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나이’를 70세로 올리고 싶다고?
‘노인 나이’를 70세로 올리고 싶다고?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3.09.27 11:27
  • 호수 3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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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주 기자의 취재수첩

새누리당 남경필(48·5선)의원은 최근 국회 토론회에서 노인의 기준을 현행 65세에서 70세로 높여 ‘70세까지 일하는 사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남 의원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평균 기대수명이 80세에 이르렀지만 노인복지법과 연금 관련 법률에선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규정해 생산인구의 조기 은퇴를 양산하고, 정부의 연금 지출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남 의원은 ‘70세로 올리면 2050년 고령인구 비중은 37.4%에서 29.7%로 떨어지고, 생산인구 비중은 52.7%에서 60.3%로 올라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노인 기준 연령을 높이는 대신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어 고령자의 취업을 장려해야 한다고도 했다.
남 의원의 이런 제안은 얼핏 들으면 이상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로 보자면 남 의원의 말은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다. 그의 말은 태어날 때부터 입에 황금수저를 물고 나온 이가 책상머리에서 하는 엉뚱한 상상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노인 인구는 598만명(보건복지부 집계 작년 12월말 현재), 이 가운데 기초노령연금 20만원 전액을 받는 계층은 60%인 353만명이다. 이들의 생활상은 어떤가. 대부분 집이 없거나, 벌이가 없는 극빈자에 가깝다. 한 달 10만원 채 못 되는 연금으로 최소 2~3개의 질병을 껴안은 채 연명하고 있다. 이들에게 5년이란 세월을 더 견디라는 말은 5년 일찍 죽으라는 말과 같다. 남 의원은 한국의 노인이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늦은 나이까지 일한다는 사실을 알기나 한 건가.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758만명의 속사정은 더욱 딱하다. 40~50대에 회사에서 내쫓기듯 나와 아무런 수입 없이 1~2년간 떠돌다 겨우 한 달 100만~200만원의 일자리를 마련해 근근이 지낸다. 이들에게는 대학 입학과 결혼을 코앞에 둔 자식들과 노부모가 딸려 있다. 기자의 한 지인(55년생)은 2년 전 30%나 깎이는 국민연금조기수령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수령 나이인 61세까지 도저히 기다릴 방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은 ‘전체 노령연금수급자 10명 가운데 1명이 조기수령자로 이 숫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했다. 남 의원이 말한대로 이들의 연금 수령 나이를 늦추자는 건 그 사이에 자식 교육은 물론 결혼도 시키지 말고,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말라는 말과 진배없다.
남경필 의원은 퇴직의 공포와 좌절, 재취업의 고단하고 어려운 현실을 전혀 모른다. 그의 아버지 남평우 전 의원은 수원에서 탄탄한 버스회사를 운영했다. 남 의원은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성장해 연세대를 나와 미국 유학까지 다녀왔다. 34세의 젊은 나이로 아버지의 지역구(수원 팔달구)를 물려받아 손쉽게 국회 입성 후 내리 5선에 당선됐다. 때문에 그는 어디 가서 아쉬운 소리 한 번 해본 적 없다. 배고픔이 뭔지 모르고 눈물 젖은 빵도 먹어보지 못한 ‘엄친아’이다. 국고가 거덜 나는 게 걱정된다면 1억 이상 받는 남 의원의 세비부터 앞장 서 줄이면 된다. 스웨덴의 국회의원처럼 국민에 대한 봉사직이란 자세로 일하고, 샐러리맨 수준의 세비를 받아 마땅하다. 의원사무실과 보좌관도 다른 국회의원과 공유해야 한다. 국회의원이 도대체 뭔데 보좌관을 6~7명이나 두고, 운전수에 차량기름 값까지 제공 받는가 말이다. 정부가 우리의 혈세를 가지고 장님처럼 집행하는 걸 막거나 터무니없이 낭비되는 예산만 줄여도 얼마든지 65세부터 연금을 줄 수 있고, 국고도 가물지 않는다. 가까이는 사망한 이들에게 노령연금 370억원을 지급한 것부터 정부의 잘못된 예산 집행과 낭비의 예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남 의원의 제안은 영양이 좋은 덕에 몸집이 커진 아이를 겉으로만 판단하고 초등학교 입학 나이를 8세에서 어느 날 갑자기 5세, 6세로 낮추자는 식이다. 서민의 고통스런 현실을 전혀 모른 채 이상만 앞세우고 철부지처럼 뛰어다니는 건 올바른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다. 남경필 의원은 이제부터라도 현실 공부를 더하고, 정책 제안을 하기 전에 앞뒤를 살펴 심사숙고하는 자세를 갖기를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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