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도움 줄 수 있어 행복합니다”
“사람들에게 도움 줄 수 있어 행복합니다”
  • 이상연 기자
  • 승인 2014.04.18 14:03
  • 호수 4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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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법원할머니’강선희 어르신
▲ 국내 1호‘명예변호사’강선희(76) 어르신은 2000년부터 15년째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무료법률도우미로 활약하고 있다. 사진은 강 어르신이 민원 서류를 살펴보는 모습. 사진=조준우 기자

법률 민원안내 자원봉사 15년… 서류작성 도와
2009년 변협에서 제1호‘명예변호사’로 위촉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서울중앙지방법원 동관 1층 제1종합민원실에서 법률 민원 시민자원봉사자로 활동 중인 강선희(76) 어르신은 민원인들에게 항상 밝게 웃으며 이렇게 인사한다. 법원 분위기에 경직된 민원인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함이다.
강 어르신은 15년째 법률 민원안내 시민자원봉사자로 활동 중이다. 민원인의 대부분은 형편이 어렵거나 법을 잘 몰라 간단한 소장(訴狀)이나 합의서 등을 작성하지 못해 그를 찾는 경우가 많다.
강 어르신은 “90세가 넘은 어르신을 비롯해 노부부, 아이를 업고 온 주부, 휠체어를 탄 장애인분들까지 수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대부분은 차용증, 판결문 등 증거자료가 확실한데도 돈을 떼일 위기에 놓인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판결문은 유효기간이 10년인데 연장신청을 해서 소장을 내고 재판을 받으면 반드시 승소할 수 있어요. 그런 분들을 도와드리고 나면 가슴이 참 뿌듯해요”라고 말한다.
그가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한 지체장애인의 서류 작성을 도와 승소했을 때. 그 민원인은 어렵게 입을 열어 강 어르신에게 “구...세...주...만...나...씀...미...다”라고 띄엄띄엄 말했다.
“순간 가슴이 찡해져 눈물이 핑 돌았어요. 늘 해왔듯이 조그만 도움을 드렸을 뿐인데 말이에요”
또 이혼서류를 작성하러 온 부부를 수차례 설득한 끝에 발길을 돌리게 해 ‘지금 잘 살고 있다’는 인사를 받기도 했다. 이렇게 다양한 이들을 만나다보니 하루가 빠듯할 때가 많다. 매일 70~80명 이상 되는 민원인 때문에 어떤 때는 화장실 갈 틈도 없다. ‘힘들지 않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아니요. 전혀요. 법조계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요”라며 활짝 웃는다.
강 어르신은 판사의 꿈을 꾸며 이화여대 법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1962년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하게 돼 꿈을 접었다. 그 뒤 4남매를 키우며 평범한 전업주부의 삶을 살던 그는 62세 되던 2000년, 한 공고를 보고 가슴이 뛰었다. 공고에는 법원 ‘시민자원봉사자’를 찾는다고 적혀 있었다. 서울중앙지법이 수도권 6개 대학 법과대 졸업생을 대상으로 법원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를 낸 것.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하려니 막막했다. 법서(法書)를 놓은 지 40년이 넘어 간단한 법률용어조차 가물가물했다. 게다가 민원인들에게 안내할 법률서류가 100여종에 달했다. 그는 그때 물러서지 않고 각오를 새로 다졌다. 우선 법과 관련된 서적을 구해 독학에 들어갔다. 대학시절보다 눈이 나빠져 글을 읽을 때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그렇게 3년 정도 지나자 수월하게 민원 안내를 할 수 있었고, 그 생활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덕분에 ‘법원할머니’라는 별명도 얻게 됐고, 2009년에는 대한변호사협회로부터 제1회 인권봉사상을 수상하며 제1호 ‘명예변호사’로 위촉됐다.
강 어르신은 “즐겁게 일하다 보니 어느새 민원봉사가 제 생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됐어요. 비록 ‘명예’자가 붙지만, ‘변호사’라는 호칭도 듣게 됐고요. 멋들어진 별명까지 생겼네요”라고 말한다.
‘법원 할머니’ 외에도 그는 구세주, 천사 등 다양한 별명을 갖고 있다. 모두 민원인들이 붙여줬다.
“사실 ‘천사’나 ‘구세주’라고 불릴 때면 쑥스러워요. 저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는 가끔 민원봉사 능력 밖의 일을 접하기도 한다. 그런 경우 ‘법률구조공단’에 문의하도록 안내한다. 그리곤 법원 식당에 데려가 식사를 대접하며 인생이야기를 나눈다. 식사 후에는 가방에서 초콜릿, 과일, 사탕 등을 꺼내 그들의 손에 꼭 쥐어주며 “힘내세요. 용기를 가지시고요”라고 격려한다.
강 어르신은 “안타까운 일들을 많이 접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가슴 아픈 일들은 노인들에게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요. 신종 사기인 보이스피싱·스미싱을 비롯해 투자사기, 자녀들과의 유산문제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에요. 어르신들이 몇 가지 주의사항만 유념한다면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우선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는 경우는 의심부터 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강 어르신도 그러한 종류의 사기를 당할 뻔한 경험이 있다.
“어느날 유명 일간지 관계자라는 사람에게 전화가 와 ‘어르신 같이 훌륭한 분들 500명을 선정해 상을 드린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리곤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했어요. 전화를 끊고 바로 본사에 전화해 확인했죠. 물론 사기였어요. 주민등록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면 일단 의심해봐야 합니다”
이 외에도 강 어르신은 투자의 위험성에 대해 강조한다. 만약 투자하고 싶다면 꼭 그와 관련된 증거서류를 만들어 놓을 것을 권한다. 그 서류로는 등기부등본, 차용증서, 공정증서 등을 꼽는다. 또한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면 노동청에서 ‘체불임금확인원’을 제출받으라고 권한다.
한편 노인들을 위한 법률 관련 상식을 이야기하던 그는 “이러한 상식보다 중요한 것은 ‘욕심’을 버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채무관계로 인해 인간관계가 멀어지는 과정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안타까웠다. 그래서 강 어르신은 도움을 받은 민원인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한다.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그리고 이곳을 법과 관련된 일로 다시 찾으시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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