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어머니의 모시적삼
[기고] 어머니의 모시적삼
  • 황말예
  • 승인 2013.08.19 11:45
  • 호수 3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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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가 요란하게 노래하는 여름의 어느 날, 하얀 모시옷 입으시고 딸네 집에 오신 우리 어머니. 아이들은 좋아서 어찌할 줄 모르고 과묵한 사위도 장모님을 대접하기 위해 씨암탉을 잡으려고 시끌벅적 야단이다.
우리들의 젊은 날 아련한 추억들은 꿈인 양 흘러간다. 아이들도 모두 자라 제 갈 길을 가고, 흰머리가 성성해진 우리 부부는 행여 ‘손주들이 오려나’ 하고 늘 대문간을 바라보던 어머니를 닮아간다.
여름 한가운데서 오늘 불현듯 어머니가 생각나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던 어머니의 모시적삼을 꺼내 봤다. 마치 어머니를 본 것처럼 그리움에 사무친다.
혼자서 팔 남매의 무거운 짐을 다 지시고, 자식들 모두 출가시킨 장한 우리 어머니. 매년 여름이 오면, 어머니의 모시적삼 앞에서 눈시울을 붉히게 된다.
모시적삼에는 이 못난 자식과 23년을 보낸 어머니의 냄새가 묻어 있다. 이제는 옷감 곳곳에 구멍도 나고 많이 상해있지만, 올 여름에도 곱게 손질해 어머니를 본 듯 입어본다.
나에게 어머니란 단어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래서 늘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풋풋한 여름날도 그 끝을 향해 가면, 가을이 저 멀리서 오고 있으리.
다시 어머니의 흔적을 곱게 손질해 장롱에다 모셔놓고 알뜰살뜰 남은 생을 살아가야겠다.
먹구름이 소나기를 몰고 오려나. 지붕 위 빨간 고추가 여름 햇볕에 몸살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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