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박] 아이와 어른의 아찔한 동거
[두레박] 아이와 어른의 아찔한 동거
  • 신춘몽 기자
  • 승인 2013.08.02 11:17
  • 호수 3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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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기만 한 아이들과 나이 먹은 어른들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필자 역시 나이만 먹은 어른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세월을 뒤적이게 될 때가 많다. 심지어 지난 날 먹었던 크림빵 맛조차 그리워진다. 이렇게 과거를 구석구석 뒤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얼떨결에 보냈던 시간들은 오래 묵은 장맛처럼 묘한 향기를 불러일으키고, 아픈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나른한 오후 같은 나이가 된 필자는 누워서 아침 드라마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양푼에 밥을 비벼 먹으며 침대 모서리에 앉아 드라마와 대화를 해도 말릴 사람 없다. 환갑, 진갑을 당당히 넘긴 무늬만 어른이 된 것이다. 피카소 그림을 닮은, 헝클어진 머리카락의 내 몰골에는 관심 없는 강아지 눈동자 네 개만 내가 먹고 있는 비빔밥을 갈구한다. 이놈들은 주인의 게으름을 나무랄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다가 남의 일인데도 무척 화가 난 적이 있다. 중학생 정도 되는 아이들이 공원에서 담배를 피우기에 어른이 야단을 치다 가벼운 폭행을 해서 고소를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폭행은 잘못이다. 그러나 어른이 아이를 옳게 가르치려는 마음에서 손을 댔다면 감사한 일이 아닐까.
어느 날 여고 재학시절 참스승다우셨던 선생님과 식사를 하게 됐다. 선생님은 요즘에는 애들이 잘못을 해도 야단치거나 체벌하지 않는다고 했다. 필자는 평소 사랑과 관심의 회초리에 찬성하고 있던 터라 어째서 그러시냐고 물었다. 씁쓸한 표정의 선생님은 “잘못한 아이에게 회초리나 벌을 주고 나면 다음날 교무실에 있기가 두려워 지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가까이서 지켜봐 온 선생님은 전생에서도 스승이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분이었다. 그랬던 선생님이 이제는 그냥 월급 받는 직장인으로 변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프고 아이들의 앞날이 걱정되기까지 했다. 학부모의 눈치를 봐야 하는 학교가 진정한 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언젠가 우리나라에 다른 나라가 쳐들어오지 못하는 이유는 중학생이 무서워서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국군보다 무서운 중학생이라니. 당시에는 그냥 웃고 지나쳤지만, 막상 뉴스를 접하고 나니 그 말이 확인 된 것 같아 은근히 화가 났다. 중학생을 야단치고 경찰서에 잡혀갔다니 말이다. 물론 그를 고소한 부모의 마음은 이해해야 할지도 모른다. 요즘은 자식이 하나, 둘뿐인데 얼마나 귀하고 소중하겠나. 그러나 그처럼 소중한 내 자식에게 바른 길로 가라고 야단치는 어른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우리 세대만 해도 부모가 가난하다고 원망하거나 유기하는 일은 없었고, 수업 태도를 지적한 선생님을 경찰에 신고하는 학생도 없었다. 삼대독자 아버지의 무남독녀였던 필자 역시 꽤 귀한 딸이었는데, 여고 1학년 때 선생님께 종아리를 맞고 와도 아버지는 허허 웃으시며 빨간약을 발라줬다. 아버지는 선생님을 원망하지도, 필자를 채근하지도 않았다. 아마도 아버지는 딸이 맞을 행동을 했고, 선생님이 부모 대신 사랑의 매를 들었으니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이웃 중에 일흔이 넘은 어르신이 50년 동안 피웠던 담배를 최근에 끊었다고 했다. 아내가 수십 년 동안 잔소리를 해도, 기관지가 약한 아이들이 담배 연기 때문에 고통스러워해도, 의사선생님의 충고에도 끊지 못했던 담배였다. 어느 날 어르신은 평소처럼 담배를 입에 물고 대문 밖을 서성이고 있었는데, 서너 명의 아이들이 다가와 “할아버지, 담뱃불 좀 빌려주삼”하고 말했다고 한다.
옛날 같았으면, 이런 아이들도 없었을 테고, 있어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코피가 터지도록 맞았을 것이다. 어르신은 황당했지만 아이들의 눈빛이 무서워 피우던 담배를 애들에게 넘겨주고 황급히 집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곤 보물처럼 아끼던 담배까지 모두 부셔서 휴지통에 버렸다고 한다.
손주들보다 어린 아이들에게 담뱃불을 준 당신이 너무 부끄럽고 화가 났으며, 아이들이 두려워 야단치지 못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치욕을 안겨준 담배를 끊었지만 그 날을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이 많이 아프다고 한다. 어른이 어른답게 행동하지 못한 것이 문제인지, 아이들이 아이답지 못한 것이 슬픈 일인지…. 감히 아이다운 아이들과 어른다운 어른들이 넘쳐나는 세상을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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