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지혜의 시력을 높이는 안경
[금요칼럼] 지혜의 시력을 높이는 안경
  • 신은경
  • 승인 2013.08.02 11:16
  • 호수 3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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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이기는 장사가 없습니다~.”
스무 살 여릿여릿한 앵커우먼의 얼굴로 나를 기억하던 사람들이 요즘의 나를 만나면 간혹 하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의 삼십 년 전은 어땠느냐고 묻고 싶지만, 세월 앞엔 어느 누구도 공평할 수밖에 없다는 위로와 다독임 같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얼마 전 들은 지혜로운 말 하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 눈이 잘 안 보이게 되는 까닭은 대략 안 봐도 되는 것은 안보고 사는 것이 좋다는 뜻이며, 귀가 잘 안 들리게 되는 이유는 대략 듣지 말아야 할 것은 안 듣고 살아도 된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세상은 빨리 변하고 배워야 할 것과 쫓아가야 할 것은 많은데, 사람의 인체 시계는 도저히 그 속도를 맞춰 따라갈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들리는 대로 다 듣고 살다가는 그 말에 상처받아 서운하고, 그것이 모두 몸에 우울하게 남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치는 그렇다고 하지만, 요즘 같은 장마철에 계속되는 궂은 날씨는 눈을 더욱 침침하게 한다. 그리고 잘 안 보이는 눈은 마음을 더욱 흐리게 만든다. 선배님들이 들으시면 꾸짖으실 말이긴 하나, 이제는 해가 질 무렵엔 신문읽기도 수월치 않고 빛이 적은 음식점에서는 메뉴를 읽기도 불편하다. 약의 복용법 설명서나, 오래 전 내가 적어놓은 깨알같은 글씨도 이제는 아른거려 읽을 수가 없다. 그런가 하면 머리가 아파 벌써 책 읽기를 포기했다는 친구들도 여럿 있다.
기력이 떨어진 나의 눈을 도와줄 안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차에,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다. 우리가 나이 들며 써야 할 안경은 돋보기가 아니라 바로 ‘지혜의 안경’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CTS-TV의 <7000 미라클>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깨닫게 된 사실이다.
젊은 시절,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시력으로 큰 것, 큰 글씨만 본다. 크게 성공한 사람, 큰 집에 사는 사람, 큰돈을 번 사람, 자식까지도 번듯한 학교 보내 크게 잘 키운 사람들만 눈에 뜨인다. 그런 사람들만 쳐다보며 부러워하고 자신들도 그렇게 살고 싶어 내달린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따라 달릴 수도 없고, 그곳에 도달할 수도, 그럴 시간도 남아있지 않은 것이 우리 인생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눈의 시력은 큰 것까지도 잘 안보이게 된다. 그러나 마음의 시력은 더욱 지혜로워지는 것이다.
<7000 미라클>은 세상엔 작은 일에 자신의 인생을 모두 바치며 사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선천성 기형을 갖고 태어난 자식을 위하여 자신의 인생을 모두 헌신하는 부모를 소개한다. 배를 타고도 한참 들어가야 하는 섬마을에서 성도님 몇 분을 모시고 교회를 섬기는 목사님도 소개한다. 그런 분들은 대부분 마을의 맥가이버요, 영농 후계자요, 목욕 돌봄담당이며, 상담자가 된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많은 문화적 영향을 끼쳤던 초창기 파란 눈의 선교사들처럼 이제는 세계 전 지역에, 특히 오지에 나가 헌신하는 한국인 선교사님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소개한다. 그들에겐 열대병이나 현지인들의 핍박이나 가난, 고난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의 숭고한 가치의 헌신에 비하면 말이다.
나는 <7000 미라클>의 녹화가 있는 날은 미리 충분한 눈 화장을 한다. 자칫 감동이 밀려와 눈물이라도 쏟아지면 주체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눈 화장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감정조절을 잘 해야 한다는 얄팍한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오늘도 어김없이 작은 자들의 큰 헌신 앞에서 나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나의 지혜의 눈만, 지혜의 안경만 더욱 밝아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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