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 앉아 가만히 생각만 해도 명상이다”
“지하철에 앉아 가만히 생각만 해도 명상이다”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3.04.05 11:17
  • 호수 36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로토닌건강운동’ 펼치는 이시형 박사

“죽을 때까지 자기 발로 걸을 수 있어야지요”
세계 최초로 ‘화병’ 정신의학 용어 인정받아

실체가 없다고 여겨지던 ‘화병’(Hwa-Byung)을 세계 최초로 정신의학 용어로 만든 정신의학계의 권위자 이시형(80)박사는 요즘 그림 배우기에 매료돼 있다. 이 박사는 “그림을 통해 작은 일에 감동하는 습관을 덤으로 얻은 셈이니, 이런 새로운 습관이 많을수록 노년이 풍요로워지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지난 4월 초, 서울 서초동의 한적한 골목에 위치한 세로토닌문화원에서 이 박사를 만나 노년일수록 더욱 즐거워지는 삶에 대해 들었다.

-세로토닌문화원은 어떤 곳인가.
“세로토닌적인 삶을 살자는 게 우리 문화원의 설립 취지이자 이념이자 목적입니다. 세로토닌은 평화적 호르몬입니다. 산에 갔을 때 우리 마음이 차분하고 편안해집니다. 이때 뉴런에서 세로토닌이 분비되고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세로토닌은 폭력조절 기능이 있어요. 우리 마음이, 우리 사회가 너무 충동적이고, 공격적이고, 폭력적이에요. 경제는 10위권이지만 행복지수는 바닥입니다. 왜 그런가요. 아직도 욕심이 많아서입니다. 욕심을 줄이고 여유를 가지고 살자는 겁니다. 외적인, 물적인, 경제적인 성장을 가지고는 절대 행복한 국민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자는 게 세로토닌문화원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
“전국의 130개 중학교에 세로토닌 북클럽, ‘드럼클럽’을 만들었어요. 폭력적인 아이들이 북을 치면서 세로토닌이 분비되고 정서적으로 안정됩니다. 세로토닌문화운동도 합니다. 우리 회원이 100여 명 돼요. 가령 단풍이 좋으면 멀리 가지는 못하더라도 덕수궁에 가서 나무를 보고, 좋은 전시가 있으면 그림도 보러 가고, 내일은 우리가 ‘조영남콘서트’를 보러갈 예정입니다. 우리의 문화적인 성숙도는 개발도상국가보다 못해요. 문화적인 성숙도가 올라가야 합니다. 경제 성장만 내세워 외국인에게 ‘졸부’라는 말 들으면 안 되잖아요.”

이시형 박사는 중년과 노년을 대상으로 하는 세로토닌건강운동도 소개했다. 작년에 우리나라 100세 노인이 1200명으로 늘면서 100세 시대가 코앞에 닥쳤다. 이 운동은 100세까지 내 발로 걸어 다니고, 치매에 걸리지 않고, 생산적인 일을 해 나이 들어서도 우아하고 멋있는 사람이 되자는 게 목표다. 첫 사업으로 강남구청과 함께 4월에 시작한다.
“모든 병은 내장 비만에서 출발합니다. 생활습관을 올바르게 가져 질병을 예방·치료하자는 얘기지요. 남자는 허리가 90cm, 여자는 85cm 이상 되는 사람을 대상으로 5cm를 줄이는 겁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30년 보험 적자가 30조가 난다고 해요. 나라 문을 닫을 판입니다. 한국인은 미련해서 배 좀 나왔다고 병원에 안 갑니다. 예방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그래요. 보건소에서 대사증후군 조심하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듣지를 않아요. 그래서 민간에서 정신문화 측면에서 하자고 우리가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시형 박사하면 카리스마가 있으니까, 강남구청에서 일단 시작해보자고 했어요. 예산도 다 나와 있어요. 강남구청이 부자들이 많으니까. 주민들을 상대로 양재천에서 걷기 연습도 하고, 식사는 이렇게 하자, 마음과 습관을 이렇게 갖자, 체형관리는 이렇게 하자… 그런 걸 가르칩니다.”

