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노부부와 누렁이
[금요칼럼] 노부부와 누렁이
  • 엄을순
  • 승인 2013.09.13 11:33
  • 호수 3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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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얘기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한동안 닭을 키운 적이 있었다. 지금은 결혼해서 씩씩하게 잘 살고 있는 딸이 중학교 2학년 때였던가. 학교 다녀오는 길에 노란색 예쁜 병아리를 한 마리 사왔다. ‘삐악’거리는 소리에 이끌려 가보니 예쁜 병아리들이 종이박스 안에서 오글거리며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더란다. 그중 색이 제일 노란 병아리랑 눈이 마주쳤는데 도저히 그 눈빛을 외면하지 못해 데려왔노라 하면서 ‘먹이는 내가 챙길게, 키우자’하며 사정사정 했다. 먹이 챙긴다는 말을 믿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시 갖다 줄 수도 없는 처지. 작은 것이 힘이 들면 얼마나 들까 싶어 허락했다.
하지만 예삿일이 아니었다. 병아리는 나를 엄마로 착각을 하는지 아파트 좁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나만 졸졸 쫓아다녔다. 뒤돌아가다가 하마터면 밟을 뻔도 했고, 오가며 싸대는 배설물 처리도 큰일이어서 베란다에서 키우기 시작했다. 베란다 화초들을 몽땅 뜯어 먹고 흙을 파헤쳐가며 병아리는 무럭무럭 잘도 자랐다.
한 달인지 두 달인지 지났다. 이젠 제법 병아리 티를 벗고 양 옆구리에서 거센 털이 나오기 시작했다. 중닭이 된 거다. 하루 종일 좁은 베란다에 가두어 두기도 미안해 하루 한 번 밖에서 산책도 시켰다. 산책길에 도망 갈까봐 발목에 끈을 묶어 데리고 나갔다. 그런데 걱정이 생겼다. 시도 때도 없이 날리는 털 때문에 온 식구들의 호흡기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목이 깔깔해지며 시도 때도 없이 기침과 가래까지…. 병아리가 닭이 되고 제 수명을 다 할 때까지 키워보려 했었는데 이제 와서 이 닭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이미 삼계탕 사이즈는 훨씬 넘었지만 키우다 잡아먹을 수도 없고. 아하! 시골에 사는 친척 언니 생각이 났다.
“이 닭은 수명 다 할 때까지 잡아먹지 말고 잘 키워줘” 하고 당부하며 맡겨 놓고는 집에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유명하다던 닭백숙 집이 있었지만 차마 그날만은 그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쌈밥집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우리 집 마을 입구에, 마주보이는 두 집에서 개를 키우고 있다. 한쪽은 할머니 혼자 진돗개 두 마리를 14년 넘게 키우고 계시고, 맞은편은 노부부가 더운 바람이 수그러질 때가 되면 누런 강아지 한 마리를 집 앞에 묶어 놓았다가 다음해 초복쯤에 없애버리는(?), 그야말로 1년이면 한 번씩, 키우던 개를 갈아치우고 있다.
할머니가 정성스레 만들어 주신 순 살코기 한우를 얻어먹으며 사랑을 듬뿍 받고 사는 늙은(?) 개 두 마리와, 개의 얼굴을 익히기도 전에 복날이면 없어져버리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는 누런 개. 외모로는 별 차이가 없다. 가까이 가면 미친 듯이 짖다가, 잠시 후 눈에 익으면 꼬리를 흔들어대는 영리함의 정도도 비슷하다.
한 살도 안 되는 노부부의 어린 개가, 나이 든 할머님이 키우시는 나이든 개보다, 오히려 눈동자의 총기는 훨씬 있어 보인다. 이렇게 비슷한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두 집의 개의 처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혈통 차이인가, 주인 차이인가.
요즘은 노부부가 키우는 개 앞을 지날 때마다 얼굴을 돌려 애써 외면한다. 복날이면 사라질 그 개의 일생이 딱해서다.
“이 개들은 내 식구야. 얘들이 나보다 먼저 갈 것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터질 것 같아” 하시며 눈물을 글썽이시는 할머니와, “닭 키우고 소 키워 잡아먹듯이 개도 다 똑같아. 키우던 소나 닭 잡으면 마음 안 아픈 줄 알어? 마찬가지야. 다 먹자고 하는 짓이지” 하시며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를 열심히 개 밥그릇에 부어 주시는 바로 그 앞집 할아버지.
집안에 들어온 곤충도 함부로 죽이지 않는 난, ‘동물애호가’이지만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삼겹살도 좋아하고 닭백숙도 좋아하고 꽃등심은 돈이 없어 많이 먹지도 못한다. 지글거리며 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을 앞에 두고 ‘아기돼지 삼형제’를 생각하지 않고, 뚝배기에 담긴 삼계탕을 놓고 노란 병아리를 머릿속에 떠올리지 않으며, 갈비탕을 뜯으며 소의 선한 눈동자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보신탕은 먹지 않는다. 개의 맑은 눈동자가 근본적으로 소나 닭과는 달라서일까. 아니면, 오랫동안 개와 동거한 탓에 푹 들어버린 정 때문인가. 갑자기 예전 언니에게 맡긴 닭이 궁금해진다. 언니는 그 닭을 수명이 다 할 때까지 잡아먹지 않고 키웠을까.
어김없이 오늘도 마을 입구에 누런 강아지 한 마리가 노부부네 새 식구가 되어 묶여 있다. 이제 여름이 다 갔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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