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영 기자의 뉴스브리핑] 가난이 대물림되는 부양의무제 폐지요구 거세
[유은영 기자의 뉴스브리핑] 가난이 대물림되는 부양의무제 폐지요구 거세
  • 유은영 기자
  • 승인 2013.06.14 11:37
  • 호수 3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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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임대주택에 사는 72세 임모 어르신은 작년까지 1년 반 동안 노숙생활을 했다.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했었으나 아들 소득이 많아 수급자가 되지 못했다. 아들 소득은 200여만원. 중3, 초1 두 자녀를 키우며 경기도에 5500만원짜리 전셋집에 살고 있다. 손녀딸들과 한방을 쓰는 것도, 아들 부양을 받는 것도 부담스러워 친구집에 간다는 핑계로 집을 나온 임 어르신은 그렇게 길거리를 떠돌다 사회단체를 만나 전세임대주택에 입주하게 됐다.
2011년 봄 폐결핵에 걸린 78세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권자가 아니라며 치료를 거부당해 병원과 보건소를 오가다 병원 앞에서 객사했다. 앞서 2년 전에는 아버지에게 근로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장애인 아들이 수급권을 받지 못하자 아들에게 수급권을 달라며 아버지가 자살했다.
부양의무제의 허점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현행 법은 1촌내 직계혈족과 그 배우자의 소득과 재산이 기준 이상이면 가족에게 우선 부양을 받도록 하고 있다. 본인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여도 부양능력이 있는 가족이 있으면 기초생활수급권을 받지 못한다. 빈곤사회연대에 따르면 이 제도에 걸려 실제 부양을 받지 못해도 기초수급비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100만명이 넘는다. 부양의무자의 범위가 과도하게 넓고, 부양능력 판정기준이 낮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복지부는 기초생활수급대상에서 제외한 8만4000명 가운데 5만1000여명이 실제 빈곤층임에도 불구하고 부양의무기준을 충족한다는 이유로 탈락시켰다. 부양의무제는 가난이 대물림된다는 점에서도 폐지가 요구되고 있다. 아버지가 기초수급권자여도 아들이 성인이 되어 돈벌이를 하면 수급권을 박탈당한다. 부양의무를 떠맡은 아들은 가족 생계를 책임지느라 미래를 저당잡히고 만다.
장애인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은 지난해 8월부터 서울 광화문 역사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공동행동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통한 기초수급 사각지대 해소를 주장하고 있다.
국회에도 부양의무제를 없애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이 상정돼 있지만 논의는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제도 폐지로 드는 추가비용이 5조7000억원이라며 정부가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대안으로 맞춤형 개별급여제를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한다고 했지만 이 역시 시혜 대상의 양적 확대에 불과할 뿐이라는 지적이다. 현행 기초수급비에 모두 포함돼 있는 생계, 주거, 의료, 교육비를 분리해 지원받는 대상을 늘리자는 의도지만, 공동연대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없이 개별급여 도입만으로는 빈곤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공동연대 관계자는 “부양의무자는 직계존속인 부모와 직계비속인 자녀를 가리키는데 개별급여제에도 똑같이 부양의무제를 적용한다면 차상위계층 중 부양의무자가 없는 사람만 혜택을 본다는 얘기”라며 부양의무제 완전 폐지를 주장했다. 빈곤사회연대 관계자도 “생계급여와 주거급여를 분리해 지원하면 실제 기초수급자가 받는 현금이 줄어들게 돼 수급자의 생활은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1981년 5월 국내 최초로 제정된 노인복지법 또한 햇빛을 보기까지 무려 6년간의 진통을 거친 이유가 부양의 책임을 누가 지느냐에 정부와 국민의 의견이 갈렸던 데 있다. 한국노인문제연구소에 따르면 당시 정부는 가족이 노인을 부양하는 전통 규범 해체를 우려해 이 법 제정을 계속 미뤘다. 30년이 지나 가족해체 현상이 심화된 지금도 부양의무제를 고수하는 것은 전통규범 유지가 아니라 책임 회피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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