어간다면 시정잡배나 양아치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소아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인터넷 보급이 일반화된 요즘, 자칫 정보화시대의 퇴보를 불러올 수 있는 저작권법의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노래교실 강사의 한 마디는 저작권법의 정비와 보완이 필수임을 각인시킨다.
“그럼 손주가 노래 부르는 게 귀여워서 용돈 주면 공연이 되니 그것도 저작권료 내야겠네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