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동안 정신적 성장은 계속…‘노화=쇠퇴’ 아니다
살아있는 동안 정신적 성장은 계속…‘노화=쇠퇴’ 아니다
  • 조종도 기자
  • 승인 2014.04.11 16:08
  • 호수 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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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100세, 행복 100세’구현을 위한 세 가지 역발상
▲ 행복은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보람 있고 신나는 일을 찾아 몰입할 때 온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보라매 공원에서 걷기 운동을 하는 여성들이 함빡 웃고 있다. 사진=조준우 기자

노인을 늙고 병약한 존재로만 보는 건‘80세 시대’사고방식
60세 이상 고령층 고용률 34%…노인부양비 통계도 바뀌어야
돈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아…보람 있는 일 하면 행복감 커져

 

우리나라의 100세인은 1만3000여명이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2013년 12월 기준 주민등록상 100세 이상 인구는 1만3793명(남 3194명, 여 1만599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1만2657명)보다 9% 증가한 수치다. 특히 100세 이상 여성은 지난해 처음으로 1만 명을 넘어섰다.
우리나라(약5000만명)보다 인구가 많은 영국(약 6300만명)의 100세 이상 노인이 2012년 현재 1만3350명인 것을 보면 우리나라가 장수국가의 반열에 빨리 진입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100세시대는 정치, 경제, 의료, 복지, 환경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지표인 만큼 축복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일각에서는 100세시대를 축복으로 여기지 못하고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현실이다. 노후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최악이라는 보고서가 말해주듯 현재 노인들의 노후 준비는 매우 미비한 상태다.
비록 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는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실현하고 부족한 사회안전망을 갖추는 데 많은 예산을 투여하고 있다. 2014년 우리나라 복지예산은 사상 첫 100조원을 돌파했다. 4대 중증질환의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하고 경증 치매환자도 장기요양보험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했다. 그래도 스웨덴․영국 등 복지 선진국을 따라가려면 멀었다.
창간 8돌을 맞이한 ‘백세시대’는 이러한 노후 대책 마련과 동시에 ‘건강 100세, 행복 100세’ 구현을 위한 생각의 변화를 제안한다.

▣‘건강하고 활기찬 노인상’정착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노화(aging)라고 할 때 노화에는 분명 ‘쇠퇴’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데 그 쇠퇴는 20세 이후부터 발생한다. 미 하버드대 의대 조지 베일런트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20세 이후부터 사람의 뇌세포는 일년에 수백만개씩 죽는다. 노화는 노인에게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라 성인이 된 이후는 누구에게나 진행중인 것이다.
노화를 ‘자연의 흐름에 따른 변화’로 보는 건 훨씬 긍정적인 시각이다. 젊은 여성의 검은 머리나 금발도 나이가 들면서 점차 백발로 변해간다. 백발이 되면 여성의 아름다움은 사라지는 걸까. 오히려 흑발보다 더 고상하고 고귀한 인상을 줄 수도 있다. 미국출신 카르멘 델로피체(Carmen DellOrefice)는 올해 나이 83세로 은발이 무척 매력적인 현직 모델로 활동 중이다.
게다가 노화에는 ‘성장’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 인간은 ‘죽기 직전까지 계속해서 성장한다는 것’이다.
‘유년기와 사회’라는 책을 쓴 미국의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이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사회적 지평이 확장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50세 이후의 삶은 내리막길이 아니라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길이었다. 에릭슨의 연구를 이어 받은 노마 한은 성인의 인성발달을 50년에 걸쳐 추적한 결과 “남성과 여성 모두가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좀더 외향적이고 자기확신이 강해지며, 다정한 성격을 지니게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는 노인에게 사교능력이 발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늙어가고 질병도 찾아올 수 있지만, 그것은 백세시대만의 현상이 아니라 이전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하다.
세계는 지금 ‘무병장수’ 시대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심지어 독일 학자 외펜과 보펠은 인간의 수명에는 한계가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들은 “의학기술 발전 등에 힘입어 수명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볼 때 수명의 한계는 깨졌다”고 말한다.
식품영양학자로 유명한 유태종 전 고려대 교수는 만 90세를 넘은 나이에도 보청기를 사용할 필요가 없고, 시력도 1.0인데다가 고혈압, 당뇨병 같은 지병도 없다. 적당한 운동과 건강식단으로 젊음을 유지하며, 만나는 사람에게 유머를 들려주면서 유쾌하게 살아간다.
노인을 무조건 늙고 병약한 존재로 보는 건 올바르지 않다. 이는 노화를 ‘쇠퇴’로만 바라보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100세시대를 대비한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100세 시대를 현재의 생활습관으로 가면 아픈 기간도 늘어난다. 질병 관리도 치료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인은 100세시대의 자산이다

