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노래 좋아하는 여성 신도도 많아요”
“내 노래 좋아하는 여성 신도도 많아요”
  • 글·사진=오현주 기자
  • 승인 2013.10.18 11:53
  • 호수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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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 시니어] 노래하는 무상스님
▲ 지난 10월 초, 고창 선운사 입구에서 모금 공연 중인 무상스님. 자신의 노래를 담은 CD를 팔아 불우이웃에 기부한다.

절 문턱 낮추려고 대중가요 부른 계기로 시작
백양사 등에서 모금공연… 도지사 기부 상 받기도


지난 10월 초 주말, 전북 고창에 위치한 선운사의 천왕문 근처에서 팝송 ‘마이웨이’가 들려왔다. 절을 찾아온 관람객들은 ‘찬불가가 아니고 웬 팝송?’하는 표정이다. 노래 소리를 찾아 따라가자 풍채가 넉넉한 스님이 기타를 치며 후렴구 ‘My way’를 힘차게 마무리 중이다. 관람객들이 박수를 치며 격려해준다. 조금 떨어진 곳에 또 다른 스님이 ‘기부함’이라고 쓰인 기타통과 스님의 노래가 담긴 CD를 가판대에 올려놓고 서 있었다. 간혹 CD를 사가는 관람객도 눈에 띄었다.
노래를 부르는 스님은 인천시 강화군 법명선원 주지를 지낸 무상스님(63). 현재는 전남 장성 백양사의 말사 중 하나인 ‘마하무량사’에 있다. 전국을 돌며 노래로서 불교를 전파하고 있다. 그의 음성은 발라드에 잘 어울리는 미성이다. 박자 감각이 정확하고 필(feel)도 흥건하다. 노래 솜씨는 아마추어로서는 손색이 없지만 프로로서는 촌스러운(?) 구석도 엿보인다.
“4년 전 조계종 법명선원 주지로 임명된 후 하루 종일 목탁을 치며 절을 지켜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일단 절 문턱을 낮춰야겠다고 생각해 선사음악회를 열었어요. 그 때 찬불가와 세속가를 불렀는데 노래를 듣고 신도들 반응이 좋아 이 자리까지 서게 됐어요.”
대학시절 노래 동아리에서 활동한 덕에 노래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절에서 연습을 따로 할 수 없어 현장에서 연습 겸해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곡 선정도 찬불가보다는 대중에게 어필하는 팝송을 택했다. 대중가요로는 나훈아의 ‘사랑’서부터 ‘등불’ ‘종점’ 등을 부르고, 포크송은 ‘Kiss me quick’ ‘Stand by your man’ ‘Love me tender’ 등을 매끄럽게 소화한다.
스님이 팝송을 부른다는 소문이 알려지자 전국 각지에서 요청이 오기 시작했다. 그는 노래로 불교를 알리는 것이 ‘내 소임인가 보다’는 생각으로 뜻이 좋고 시간이 맞는 행사에는 참석한다고 말했다.
“공연에서 교리를 얘기하지 않아요. 하지만 사람들이 저를 보며 불교를 떠올리고 조금이라도 가깝게 생각한다면 그것으로 제 역할을 다 하는 것 같습니다.”
무상스님은 원래 공학도였다. 경기도 용인 출신으로 건국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남들과 똑같이 사회생활을 샐러리맨으로 출발했다. 외국에도 파견 나가 근무한 경력이 있다. 그렇지만 마음 속으로는 늘 스님이길 꿈꿨다. 그러던 중 우연히 좋은 스님을 만나 불교에 귀의했다. 25년 전 일이다.
무상스님은 “비록 중년이 다 된 나이에 불자가 됐지만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고, 절 생활이 즐겁기만 하다”고 말했다.
무상스님의 주무대는 백양사와 선운사 등 큰 절이다. 그동안 에피소드도 많았다. 스님이 기타도 잘 치고 영어 노래도 잘해 ‘멋지다’고 추켜세우는 이가 있는가 하면 ‘팝송을 부르는 중이라면 진짜 스님이 맞겠느냐’고 의심 찬 눈으로 보는 이도 있다.
“한 번은 1시간 동안 언짢은 표정으로 공연장 주위를 배회하며 노래를 듣던 한 남자가 다가와 묻더군요. 왜 스님이 길 위에서 노래를 하느냐, 그것도 찬불가가 아니라 대중가요를 부르는 게 맘에 안 든다는 식으로요. 제가 보기엔 기독교 신자인 듯 했어요.”
무상스님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나 자신이 외로워서, 나랑 소통하는 것이 좋아서 그런다”고.
무상스님은 실제로 외롭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한 것이 아니었다. 노래를 부름으로써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말을 걸어오는 그 자체가 소통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대답했다는 것이다. 무상스님의 CD 타이틀은 ‘Music is 禪’이다. 무슨 뜻이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선정(禪定)에 들려면 1시간 중 20분이나 될까요. 나머지 40분은 수도가 아직 안돼서 그런지 망상에 시달립니다. 그런데 노래를 해보니까 노래는 정신통일을 단 1초만 안 해도 틀린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노래도 선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무상스님은 매주 토·일요일 담양의 유명한 대나무 숲 ‘죽록원’에서 모금 공연을 하고 모은 성금을 불우한 이웃에 전달해오고 있다. 기부가 쌓이자 지난해에는 전라남도 도지사 상도 수상했다.
잘 생긴 얼굴, 감미로운 음성, 노래 실력 등 3박자를 갖춘 무상스님, 집요하게 접근해오는 여성 신도가 많을 것이라고 찔러보자 무상 스님은 크게 웃으며 “여성 신도들이 많아요”라며 웃었다. 이어 ‘고정 팬이 얼마나 있느냐’고 하자 “그런 거 몰라요”라며 계속 웃기만 했다.
무상스님은 앞으로도 체력이 허락하는 한 길 위에서 노래를 계속 부를 생각이다.
“내 나이면 불가에서는 주지 생명도 끝나고 은퇴해 ‘뒷방신세’가 돼요. 나는 이렇게 전국을 다니며 노래를 부르는 게 얼마나 즐겁고 좋은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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