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
김영수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3.11.01 10:10
  • 호수 3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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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시절 국회서 의원들 찾아다니며 설득
예산 따내 노인문화복지시설 만들기도”

내년 9월 개최 ‘2014 인천아시안게임’ 준비로 바쁜 하루
80세 일어 통역 자원봉사자 감동… 재능기부 당부하기도


내년 9월 서울, 부산에 이어 인천에서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린다. 아시아인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이 대회에 45개국 2만여명이 참가해 36개 종목에서 우열을 가린다. 국위가 올라가고 개최 도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느냐 하는 문제는 이 대회를 얼마나 잘 치르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 만큼 대회를 준비하는 인천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 위원장의 임무와 책임 또한 막중하다. 이 자리를 맡고 있는 이는 검사-문화체육부장관-KBL (프로농구협회) 총재 등을 지낸 김영수(71) 위원장이다. 김 위원장은 거의 매일 서울과 인천 송도를 오가며 대회의 전반적인 진행 상황을 챙기고 있다. 지난 10월 초 인천 송도 테크노파크에 있는 조직위 위원장실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다. 김 위원장의 집무실에서 인천대교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빌딩 동북아트레이드 타워가 바라다보였다.

-준비는 잘 돼가고 있는가.
“45억 아시아인의 축제인 이번 대회는 2014년 9월 19일부터 10월 4일까지 인천 곳곳에서 열립니다. 새 정부 들어 처음으로 치르는 국제대회이기도 하지요. 기본 인프라 구축 등 각 분야에서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세계적인 시계 브랜드 ‘티쏘’를 비롯해 대한항공 등 국내 대기업들과 후원계약도 체결했고요.”

-숙소와 경기장은?
“문학경기장 근처에 ‘인천아시아드선수촌’을 만들고 있어요. 아파트 3000세대를 지어 선수와 임원, 미디어 종사자들을 거기에 재울 겁니다. 서울 아시아선수촌처럼 경기를 마치면 일반 분양을 하게 되고요. 경기장은 47개가 필요한데 그 중 16개는 새로 짓고 나머지는 기존의 것을 활용할 겁니다.”

-경기 진행 등 운영 노하우도 중요할 텐데.
“지난 6월 인천에서 열린 실내무도아시아경기대회는 성공적인 리허설인 셈이에요. 45개 회원국 임원과 선수 4400여명이 참가해 세계의 관중들에게 멋진 경기를 보여주었어요. 우리는 이 대회를 통해 현장 경험을 쌓은 건 물론 37억원의 흑자를 기록했지요. 직원들이 대회 운영에 대한 자신감을 얻기도 했어요.”

-북한도 출전하는지.
“동아시안컵, 아시아역도선수권대회 참가 등 분위기가 좋아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볼 만한 경기는.
“박태환과 중국 쑨양 선수의 경기에 세계적인 관심이 쏠릴 것 같아요. 런던올림픽 이후 2년 만에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펼쳐집니다. 축구·야구의 한일전도 최고의 이슈가 될 겁니다.”

-한국은 몇 위를 예상하는가.
“경기력 면에서 한국은 1998년 방콕대회 이후 4회 연속 지켜온 2위 자리를 수성하는 것이 목표에요.”

-이 대회가 어떤 도움을 주는지.
“인천의 위상이 대내외적으로 크게 달라질 겁니다. 광저우도 아시아경기대회를 치른 뒤 중국 제3의 도시로 급부상했어요. 당장 교역량과 관광객 수가 급증해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습니다.”

-조직위에는 몇 명이 일하고 있나.
“인천시에서 200여명 파견됐고, 대한체육회·문화체육관광부·기재부 등 중앙 부처에서 100여명이 나와 있고, 우리가 뽑은 전문직 100여명 등 400여명입니다.”

-어르신들이 기여할 방법은.
“지난 번 실내무도아시아경기대회에서 여든 살 된 분이 일어통역 자원봉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저를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어요. 세대를 앞선 어르신들이 봉사를 통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시는 거야말로 후세대를 위한 진정한 교육이자 모범이 될 겁니다. 많은 분들이 당신들의 재능을 살려 기부하는 마음으로 자원봉사에 참여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김 위원장은 덧붙여 손님맞이를 위한 시민운동에 어르신들이 앞장서 줄 것을 당부했다. 이번 대회의 성공 여부는 대회 참가자들이 다시 인천을 찾게 하는 것에 달렸다고 한다. 경륜이 많은 어르신들이 친절·질서·청결을 위한 운동에 앞장서면 자연히 젊은이들이 따라 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수 위원장은 인천 출신으로 서울고·서울대 법대를 나와 검사 생활을 했다. 문민정부 시절 문화체육부장관(1995~1997)을 지냈고, 2002년 한일월드컵 유치를 진두지휘했다. 2004~2009년 프로농구연맹 총재로 재임했다. 그는 2년 전 인천아시안게임조직위에 합류했다.

-노인복지정책을 편 경험은.
“내가 장관을 할 당시 문화부의 초점은 전체 국가예산 중 문화부 예산 1% 돌파였어요. 문화부에 돈이 있어야 뭘 하든 하니까요. 내가 국회 찾아다니며 설득해 예산을 전년 대비 30% 이상 늘렸습니다. 그리고 1996년을 ‘문화복지 원년의 해’로 정했어요. 문화복지 개념도 없을 때였지요. 이게 뭔가 하면 온 국민이 서울 가지 않고 자기 사는 지역에서 예술과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나라를 만들자는 겁니다. 여러 가지 계획 중 하나가 ‘문화의 집’이에요. 폐교·폐동사무소 같은 유휴 공간을 소규모 문화 공간으로 바꾼 겁니다. 1개소당 1억~2억원을 지원해 리모델링했어요. 첫해에 30여곳의 문을 열었지요. 오늘 백세시대하고 인터뷰가 있어서 몇 개소인가 알아보았더니 117군데로 늘어났더군요.”