-노년이 되면 우리 몸은 어떤 변화를 보이나.
“내가 전에 ‘에이징 파워’(Ageing Power)라는 책을 냈어요.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그 반대입니다. 의학적으로 증명이 됐어요. 네 가지 힘이 있어요. 체력, 정신적인 힘, 사회적인 힘 그리고 영적인 힘이 그것이죠. 사람은 평소 20%만 쓰고 생활할 수 있도록 조물주가 넉넉하게 만들어놓았어요. 80%는 예비로 만들어놓았지요. 체력이 반으로 떨어진다 해도 평소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어요. 80, 90세 노인이 멀쩡하게 돌아다니지 않습니까. 둘째, 정신적인 힘이라는 건, 노인에겐 젊은이에게 없는 관조·슬기·지혜·끈기가 있어요. 일은 끈기로 합니다. ”

이시형 박사는 노인의 뇌는 젊은이와 별 차이가 없고, 공부를 할수록 뇌가 젊어지고 그에 따라 몸도 건강해진다고 강조했다.
“지능은 결정성 지능과 유동성 지능으로 나눕니다. 노인의 슬기와 지혜는 온갖 쓴맛, 단맛, 사회적 경험을 다 겪어 마치 진주가 조개 안에서 익듯이 결정화된 겁니다. 이건 젊은이에게 찾을 수 없어요. 그 반대는 유동성 지능입니다. 가령 금방 본 영화 주인공 이름을 노인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알아요. 그겁니다. 결정성 지능은 나이가 들어도 올라갑니다. 나는 지금도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밤중까지 공부합니다. 지금 쓰고 있는 책이 71번째 책이에요. 예를 들면 그런 사람은 늙지 않아요. 계속 공부하면 뇌가 젊어지고 몸도 건강해집니다. 젊음의 비결이 운동도 중요하지만 뇌를 쓰고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겁니다.”

-사회적인 힘, 영적인 힘은 무얼 말하는가.
“사회적인 힘은 젊은이가 따라올 수 없어요. 우리나라 캐시(돈)의 80%를 노인이 가지고 있다고 해요. 앞으로는 아이들에게 다 주지 않아요. (자식이) 부모를 모시려 해야지 주든가 하지요. 자기 케어는 스스로 합니다. 노인은 돈·기술·지식·경험·친구-휴먼 네트워크가 풍부해요. 이건 젊은이에게 없는 겁니다. 영적인 힘은 종교적인 것은 아니지만 우주적인 감각이라든가 그런 걸 말합니다. 하늘을 쳐다보면서 하늘의 끝은 어딜까, 우주는 하나로 연결돼 있구나 상상하고, 철 되면 잊지 않고 피는 개나리를 보고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낍니다. 젊었을 적에는 이런 여유가 없어요. 노인의 즐거움이란 게 바로 이겁니다. 노인은 명상을 따로 하지 않아도 명상을 하는 겁니다. 그런 것들이 노년의 즐거움입니다. 그런 게 영적인 성숙입니다.”

-그런 힘들을 잘 적용하면 노년의 우울증이나 자살은 줄어들지도.
“단, 그걸 발휘하는 지혜와 슬기가 있어야 합니다. 세계의 석학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게 위즈덤(지혜)이 마지막 완성이라고 해요. 지혜가 있음으로 해서 노년이 아름답고 화려하고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도 무릎도 시원치 않고 허리도 아픕니다. 그렇지만 저녁에 자리에 누우면 감사해 합니다. 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가고 싶은 곳을 가게 해준 게 고맙다고요. 헬렌 켈러 여사가 ‘하느님, 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루만 눈이 보이지 않게 하는 축복을 내려달라’고 기도했어요. 그걸 축복이라고 했어요. 그 다음은 이 세상이 달리 보일 것이 아닌가요. 참 절실한 이야기입니다. 나이가 들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볼 수 있는 것, 내가 밥을 먹을 수 있는 것, 친구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모든 일들이 얼마나 귀한 건가. 젊었을 적에는 이런 걸 못 느낍니다. 있는 것도 모르지요. 그게 늙어가는 하나의 슬기이자 지혜입니다. 인간을 가장 퇴색하게 만드는 게 ‘당연심’입니다. 두 발로 걷는 걸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됩니다.”

