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가장 많이, 가장 잘 그려”
“금강산 가장 많이, 가장 잘 그려”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3.11.15 10:50
  • 호수 3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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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3대 선비화가 겸재 정선
▲ 금강전도.

“누가 그 진면목을 그릴 수 있을까/산에서 나는 뭍 향기는 동해 밖에 떠오르고(중략) 송백 숲은 선사 문을 가리었네/비록 걸어서 이제 꼭 찾아간다고 해도/그려서 벽에 걸어놓고 실컷 보느니만 못 하겠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이 58세에 그린 ‘금강전도’(국보 217호·130.7×59cm·리움미술관)에 쓰인 글이다. 겸재는 ‘금강산 화가’라고 할 만큼 금강산을 가장 많이, 가장 잘 그렸다. 36세 때 처음 금강산을 여행하면서 ‘신묘년 풍악도첩’을 남긴 후 72세에 봄의 금강산을 유람하고 ‘해악전신첩’을 그리기까지 금강산 그림만 70여점을 남겼다. ‘수직준법’(ㅅ형태로 붓자국을 내면서 수직으로 꺾이는 기법)으로 그려낸 원형구도의 겨울 금강산 그림은 맨 위의 우뚝 솟은 비로봉에서 시작해 만폭동을 지나 장안사의 비홍교까지 세밀하게 묘사했다.
지난 11월 12일(화) 오후 4~6시, 화정박물관에서 겸재 정선에 대한 강연이 진행됐다. 11월 2일(윤두서)부터 시작한 화정미술사강연 ‘조선 후기의 3대 선비화가’ 시리즈 중 두 번째 인물이다. 강사로 나선 덕성여대 박은순 미술사학과 교수는 겸재의 일생을 소개하고 작품에 대한 상세한 안내를 해주었다. 박 교수는 “겸재는 남종화풍의 진경산수화에 서양화법을 융합했으며, 시의도(시의 뜻을 주제로 한 그림)·고사인물화·초충도·영묘화 등 다양한 화목을 다루었다. 그는 노론계는 물론 소론계 인사의 지원을 받아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고 말했다.

▲ 인왕제색도.

정선은 76세 때 마지막 걸작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 138.2×79.2cm)를 그렸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인왕산의 바위를 강한 필세와 짙은 먹으로 원경 가득히 배치했고, 그 아래 안개와 수목을 그려넣어 단순하면서도 대담한 구도를 보인다. 가벼운 게 무거운 걸 떠받치는 형상이기도 하다. 수목과 가옥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인 부감법으로, 원경은 위로 쳐다보는 고원법으로 나타내 마치 앞에서 인왕산을 바라보는 듯한 현장감을 준다.
정선은 서울 청운동 89번지 일대에서 태어났다. 사대부 집안이었으나 그가 태어날 즈음에는 가세가 기울 때여서 어린 시절 가난하게 보냈다. 35세 때까지 그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다. 그는 평생 종5,6품 사이의 낮은 벼슬을 오갔다. 조선 세도가 중 그의 그림이 걸리지 않은 집이 없을 정도로 많은 작품을 남긴 것도 그가 한직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란 추측이다. 박 교수는 “정선은 주문자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그림을 다양하게 조절해 그릴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림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표현했다. 선비가 방안에서 마당의 작약화분을 한가롭게 바라보는 ‘독서여가’란 작품 속 인물이 바로 정선이다. 기와집을 그린 ‘인곡정사’는 인왕산 밑에 살던 그의 집, 관청을 그린 ‘양천현아도’는 자신의 직장이었다.
박은순 교수는 “정선은 빠르고 강렬한 느낌의 그림을 그려 자기 개성을 정립했지만 나중에는 진짜 보고 그렸는가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조선 후기 3대 선비화가’ 세 번째인 마지막 강연(강세황)은 11월 19일 화정박물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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