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영 기자의 뉴스브리핑] 노인 고독감 악용하는 ‘떳다방’ 사기 판쳐
[유은영 기자의 뉴스브리핑] 노인 고독감 악용하는 ‘떳다방’ 사기 판쳐
  • 유은영 기자
  • 승인 2013.05.20 10:02
  • 호수 3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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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을 상대로 한 사기가 끊이지 않는다. 보이스피싱은 전용신고번호 개설과 정부당국의 지속적인 홍보로 개선의 조짐이 보인다. 없어지지 않는 것은 건강식품 사기다.
최근 강원 춘천경찰서는 할머니들을 상대로 저가의 건강식품을 고가에 판매한 혐의로 책임자 박 모씨와 팀장 이 모씨 등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박씨 등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한 건물 지하를 빌려 불법 판매장을 만들어 놓고 할머니 66명에게 글루코사민이 함유된 건강기능식품 1억원어치를 판매한 혐의다.
조직적으로 움직여 노인들의 돈을 갈취한 다음 흔적 없이 사라지는 이른바 ‘떳다방’ 사기단의 수법은 이렇다. 거리에서 화장지, 쌀 등 생필품을 싸게 판다고 할머니들을 불러모아 불법 판매장으로 유도한 뒤 만담과 노래 등 공연으로 흥겨운 시간을 보내게 한다. 중간에는 간식과 점심도 대접하며 돌아갈 땐 화장지, 세제 등을 거저 들려 보낸다. 이런 식으로 수 개월 동안 환심을 산 뒤에 몇 만원짜리 건강기능식품을 구하기 어려운 약재가 들어갔다고 속여 수십배 부풀린 가격에 판다.
춘천에서 적발된 사기단도 저질녹용과 중국산 한약재로 만든 7만원짜리 건강기능식품을 관절염에 특효가 있는 의약품인 것처럼 속여 70만원에 팔아 무려 10배의 폭리를 취했다. 이들은 할머니들이 물건을 가져가고 돈을 제때 갚지 못하면 할부 금융업체 관계자를 직접 불러 개입시키는 악질적인 범행도 서슴지 않았다.
물건을 사 간 노인들이 ‘속았다’는 사실을 알 때쯤에는 흔적도 없이 매장을 정리하고 다음 지역으로 옮기는 것이 이들 ‘떳다방’의 판매수법이다.
조사결과 이들 사기단 장부에 기록된 할머니 회원만 전국에 1천명. 주 고객은 세상 물정에 어두운 70세 이상의 노인들이었다. 팀을 짜 각 지역에서 노인 회원들을 지속적으로 모집, 관리해온 것이다.
노인이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했다는 소식은 줄어드는데 건강식품 판매사기를 당했다는 소식은 두 달에 한 번꼴로 들려온다. 앞으로도 웬만해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바로 치명적인 허점, 노인의 고독감을 이용한 상술이기 때문이다.
실제 대다수 피해 노인들은 이들 사기단과 수개월 동안 얼굴을 대해 친밀도가 높아진 탓에 경찰조사 과정에서 오히려 이들의 선처를 호소한다. 심지어 사기당한 것을 알면서도 또다시 판매장에 찾아가기도 한다. 한 박스에 2만원도 안 하는 가짜비누를 20만원에 사 놓고도, 팔도 각설이 타령 등 재미난 공연을 보여주며 말상대를 해 주는 사기단을 다시 찾아가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보이스피싱은 세상물정에 어두워 당하고 건강식품은 외로워서 산다. 그렇다면 보이스피싱은 대처요령만 알면 피해가고 건강식품 사기는 외롭지 않으면 피해간다는 답이 나온다.
지난해 미국에서 외로운 사람들이 일반인보다 사망위험이 약 두 배 높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었다. 이 연구결과만 보면, 불법 건강식품 매장을 찾아가는 노인들이 가짜 건강식품을 수십배 손해를 보고 사기는 했어도 사기단을 통해 얻은 고독감 해소로 사망위험을 낮추었으니 반드시 사기를 당했다고 볼 수 없다는 다소 역설적인 추정도 나온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노인상대 사기는 치밀한 계획하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재롱’을 떨며 갈데없는 노인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고 해도 ‘돈 갈취’를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사기로 인한 자녀와의 갈등은 차치하더라도 나를 온전히 지키려면 소일거리를 찾아 고독감을 느낄 새 없는 생활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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