-요즘 그림을 배운다고.
“최근 산에 대해 쓴 책 ‘이젠, 다르게 살아야 한다’에 들어간 그림이 명상적이고 참 좋더라고요. 그래서 그림을 그려주신 분에게 부탁해 문인화를 배워요. 매주 수요일 저녁, 동료 20명과 함께 그림도 그리고, 이야기도 하고, 명상도 좀 하고 그럽니다. 두 달째 기초과정을 겨우 마쳤어요. 내일부터는 죽(대나무)을 그립니다. 집중을 하며 1시간 반을 그리다보면 시간이 언제 지나간 줄 모릅니다. 문인화는 그림을 잘 그리는 것보다는 자기 개성을 표시하는 겁니다. 그래서 대나무도 일자로 쭉 뻗은 것도 있고 그래요.”

-베스트셀러가 많은 것으로 안다.
“내 책에 베스트셀러에 안 오른 게 10권 정도이고 다 올랐어요. 얼마나 오래 머무느냐가 문제였으니까요. 제게는 고정 독자가 10만명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내 책이라면 무조건 삽니다. 내용이 중복되지 않나 하는 얘기가 나왔지만 그런 이유에서 더 조심하지요. ‘아, 이 박사 요즘 글이 왜 이래’ 하면 안 되니까요.”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면?
“‘배짱으로 삽시다’입니다. 첫 달에 100만부가 팔렸어요. 저도 놀랐어요. 50세에 처음 쓴 책입니다. 지금까지 140만~150만부가 나갔을 겁니다. 이번에 출판사에서 30주년 증보판을 내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내가 80이니까 30년 동안 71권을 썼네요. 언젠가 교보문고 갔다가 ‘배짱으로…’하고 내가 쓴 책 ‘자신 있게 사는 여성’ ‘지혜롭게 사는 여성’ 3권이 베스트셀러 1,2,3위에 나란히 오른 걸 봤어요. 기분이 좋더라고요.”

-책이 잘 나가는 이유는.
“정신과 의사는 재밌는 이야기가 많아요. 여러 사람의 인생을 들으니까요. 사람들에게 어려운 정신의학을 쉽고 재밌게 들려주려고 노력합니다.”

-인세도 많을 텐데.
“세로토닌문화원에 다 들어가고 나에게는 한 푼도 안와요. 여기가 NGO단체에요. 사단법인이에요. 회원이 얼마 안 됩니다. 이 집에 세 들어 사는데 집세부터 시작해서 모든 비용에 내 강연료, 인세가 다 들어갑니다.”

-홍천에 있는 힐리언스는.
“거기는 내가 프로그램을 실제로 만들고 컨설턴트로 일하는 곳이에요. 원주인은 제일 많이 투자한 대웅제약이고 풀무원·매일유업·동아제분이 주주로 돼있어요. 나는 오리지널 파운더로서 말단 주주입니다. 그것도 나의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 얼마 들어가 있는 거지 돈도 안돼요. 운영은 전혀 안 해요. 난 경영은 전혀 모릅니다.”

-앞으로 몇 권이나 더 쓸 계획인가.
“써놓은 게 두 권입니다만 출판할 기회가 없어서 못나오고 있어요. ‘뇌 피로’라는 원고를 신문사에 넘겼지만 자꾸 내가 다른 책을 내니까 못 내고 있다고 해요. 요즘 힐링이 열풍이잖습니까. 한국사회를 ‘피로사회’라고도 하는데 뇌가 피로해서 그런 겁니다. 그 다음에 나올 게 명상에 대한 것입니다. 뇌 피로의 해결책도 명상이고, 힐링의 기본도 명상입니다. 명상이 바로 세로토닌입니다. 세로토닌을 가장 효과적으로 확실하게 분비할 수 있는 테크닉이 명상입니다.”

-명상은 누구에게나 가능한가.
“물론입니다. 어딘가에 주의를 집중하는 상태면 그게 명상입니다. 예를 들어 기자는 글 쓰는데 집중하면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고 시간의 흐름도 잊지요. 그게 바로 명상입니다.”

-지하철에 앉아 가만히 생각하는 것도 명상인가?
“그것도 명상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