통계청에서 인구통계를 발표할 때마다 빼놓지 않는 것이 노인의 인구비율이다. 전체 인구 중 노인비중이 7%이상이 되면 ‘고령화 사회’라 하고 14%가 되면 ‘고령사회’, 20% 이상 되면 ‘초고령사회’라고 진단한다. 이때 15∼64세의 생산 가능인구에 대한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을 산정하는데 이것이 ‘노인부양비’다. 생산 가능인구 100명당 노인수로서 2013년 노인부양비는 16.7명이다. 2040년엔 57.2명으로 3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 한다.
이런 통계치는 국가경제 계획이나 복지예산을 짤 때 참고자료로 중요하다.
문제는 이런 통계치를 보도할 때 드러내놓고 ‘노인을 사회가 책임져야 할 짐’으로 여기는 점이다.
지난해 6월 서울 코엑스에서는 ‘노년학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제20차 세계노년학·노인의학대회가 열렸다. 신영수 세계보건기구(WHO) 서태평양지역 사무처장은 개막강연에서 “고령화는 좋은 소식”이라는 메시지를 선포했다.
신 처장은 “인구 고령화가 문제라는 생각을 버리고 긍정적인 기회로 여겨야 한다”면서 “노인의 건강이 확보되고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할 환경이 보장되면, 노인은 그 사회의 중요한 자산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고 역설했다.
25세의 젊은이보다 70~80대 노인이 더 잘할 수 있는 것이 분명 존재하며 진가를 발휘하게 될 것이란 말이다.
대한노인회(회장 이 심)가 ‘부양받는 노인에서 사회를 책임지는 노인이 되자’는 새로운 노인상을 주창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인강령에도 “우리는 청소년을 선도하고 젊은 세대에 봉사하며 사회정의구현에 앞장선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케어’가 확산되고 있는 점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건강한 노인들은 자신의 몸을 돌볼 뿐 아니라 이웃 노인을 돌보는데도 앞장섰다. 지난해 대한노인회 경로당 노노케어는 노인 자살을 30%나 줄이는 효과를 나타내기도 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고용동향’에 따르면 60세 이상 고령층 고용률은 33.9%이며, 특히 60세 이상 남성의 고용률은 46.9%에 이른다. 일하는 노인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정부는 고령층의 이모작 또는 삼모작 플랜을 마련하고, 이를 뒷받침할 사회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통계청의 노인부양비 통계도 바꿔야할지 모른다. 현재 생산 가능인구가 64세까지 설정돼 있지만, 이를 69세로 연장한다면 노인부양비는 크게 떨어질 것이다.

▣부유하지 않아도 행복하다

글로벌 리서치 전문기업 입소스(Ipsos)가 2011년 말 세계 24개국 1만868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행복도 조사 결과 우리나라는 23위로 나타났다. 꼴찌 헝가리에 이어 조사 대상국 중 두 번째로 국민 행복도가 낮았다. 당시 설문 문항은 ‘모든 조건을 고려할 때 당신은 ‘아주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였다. 한국 국민들은 이 질문에 7%만 ‘그렇다’고 응답했다. 1위는 인도네시아로 무려 51%가 ‘매우 행복하다’고 응답했다.
2006년 영국의 싱크 탱크인 신경제학재단이 삶의 만족도와 평균 수명, 환경적인 여건 등을 종합한 178개국 대상 행복지수 순위 조사에서도 한국이 102위를 차지한 반면 호주 인근의 작은 섬나라 바누아투가 세계 1위였다. 당시 바누아투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0달러로 한국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이처럼 물질적 풍요는 행복한 삶을 위한 수단은 될지언정 물질 자체로는 행복을 가져오지 못한다. 단지 소비를 늘리고 노후생활에 대한 걱정을 감소시킬 뿐이다.
예컨대 복권에 당첨된 사람은 강렬한 행복감을 느끼지만 그 행복감은 대략 3개월 이상을 넘지 못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이를 가리켜 심리학에서는 ‘적응수준이론’이라고 한다. 복권 당첨으로 행복이 계속되려면 3개월 내에 첫 번째보다 더 거액의 복권에 당첨돼야 한다는 것이다.
물질의 풍요가 행복을 보장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타인과의 비교의식에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경향이 있는데 소득이나 재산은 누구를 비교대상으로 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만약 빌 게이츠를 비교 대상으로 여긴다면 아무리 재산이 많더라도 행복을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돈과 행복에 관한 일관적인 연구결과 중 하나는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물질에 대한 욕구도 증가한다는 것이다. 즉 소득이 올라갈수록 행복해지기 위해 더 많은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행복이 비례해 커질 수가 없는 것이다.
돈이 많지 않아도 행복하게 사는 어르신들이 우리 주변에도 많다. 늦깎이 학생으로 ‘배우는 기쁨’을 한껏 누리는 문해학교 어르신들은 “이젠 한글을 읽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또 폐지를 주워 모은 돈으로 더 어려운 노인들을 돕거나 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분들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행복하다”고 환한 미소를 짓는다.
빠른 시간 내 경제발전을 이루느라 우리는 진정한 가치를 잃어버렸는지 모른다. 백세시대는 봉사하는 기쁨, 나누고 베푸는 기쁨, 배우는 기쁨을 한껏 누리는 행복시대를 열어가야 할 것이다.
‘70대 인생을 재미있고 신나게 사는 이야기’를 쓴 배낭여행가 김현·조동현 부부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들은 말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면서도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에 매진하면 얼마든지 노후를 신나고 재미있게 보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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