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俗(속되지 않음) 너무 추구해 그림 못 그린다는 소리 듣기도
不俗(속되지 않음) 너무 추구해 그림 못 그린다는 소리 듣기도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3.11.22 10:46
  • 호수 3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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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비화가 강세황

61세 첫 벼슬, 정2품까지 올라
남종산수화에 조선의 미 반영

 

▲ 강세황 70세 자화상. 보물 제590호.

“허술한 얼굴이며 쇠락한 마음이다. 평생 가진 것을 시험해 보지 못했다. 세상은 그 깊이를 아는 이가 없다(중략).”
윤두서의 ‘자화상’과 함께 조선시대의 탁월한 자화상이 바로 표암 강세황(1713~1791)의 ‘자화상’(보물 590호·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다. ‘예원의 총수’라는 말을 듣는 강세황은 평생 자화상을 6장이나 그렸다. 그만큼 많이 그린 이도 드물다. 위의 말은 강세황이 50세 때 그린 자화상에 붙인 글이다. ‘평생 가진 것’이란 ‘재산’을 의미하지 않고 학문·사상·시성 등을 말한다. 옆 사진의 ‘자화상’은 70세에 그렸다. 50세나 70세나 차이점이 거의 없다. 관리의 오사모에 야인의 옷을 입힌 건 몸은 관직에 있지만 마음은 산촌에 머문다는 걸 의미한다.
지난 11월 19일, 서울 평창동 화정박물관에서 화정미술사강연 ‘조선후기의 3대 선비화가’-강세황 편이 있었다. 11월 5, 12일에 있었던 윤두서·겸재에 이은 세 번째 시간이다. 강연을 한 박은순 덕성여대 교수(미술사학과)는 강세황이 “중국 문인화와 남종화를 수용하며 그리되 조선적인 아름다움을 반영한 그림-유화(儒畵)를 그렸다“고 말했다. 유화란 문인화의 또 다른 말이라고 한다.
강세황은 숙종 때 대제학을 지낸 강현의 막내아들로 전형적인 명문가 출신이다. 3대가 기로소에 들어간 영예로운 가문이다. 이 때문에 영조와 정조의 배려와 보살핌을 받기도 했다. 기로소는 70세가 넘은, 정2품 벼슬을 지낸 문관들의 친목 모임이다. 청년기 강세황은 큰형이 과거시험에서 부정을 저지른데 영향을 받아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고 처가가 있는 경기도 안산에서 야인으로 30여년을 보낸다.
이 기간에 그는 성호 이익의 문하에 들어가 신광수(윤두서 사위)·유경종 등 문인들로 구성된 ‘안산 15학사’들과 교우를 나눈다. 그는 35세에 이미 그림을 잘 그린다는 소문이 나면서 주문이 많이 들어와 힘들다는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강세황의 대표작-그림 13폭과 글 6폭을 담은 ‘첨재화보’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지상편을 그린 ‘지상편도’ 명나라 문인화를 모방한 ‘방심주계산심수도’ 중국 주자가 거주했던 무이산을 그린 ‘무이구곡도’ 성호 이익의 요청으로 그린 ‘도산도’-들이 36세에서 41세 사이에 나왔다.
45세에 개성을 여행하고 그린 ‘송도시가도’는 서양화법을 구사하고 원근법을 보여주고 있다. 48세에 그린 ‘사시팔경도’는 느슨한 필치, 담묵의 구사, 여백의 강조로 남종화의 요소를 두루 갖춘 수작으로 평가한다.
51세에 영조로부터 “선비가 그림으로 이름을 남기는 것은 영예롭지 못하다”는 말을 듣고 절필한다. 대신 화평을 통해 정선 등 당대 화가들을 독려한다. 정조의 초상화를 그릴 화가를 찾는데 김홍도를 적극 추천한 이가 바로 강세황이다.
강세황은 61세에 처음 벼슬에 나선다. 영조의 명으로 영릉참봉을 받았으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사직한다. 이듬해 다시 영조의 명으로 사포서(司圃署) 별제(종6품)에 제수된 이후 출세 길을 달린다. 64세에 기로과 수석 합격으로 동부승지(정3품)가 되고, 66세에 문신정시에 수석 합격하고 오늘의 서울시장 격인 한성부 판윤(정2품)에 오른다.
69세에 ‘난매죽국’을, 70세에 사군자를 많이 그렸다. 73세에 부사로 북경을 처음 방문해 청나라 건륭제로부터 각본과 지필묵을 선물 받는다. 76세에 금강산을 오르지만 그림을 남기지는 않고 ‘피금정도’를 제작했다. 이는 국방과 관련된 장소를 묘사한 것이다. 78세에 ‘난죽도’를 그렸고, 이듬해 1월, 아들이 유배지에서 죽자 한 달도 못돼 따라서 눈을 감았다.
박은순 교수는 강연 끝으로 “그림을 너무 못 그려 강세황을 대상으로 박사학위논문을 쓰겠는가 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고 정선처럼 눈에 확 띄는 그림은 없다. 기량이 낮지는 않지만 부속(不俗·속되지 않음)과 사의산수화를 너무 지나치게 추구하는 바람에 타인에게는 이해되지 못하는 아쉬운 점이 남는다. 가장 늦게 개발되고 연구될 화가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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