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을 바라보는 내 신체 나이가 청춘이래요”
“구순을 바라보는 내 신체 나이가 청춘이래요”
  • 이상연 기자
  • 승인 2013.11.29 14:30
  • 호수 3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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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도 고개 흔드는 철인3종 경기의 대부 김홍규 어르신

86세로 국내 최고령 ‘현역’… 해외 원정도 잦아
67세에 첫 출전… 30여년간 150회 대회 참가


‘철인3종’은 수영, 사이클, 마라톤을 휴식 없이 이어가는 경기이므로 극한의 인내과 체력이 요구된다. 숙련되지 않은 일반인은 탈수와 심장마비 등 사고가 찾아올 수도 있다. 구순을 바라보면서도 이 종목을 30여년간 꾸준히 즐기는 어르신이 있다. 국내 최고령 철인3종경기 선수 김홍규(86) 어르신이 바로 그 주인공.
그의 체력은 젊은 선수들을 뛰어넘는다. 손자뻘 되는 선수들보다 빠르게 결승선을 통과한다. 말 그대로 철인이다.
“매일 10km를 자전거로 출퇴근 하고 있다”는 김 어르신은 “여기에다 하루 1시간 이상의 수영과 새벽 조깅은 기본”이라고 덧붙인다. 대회 준비기간에 돌입하면 이 운동량은 두 배로 증가한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면 고생한 모든 기억은 싹 지워진다”고 말한다.
김 어르신이 이렇게 혹독히 자신을 단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90년대 초반 그는 지인들의 강력한 추천을 받아 철인3종 경기에 참가했다. 이 때 그의 나이가 67세였지만 꾸준히 축구 등 운동을 해왔던 터라 자신 있었다. 출발소리와 함께 호기롭게 첫 종목인 수영을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와 다른 선수들 간 거리가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자유형을 못하니 다른 선수들을 따라잡을 도리가 없었다. 거리가 너무 많이 벌어져 안 되겠다 싶어 그대로 포기하고 나왔다.”
첫 출전한 대회를 포기한 그는 바로 동네 수영장에 등록했다. 이를 악물고 자유형을 연습했다. 한 달 만에 자유형을 뜻대로 구사할 수 있었다. 또 새벽에는 2시간씩 달리기와 자전거 타기를 병행하며 다음 대회를 위해 칼을 갈았다.
철저히 준비한 뒤 참가한 그의 두 번째 대회에서 김 어르신은 결승선 통과에 성공한다. 그는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그간의 훈련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동시에 생전 처음 느끼는 희열을 맛봤다”고 말한다.
이때부터 그는 더욱 운동에 박차를 가하며 모든 대회에 참가했다. 국내 대회는 물론 하와이, 일본, 필리핀, 사이판 등에서 태극기를 달고 국가대표가 돼 달리기도 했다. 현재 그는 150회 이상의 완주을 기록했고, 매회 그 기록을 경신중이다.
그는 “자신감이 붙으니 운동이 즐거워졌다. 기록도 점점 단축돼 철인3종경기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고 한다.
이런 그를 알아본 코카콜라가 2006년 아시아판 CF모델로 그를 발탁했다. 또 스포츠 용품업체 ‘ZTA’는 매년 유니폼을 지원해주고 있다.
그는 철인3종경기를 다른 사람들도 즐기길 간절히 원했다. 그래서 1998년, 국내 최초 트라이애슬론 동호회 ‘서울중앙클럽’을 창립했다. 이후 전국 트라이애슬론연합회 회장직도 맡게 됐다.
“어느덧 사람들이 내 이름대신 회장직 앞에 ‘왕’자를 붙여 왕회장 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일을 쫓아 달렸던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철인3종경기 동호인들의 대부가 됐다.
하지만 당시 그의 가족들은 이를 못 마땅히 여기고 처음엔 말리기도 했단다.
김 어르신은 “아내와 자식들이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이 돼서 많이 말렸다. 그런데 지금은 더없이 든든한 후원군이 됐다”고 말한다. 몇 해 전 병원에서 실시한 골밀도·심폐기능·순발력 등의 검사결과 그의 신체나이가 30~50대라는 진단이 나온 후 더욱 그렇다.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 위치한 그의 중고차매장 사무실 벽 한 켠에는 ‘철인’(아이언맨) 인증서가 걸려있다. 철인 인증서는 철인3종경기 코스 중 철인’(아이언맨)코스를 17시간 내 완주한 선수에게 주어진다.
철인코스는 각 종목별 길이가 수영 3.9㎞, 사이클 180.2㎞, 마라톤 42.195㎞에 달해 선수들에게 ‘지옥코스’로 불린다. 김 어르신은 2003년 77세의 나이로 철인코스 완주에 성공, 이 인증서를 받았다.
그는 “첫 도전하는 철인코스라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짐작은 했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더 힘들었다. 경기도중 순간 정신이 혼미해진 적도 있었다. 너무 힘들어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를 악물고 계속 달려 결국 완주에 성공했다. 그때의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철인3종경기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김 어르신. 그에게 이제 그만 쉴 때 되지 않았냐 물으니 “이제 그만 쉬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디오게네스가 이렇게 말했다죠? ‘만일 내가 경기장에서 달리기를 한다면 결승점에 가까이 가서 속도를 늦추는 게 좋겠소, 아니면 온 힘을 다해 결승점으로 질주하는 것이 좋겠소?’ 라고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라며 환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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