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전 러시아 대사
이인호 전 러시아 대사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3.09.27 10:31
  • 호수 3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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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분열시키려는 ‘이석기 세력’, 전부터 감지했어요”

100세 어머니, 근대 격동기 삶과 세시풍속 기록한 구술책 펴내
첫 여성 러시아 대사로 DJ 러시아 국빈 방문 실현 기억에 남아

 

▲ ‘이석희의 삶과 근대이야기’ 표지.

우리나라 첫 여성 대사를 지낸 이인호(77)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의 어머니 이석희 여사는 올해 100세이다. 이 여사는 최근 인문학사에 길이 남을 만한 값진 기록물을 만들어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이 여사의 증언을 듣고 ‘20세기 어머니 이석희의 삶과 근대이야기’란 구술 채록집을 펴낸 것이다. 질과 양적인 면에서 압도적이다. 2권의 책을 합치면 500쪽이나 된다. 격동기를 살아온 한 여인의 헌신적이며 지혜롭고 사랑이 넘치는 가족사이자, 1세기에 걸친 생활풍속을 엿볼 수 있는 진귀한 기록서이다. 이인호 이사장을 서울 신문로에 있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만나 어머니의 삶과 우리 사회의 ‘핫 이슈’를 들었다.

-‘이석희의 삶과 근대이야기’의 가치를 말한다면.
“이 책의 내용은 사적인 게 아니고 문화사적인 시각에서 보존돼야 할 가치 있는 것들입니다. 지난 100년 동안 이 사회가 얼마나 변했는가, 특히 부녀자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고, 세시풍속이 얼마나 달라졌는가… 이런 것에 주안점을 두고 삶의 이야기를 채록한 겁니다. 현대인들이 모르는 것, 잊혀진 것을 보전한다는 의미가 크지요.”

‘…근대이야기’에 소개된 100년 전 결혼 풍속은 오늘과 크게 다르다.
“시집 갈 때 나는 옥양목 한필 받고, 명주 한필 받고, 패물은 낭자족두리, 금노리개 받았구. 우리 시할머니가 송아지 한 마리를 사 주셨어. 첫날밤 신부에게 등거리하고 베로 만든 속속곳을 입혀. 겨울이라도, 시원하게 잘 살라고 그러나봐. 시집을 갈려면 문안편지라는 게 있었어. 오촌까지 써. 혼인하고 신행가기 전에. 한지에다가 신부가 친필로….”

-어머니는 어떤 분인가.
“우리 어머니는 평생 자신을 위해 사는 건 없었어요. 외동딸로 귀하게 크셨지만 시집온 후부터는 맏며느리로서 시조부모 모시고, 시어머니 아래로 6남매 키우고, 시동생·시누이까지 챙기는, 자기는 없는 삶이었어요. 물론 나는 다른 세대에 속하고 내 이름을 가지고 산 사람이지만 우리 어머니는 자기라는 이름 없이 항상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모든 면에서 인간으로서 충만한 삶을 살았다고 봐요. 우리 세대보다 여러모로 나았다고 봅니다.”

-어머니가‘부엌의 주인’이라고.
“우리는 전통적 유교집안이에요. 남동생이 죽 모셨다가 아버지가 10년 전에 돌아가시고 나서 그때부터 내가 모시고 있어요. 며느리도 환갑이 넘은 노인이니까 힘들겠지요. 어머니가 야금야금 부엌에 나가시더니 파출부 하나 데리고 집안 살림 다 하세요. 우리 어머니가 나보다 기억력이 더 좋으세요. 옛날 일은 말할 것도 없고. 어머니 쪽 증손녀가 60명이나 되지만 생일 같은 거 다 기억하세요. 책도 읽고 바느질도 여전히 하시고요. 건강만 유지하면 정신력이 우리보다 훨씬 강한 것 같아요.”

이인호 이사장은 서울대 사학과에 다니던 중 미국으로 유학, 웰슬리대(학사) 래드클리프대 (석사)를 거쳐 하버드대에서 러시아역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컬럼비아대·버나드대 조교수와 서울대·고려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서울대 명예교수이다. 핀란드 대사(1996~1998)·러시아 대사(1998~2000)를 지냈다. 러시아 대사로 부임할 당시 소련은 공산주의 체제를 포기하고 시장경제와 의회 민주주의를 선언했고, 한국과 수교도 했다. 옐친 대통령이 15개에 달하는 러시아연방공화국을 다스리던 때였다.

-러시아 역사를 공부한 이유는.
“나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고, 초등 3학년에 나라가 해방됐어요. 우리나라가 힘이 없고 가난한 걸 잘 알지요. 서양 사람들은 모든 걸 가졌고 우리는 아무 것도 없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됐나’ 그걸 공부하려던 마음이 있었지요. 대학에서 서양사를 공부하면서 우연히 유학을 가게 됐어요. 미국의 명문 웰슬리 대에서 장학금에 생활비도 준다고 해 시험을 봐 들어갔더니 정말 생활비까지 주더군요. 역사 공부를 하던 중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자 미국사람들이 깜짝 놀라면서 소련을 연구하게 됐어요. 나도 한국에서는 공부할 수 없는 나라를 해보자고 러시아 역사를 전공하게 됐고 주변의 사정이 잘 배합 돼 러시아 대사로 가게 됐어요.”

