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해안도로 4천㎞, 118일만에 완주
전국 해안도로 4천㎞, 118일만에 완주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3.10.11 11:21
  • 호수 39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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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 시니어] 도보여행가 황안나
▲ 황안나씨는 산티아고를 비롯, 네팔·베트남 등 해외 도보여행도 했다.

길 위에서 만난 따듯한 정이 나의 완주 도와준 셈
‘나이가 많아서…’ 주저하면 ‘문지방 넘어라’고 조언


“올해는 별로 안 걸었어요. 인터넷 ‘도보카페’ 팀하고 1박2일이나 당일 코스 정도를 다녀왔고, 일본 북해도를 갔다 왔네요. 한 400㎞ 걸었어요.”
지난 10월 초 어느 날, 방송국에 출연하고 왔다는 도보여행가 황안나(73)씨가 하는 말이다. 황씨는 요즘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여행을 떠나야 하고, 신문·방송과 인터뷰해야 하고, 책도 써야 해 정신없다며 웃었다. 같은 연배의 어르신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산다. 목소리도 맑고 소녀 같다. 황씨는 65세에 집밖으로 나왔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문지방을 넘었다’. 몸담고 있던 산악회에서 광주 무등산을 간다는 얘기를 듣고 불현듯 국토종단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땅끝 마을에서 통일전망대까지 걸었어요. 800㎞를요. 철조망 넘어 북한을 바라보면서 통일이 되면 신의주까지 갔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지요.”
66세에 산티아고를 걸었고, 67세에 동해-남해-서해를 거쳐 임진각까지 해안도로 4000㎞를 일주했다. 118일이나 걸렸다. 그리고 작년에 전국 해안일주를 다시 했다.
“하루에 100리(약 40㎞)를 걸었어요. 밤에는 찜질방이나 모텔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 6시부터 걸어요. 배낭에는 비상약·간식거리·옷·카메라가 들어 있어요. 15㎏ 정도 나가요. 제가 왜소한 체구에요. 처음에는 무거웠지만 이제는 무게감을 못 느껴요.”
차도 옆 살구꽃밭에 누워 배낭을 베고 꿀잠을 자는가 하면 무덤가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외롭고 무섭기도 했다. 비수기 바닷가는 걸어도 걸어도 어디 길 물어볼 사람 하나 안 나타났다. 간혹 무서운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좋은 사람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걸으면서 내가 살아온 삶을 돌이켜 봐요. ‘하느님 잘못 했어요’하고 펑펑 울기도 했고요. 혼자 걷는 시간은 삶에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걸 구분할 수 있도록 해주었어요. 그게 가장 큰 선물이에요.”
황씨는 교사 출신이다. 춘천사범학교 졸업 후 강원도와 인천 지역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57세 되던 해 어느 날 아이들을 내보내고 텅 빈 교실에 앉아 있다 문득 ‘내 노릇’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남매의 맏이로 태어나 누나 노릇, 언니 노릇하며 살았고 결혼해서는 엄마 노릇, 아내 노릇, 교사 노릇을 해 정작 내 노릇을 하지 못하고 살아온 거예요.”
황씨는 정년을 7년 앞두고 학교에 사표를 냈다. 남편도 말리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황씨는 30년 가까이 교사 월급만으로 가족을 이끌었다. 남편은 하는 일마다 쪽박을 찼다. 양계·조경·서점·택시운전 등…. 그러다 황씨가 50세 되던 해 작은 욕실용품 수출공장을 시작해 겨우 자리를 잡고 그동안의 빚도 갚았다.
처음엔 집에서 가까운 산을 오르내렸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2시간 동안 걸었다. 3년이 지나 체력에 자신이 붙어 지리산을 종주했다. 산악회에 가입해 환갑 때까지 지리산을 7번 종주했다. 우리나라 산 대부분을 올랐다. 2004년에는 4대강 길까지 걸었다.
외국에도 여러 차례 나갔다. 몽골·캄보디아·베트남·네팔 등을 도보 여행했다. 황씨는 그런 경험을 책으로 남겼다. 처음 쓴 책 ‘내 나이가 어때서’(2005)는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블로그 ‘맛있게 살기’에 실린 글을 모아 펴낸 ‘안나의 즐거운 인생비법’(2008), 만학으로 한글을 깨친 어머니와 함께 쓴 ‘엄마 나 또 올께’(2011) 같은 책도 스테디셀러로 인기를 끌고 있다. 강연도 끊이지 않는다. 혼자 떠나지 않을 때는 독자들과 같이 걷고, 강연한다.
요즘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얘기를 쓰고 있다. 135일 동안 해안 길을 걸으면서 만난 사람들과의 소소하고 감동적인 인연을 소개할 예정이다.
“세상이 아무리 험하다 해도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보면 세상은 살만 하다는 걸 느껴요. 목적지까지 완주하는 데 그분들의 도움이 컸어요.”
그들 가운데 잊지 못할 이가 있다. 서해안 구시포에서 만난 50대 말기암 환자. 우연히 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하게 됐다. 먼저 식사를 끝낸 남자는 식당을 나가면서 카운터에 두 사람의 밥값과 함께 ‘가다가 밥 사먹으라’면서 5만원을 두고 갔다.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받아 그 후로 자주 통화를 했어요. 그 사람이 하느님에게 입대영장이 나오면 통화가 안 될 거라는 말을 했는데 어느 날 전화를 했더니 없는 전화번호라는 메시지가 들리더라고요.”
황씨는 그 돈을 쓰지 않고 부적처럼 가슴에 품고 길을 걸어 임진각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돈을 심장재단에 전달했다.
황씨는 강연 때마다 ‘그 나이에 완주하는 비결이 뭐냐’는 질문을 받는다고. 황씨는 “비결이 어디 있나요.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다보면 완주하는 거지요. ‘문지방을 넘어라’는 말을 해줍니다”고 말했다. 황씨는 “이 말을 백세시대 독자들에게도 똑같이 해주고 싶다”고 했다.
“이제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100세 시대에요. 60, 70이라 끝났다고 포기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꿈은 젊은이의 전유물이 아니잖아요. 꿈을 가진 노인과 그렇지 않은 노인의 삶은 질이 달라요.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도 나는 학원 다니고, 꿈을 가지고 삽니다.”
황안나씨는 산악회 홈페이지에 50대 주부들이 가입하면서 나이가 많다고 인사하면 이렇게 환영한다.
“어서 오세요. 아직 달걀이시네요. 같이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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