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사꾼 박태진의 황토이야기(26) 토종씨앗의 위기
유기농사꾼 박태진의 황토이야기(26) 토종씨앗의 위기
  • 박태진
  • 승인 2013.05.03 15:48
  • 호수 36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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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시장은 천문학적 시장가치 지녀
정부·농민 토종종자 개발에 힘써야

농사의 네 가지 필수요소는 땅, 비료, 물, 씨앗이다. 그 중 제일은 씨앗(종자)이다. 씨앗 자체가 식물이자 생명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토양과 물이 풍부해도 좋은 종자가 없으면 농사는 무용지물이 된다. 종자는 IT산업으로 말하면 반도체와 같다. 모든 농업의 기본이자 핵심요소이며, 인류의 생명유지, 건강, 삶의 질 등과 직결돼는 먹거리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귀찮고 힘이 들어도 토종 종자를 구입해 심고 이듬해 자가채종(自家採種)한 종자를 파종하는 순으로 대부분의 작물 재배를 했다. 변종되지 않은 종자는 탈 없이 다음 세대를 이어갔다.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좋은 작물을 얻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농약, 제초제를 쓰지 않고 자연재배 상태에서 자가채종하면 식물 자체의 생명력과 본래의 품질을 갖춘 오리지널 작품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토종씨앗이 위기에 처했다. 이유는 다국적 기업의 ‘유전자 조작 종자’에 있다.
다국적 화학물질제조 기업들은 현재 ‘종자전쟁’ 중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화학 무기를 제조하고 조달한 전력이 있는 다국적 기업들이 현재 유전자 조작 종자를 개발하고 판매하고 있다. 그들은 전쟁이 끝나자 화학무기 제조기술을 응용해 현재 제초제·살충제 등의 농약을 개발, 세계 농약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세계적인 기업 ‘몬산토’(Monsanto)가 좋은 예다. ‘몬산토’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신경가스 제조 기술로 고엽제·초강력 제조제 등을 만들어 큰 성공을 거뒀다. 그 후 ‘몬산토’는 다른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바로 ‘유전자 조작 종자사업’이다. 20여년 전부터 시작한 이 사업으로 ‘몬산토’는 또 다시 큰 성공을 거뒀다. ‘몬산토’의 종자 관련 연간 매출액은 천문학적이다. 비공식적으로 약 135억달러(한화 약 15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로 듀퐁, 바이엘 등 세계적인 화학물질제조 기업들도 앞 다퉈 ‘유전자 조작 종자사업’에 뛰어들어, 세계 종자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씨앗의 주인은 농민이며, 식량주권의 실제 수호자도 농민이다. 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농민의 종자주권과 선택권은 없어진 지 오래다. 국내 대표적 종자 기업이었던 흥농·중앙·서울종묘 등은 IMF때 ‘몬산토’를 비롯한 다국적 기업에 모두 넘어갔다. 이에 더해 토종 종자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국내 큰 종자 회사 중에도 유전자 조작 연구와 재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곳이 있을 정도다. 우리 조상들은 흉년에 양식이 떨어져 배를 곯아도 종자를 넣은 자루만큼은 머리맡에 베고 잘 만큼 종자를 소중히 했다. 씨앗보존은 다음 농사의 연속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농업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활로를 찾아야 한다. 그 대안은 토종 씨앗을 지키고 지배하는 것이다. 인도의 생태환경운동가 시바 박사는 “세계적 다국적 기업의 종자 독점은 씨앗을 약탈하는 해적질”이라 말을 한 바 있다. 이는 식량안보 차원에서 볼 때 매우 위험한 일이고 나아가 지구와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 올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일부 뜻있는 학자들과 농민들이 ‘씨드림’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토종 씨앗을 보존하고 나누는 일을 하고 있다. 토종 종자가 없으면 재배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식량 주권을 상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토종 종자를 구입하거나 나누고 싶은 사람은 다음카페 ‘씨드림’(cafe.daum.net/seedream)을 방문하면 정보를 교류할 수 있다. 이러한 활동들은 생물 다양성과 작물품종 보호, 유전자원 확보 등에 꼭 필요한 일이다.
이 땅에서 자생하고 기후와 환경에 적응해 대대로 번식해 온 살아있는 종자를 버리고 불완전한 정체불명의 종자를 선택의 여지도 없이 비싼 값을 지불하고 사다 재배하는 것은 참 어리석고 애석한 일이다. 이는 생명의 터전인 우리 땅의 오용이자 오염과 같다.
현재는 물론 미래의 인류에게 건강하고 안전한 먹을거리와 식량 주권을 제공하기 위한 해답은 ‘유전자 조작 종자’에 맞설 수 있는 우량종자를 확보하고 개발하는 것이다. 정부와 농민 그리고 소비자가 힘을 합쳐 노력하며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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