문화의 집은 대형스크린과 음향장치를 갖춘 영상실과 미술품 전시 공간 등을 두었다. 지역의 선생들이 와서 장구와 북, 붓글씨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낮에는 어르신들이 이용하고, 주말에는 청소년들이 자기에게 맞는 문화 활동을 즐겼다. 김 위원장은 “문화를 접해야 노년이 풍요로워진다는 취지에서 문화의 집을 만들었다”고 부언했다.

-처음 개소한 곳은?
“서대문구청 근처에 열었어요. 그 동네 노인 분들이 다 와서 반갑게 축하해주고 그랬던 게 기억이 나요. 그 다음부터는 도시보다 시골로 갔어요.”

-경로당이나 복지센터하고는 다른가.
“다르지요. 그때까지 문화복지라는 개념이 없었고, 사회복지만 있었지요. 복지센터는 그저 세 끼 밥 주고 잠 재워주는 장소였지만 ‘문화의 집’은 컴퓨터도 10대 설치해 배우게 하고 영상자료도 보여주고 그랬어요.”

-우리나라 노인이 OECD 국가 중 가장 빈곤하고 늦게까지 일한다.
“안타깝지만 사실이지요. 과거 우리나라의 복지는 국가에 의한 복지가 아니라 효를 근간으로 한, 친족들에 의한 상호부조였어요.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미풍양속이었지만 그게 핵가족으로 인해 깨져버렸어요. 옛날에는 누가 굶는다고 하면 집안의 어른이 쌀가마를 갖다 주라고 했지만 요즘은 사촌형이 굶어죽어도 쳐다보지도 않잖아요. 오늘날의 노인들은 국가의 사회보장제도마저 정착이 안 돼 어렵지요. 노년세대가 빈곤 속에서 살지 않도록 국가가 책임지고 사회가 같이 돌보는 나라가 돼야 합니다. 또, 가난에 몰린 이들이 취업을 하고 싶지만 폐지를 모은다거나 미화원 같은 질 낮은 환경의 일 뿐이에요. 정부에서 양질의 좋은 취업 기회를 넓혀가야 합니다.”

-기초노령연금을 어떻게 보나.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주는 건 전혀 공감하지 못해요. 이건희 같은 잘 사는 사람에게 20만원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거지요. 어려운 하위 계층부터 살펴야 합니다. 우선 수혜액을 높여야겠습니다. 20만원 가지고는 안 돼요. 최소한 30만~40만원은 돼야 합니다. 수혜자를 하층으로 국한하고 지원금을 늘리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봅니다.”

-노후를 어떻게 보낼 건가.
“나라고 특별한 게 없어요. 노인이 가는 정석을 가야지요. 우선 건강을 지키기 위해 등산이나 산책을 많이 해요.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거니까요. 두 번째가 독서모임·고전읽기·영화보기 등 동호회 활동에 가입해 배우면서 문화를 즐기는 겁니다. 세 번째 즐기기만 할 게 아니라 사회를 위해 봉사도 하려고 해요. 나는 문화부 출신이라 각종 후원 활동에도 참여했어요. 예술의전당·국립박물관 후원회장을 했고, 현대미술관 후원회 이사도 하면서 직접 후원도 하고 문화예술을 엔조이하고 후원금도 모으고 그랬어요.”

-어떤 생활신조로 살아왔는가.
“낙관주의로 살아왔어요. 어려운 일에 부닥쳤을 때 ‘이건 지나간다, 한 때다’하고 긍정적으로 봤어요.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고요. 내 경우는 ‘감사거리’가 많아요. 남보다 두드러지게 잘한 거 없이 이생에서 너무 많은 걸 받아왔어요. 낙관하고 감사하는 생활 자세가 지금까지 나를 건강하게 하고, 좋은 기회를 누리며 살아오게 만든 게 아닌가해요.”

-100세 시대를 맞고 있다.
“옛날이면 내 나이는 늙었다고 했겠지요. 내가 우리 나이로 72세지만 젊었을 적보다 맥이 빠졌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내 경우는 아직은 뭘 배우려고 애를 쓰고 더 활동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그건 젊었다는 걸 의미해요. 아마 나뿐만 아니라 70대 전반은 다 나와 비슷할 겁니다. 그만큼 노인의 시대가 늦춰진 게 아닌가 합니다. 문제는 젊은 마음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이 좁아지는 게 안타깝지요.”

-산에 자주 간다고.
“토요일마다 등산을 해요. 그날 빠지면 주중에라도 갑니다. 우리나라 웬만한 산은 다 올랐고, 히말라야는 2번이나 올랐어요. 그런 게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에요. 매일이 즐겁고, 아침에 눈을 뜨면 좋은 날 줘서 고마워하고….”

김영수 위원장은 “뒤늦게 조직위에 합류했지만 내가 태어난 곳, 태생적인 은혜에 보답한다는 마음으로 일한다”고 한 후 “바로 청계산을 간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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