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창조적 인생 예술가, 노년을 위하여
[금요칼럼] 창조적 인생 예술가, 노년을 위하여
  • 이호선
  • 승인 2013.07.04 19:59
  • 호수 3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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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유행가 중에 ‘이름이 뭐예요? 전화번호 뭐예요?’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가 있다. 누구나 이름이 있고, 그 호칭은 관계를 드러내며 종종 상태를 나타내기도 한다. 우리 노년들의 이름은 무엇인가?
노년을 빛바랜 젊음으로 보는 사람들은 노년을 ‘추억을 먹고사는 자들’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매달려, 무너진 간이역 자리를 보며 20대 낭만의 그림자를 밟고 있는 노년의 모습이 노년의 실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노년을 고통이 녹고 있는 도가니로 본다. 노년기 4고(苦)를 노년의 키워드로 보는 이들은 노년기는 아프고(病苦), 가난하고(貧苦), 외롭고(孤獨苦), 할 일이 없는(無爲苦) 시기라며 노년에게 무한한 동정 혹은 연민을 보낸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노년을 보는 시선은 때로는 복지(福祉)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부양(扶養)이나 봉양(奉養)이라는 이름으로 노인들을 ‘돌봄의 대상’으로 부른다.
노년기를 부르는 다른 이름도 있다. ‘지혜의 담지자’이다. 노년의 경험과 삶의 고갱이들을 한 몸에 담고 있는 역사의 목격자들에게 붙이는 말이다. 젊은이들이 현대사회 노년들을 정말 그렇게 부르는가?
딱히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국민의 1/3이 사용한다는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도 쩔쩔매고, 혹시 고장 날까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 새로운 정보를 과거의 정보와 연결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노년들을 젊은 세대들이 그닥 지혜의 보고로 느끼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노년을 부를 만한 다른 이름은 없는 걸까?
꼴라쥬라는 말이 있다. 꼴라쥬란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하여 하나의 의미 있는 작품으로 구성하는 회화기법을 말한다. 종이, 풀, 색연필, 쇠붙이, 진흙, 옷감, 나뭇잎 등등 다양한 종류의 재료를 써서 결국 아름다운 작품을 완성한다. 꼴라쥬는 작가마다 매우 다른 방식으로 작업을 하며, 재료, 구성, 설치, 도색 등도 그야말로 각양각색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우리의 지문만큼이나 다양하다. 꼴라쥬의 첫 재료는 마지막 재료보다 시간적으로 오래되고, 마지막 재료가 작품에 얹어져야 비로소 작품이 된다. 작업과정은 붙이고 떼기를 반복하고, 진행하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시간과 재료에 작가의 창조적 빛이 더해져야 작품이 완성된다.
꼴라쥬, 가히 노년의 삶과 같다! 인생을 시작한 초년은 노년에야 비로소 인생의 꼴라쥬를 완성한다. 한여름이 지나 단풍이 들고나면 비로소 나뭇잎은 떨어진다. 지난 봄의 화려함과 여름의 무성함을, 그리고 가을의 낙엽으로 그 나무를 ‘추억’할 수도 있다. 겨울을 견디고 있는 그 나무의 앙상한 가지와 두꺼워진 껍데기, 지난 여름 바람에 생채기가 난, 그래서 겨울에 더욱 처연해보이는 가지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나무를 ‘돌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무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시기는 겨울이다. 어떤 것으로도 가리지 않고 나무의 실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겨울의 그 나무를 보아야 우리는 나무의 모든 모습을 보고, 나무에 이름을 붙이게 된다.
겨울은 나무의 꼴라쥬가 완성되는 시기이고 사람의 꼴라쥬는 바로 노년기에 완성된다. 그런 의미에서 붙이고, 오리고, 그리기를 반복하며 추억으로 빈 공간을 메우고, 작품을 돌보는 노년의 새로운 이름은 바로 ‘창조적 인생 예술가’이다. 이 창조적 예술가들에게는 자신의 삶의 마지막 재료를 창조적 기지로 채워나가는 일이 남아있다.
노년기 삶의 자리를 겨울철 나무처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된 노년, 그 인생 예술가들이 자신의 꼴라쥬를 완성하기 위해 기억할 것이 있다. 바로 젊은 시절뿐만 아니라 지금도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 그리고 바로 지금이 남은 재료를 앞에 두고 최고의 창조성을 발휘할 때라는 것이다.
한겨울 나무의 선명한 모습처럼 노년의 인생 예술가들은 인생이라는 작품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빅토르 위고는「레미제라블」을 완성하는 데 36년이 걸렸고, 괴테는「파우스트」를 60세부터 82세까지 써서 완성했다지만, 우리 인생의 작품은 이보다 훨씬 오랜 세월이 걸렸으며, 아직도 완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노년기 창조적 인생 예술가들이 보여줄 부드럽고 관대한 선택과 그 선택에 걸맞은 최고의 열정이 담긴 꼴라쥬를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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