-러시아는 우리와 북한 어느 쪽을 우호적으로 대했나.
“러시아 사람들은 오히려 우리를 더 가깝고 편하게 느꼈어요. 당시는 북한보다 우리에게 기대하는 분위기였지요. 한 번은 각국의 대사가 다 모이는 자리에서 북한대사에게 인사하려고 하자 피해 달아나더라고요. 그 사람이 현재 북한 외상으로 있어요. 박의춘이라고.”

-대사 시절 잊지 못할 일은.
“DJ 러시아 국빈 방문을 추진했던 일이 기억에 남아요. 당시 옐친은 심장수술을 받아 거의 환자였지요. 외국 손님을 못 받고 국빈 방문도 주저하는 걸 여러 차례 권유해 어렵게 성사가 되려던 순간 갑자기 취소한다고 나에게 전해와 무척 난감했어요. 내가 ‘그런 일방적 통보는 안 받겠다. 당신네 장관이 우리 장관에게 연락해 공식적으로 연기하든가 해야 우리 국민이 용납을 할 것’이라면서 몇 시간을 버텼어요. 그 사이에 건강이 갑자기 좋아졌는지 24시간 만에 방문 계획이 다시 이루어진 일이 있어요.”

-아쉬웠던 점은.
“우리나라가 금융위기를 겪을 무렵이어서 뭘 하려고 해도 예산이 없어 일을 할 수가 없었어요. 나는 그 쪽 전문가라 돈을 적게 들여서라도 업적을 남길 수 있는 프로젝트가 많았지만 외교관 월급을 못 줄 정도로 여유가 없어 첫 해에는 일을 못하고 둘째 해에 조금 활동하다가 돌아왔어요.”

-우리나라와 일본·중국 등 국제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최근에 좋은 강연을 했어요. 그걸 풀려면 그 나라 사람의 역사의식이 무언가, 그걸 깊이 있게 알고, 그런 바탕 위에서 우리가 요구할 거 요구하고 협상하는 가운데서 양보할 수 있으면 양보하고 그러면서 타협점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거지요. 그런데 우리는 상대를 깊이 있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거 같다는 겁니다.”

-역사교과서에 대해 말들이 많다.
“어떤 교과서도 오류가 있고 수정 보완돼야 해요. 하지만 오류를 제기하는 쪽을 그대로 믿어선 안 되지요. 이승만 대통령을 국민적 영웅이라고 미화한 서술에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미화라고 할 수 없는 정상적 평가에요. 안창호에 비해 이승만 박사 이름이 더 언급 된 것은 박근혜 대통령 이름이 이인호 이름보다 많이 언급되는 것처럼 당연한 겁니다.”

-‘이석기 사태’를 어떻게 보나.
“위험한 상황에 나라가 와 있다고 봅니다. 저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파괴할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파고들어간 걸 전부터 감지했어요. 학계·문화계 등 상당한 부분에서 대한민국을 분열시키고 밑으로부터 파괴하려는 이가 상당히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이 나라에 태어난 걸 다행이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 다음에 잘못된 거나 더 잘하려는 거 고쳐나가는 식으로 나가야 해요. 나쁜 사람이, 나쁜 세력이 만든 나라니까 그걸 파괴해야 한다고 그런 식으로 주장하고 역사를 가르치려는 세력이 있어요. 그런 이들은 이석기 같은 세력과 맥이 닿아 있어요.”

-노년 세대에 하고 싶은 말은.
“통계적으로 노년의 나이가 높아지지만 신체적으로는 건강해집니다. 우리 어머니가 100세인데 지금도 생산적으로 사세요. 누구에게 짐이 되는 게 아니라 여전히 도움이 되는 삶이에요. 노인이 그렇게 살도록 지원해줘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노년층 활용대책이 시급하게 마련돼야 한다고 봅니다. 한편에서는 아기를 맡길 데가 없어서 젊은 엄마들이 아기 못 낳는다고 야단들 하지만 사실 육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노년층이 상당히 있어요. 좋은 체험을 살려 아이를 지켜줄 수 있는데 제도 마련이 잘 안 돼 있는 거지요. 옛날부터 나는 아기와 노인은 섞어놔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로 주고받는 게 많거든요. 우리 집안의 장수비결이 그런 데에 있다고 봅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보면….
“훌륭한 분입니다. ‘현대문학’ 9월호에 박 대통령이 전에 썼던 수필이 실렸어요. 그걸 보면 인간의 깊이가 느껴져요. 괜히 대통령 된 게 아니지만 내공을 아주 많이 쌓은 사람이라는 걸 말이지요. 대통령으로서 사람들 대하는 태도가 정중하고 신중한 성품의 사람입니다. 신중하다보니까 ‘폐쇄적이다, 어쩌다’하는 얘기도 듣지만 자리가 워낙 중요한 자리이다 보니 신중이 경박한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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