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서울 깨운다는 생각으로 좋은 일자리 많이 만들 것”
“잠자는 서울 깨운다는 생각으로 좋은 일자리 많이 만들 것”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4.05.30 11:56
  • 호수 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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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재산 2조 넘지만, 지갑에는 30만원만… 짜장면·오이지 좋아해
노인요양시설 區마다 2개씩… 무한 돌봄 제도로 고독사 최소화


지난 5월27일, 오후 12시 조금 넘은 시각,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20층에서 열린 대한노인회 전국순회시니어포럼 서울지역 행사 중간에 정몽준(63)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가 불쑥 찾아왔다.
정 후보는“아래층 외신클럽에 들렀다가 이곳에서 노인회 행사가 있다는 걸 알고 올라와 인사한다”며“구마다 노인요양시설을 2개씩 총 50개를 신설해 노인요양시설 충족율을 현재 68%에서 100%로 올리겠다”고 약속해 참석자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6·4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요즘 정 후보는 초조하다. 세월호 참사 직전만 해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원순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장 후보와의 지지율 차가 근소했거나 조금 높았는데 참사 직후 격차가 크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정 후보에게 역전의 히든카드를 갖고 있는지 물었다.
‘백세시대’는 지난 4월 초부터 서울시장 예비후보들을 릴레이 인터뷰해왔다. 이혜훈(413호)·박원순(414호)·김황식(418호)에 이어 정몽준 후보 편을 내보낸다.

-히든카드라도 있는가.
“히든카드라니요. 최선을 다해 내 생각을 말씀드리는 것 말고 뾰족한 대책이 있겠어요. 다만 우리 국민은 모두 애국심이 있다고 봅니다. 박원순 후보는 우리나라를 자랑스러운 나라라고 말한 적이 없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도 말하지 않아요. 북한 인권도 북한이 폐쇄적 국가라 정보가 없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고 했지요. 그런 부분에 대해 국민의 애국심에 호소할 생각이에요.”

-대통령에 도전했다가 왜 갑자기 서울시장인가.
“서울(동작을)에서 재선하면서 서울시에 관심이 계속 있었어요. 서울시장 자리도 대통령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한 번 열심히 해볼 생각이에요.”

-서울시장이 되면 2017년 대선에 안 나온다는 말을 한 적 있다.
“공직은 죽음하고 같다는 말을 제가 자주 인용해요. 찾아올 때 도망가는 것도 어리석지만 만날 그거 하겠다고 따라다니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지요.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열심히 할 것이고 대선은 그때 가서 생각해보겠어요.”

-박원순 후보는 정 후보가 재벌 출신이라 서민을 잘 모른다고 비판한다.
“내가 울산에서 5번이나 국회의원 했어요. 그곳에 근로자가 많아요. 근로자를 대표하는 후보자들도 나를 그런 시각으로 공격했어요. 그런 틀에 갇힌 말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그보다는 지역과 유권자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물론 부자가 잘못 행동해서 존경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요. 그렇다고 해서 기업 운영에 성공한 사람은 정치를 하지 말라는 것은 자유 민주주의의 정신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정몽준 후보는 이어서 “야당 대표인 안철수 의원도 재벌급이다. 자기 당의 대표가 재벌급인 것은 괜찮고 내가 부자인건 그렇게 잘못된 건가. 박 시장이 한쪽에선 참여연대를 이용해 대기업을 공격하고 다른 한쪽에선 ‘아름다운 가게’로 대기업에 손을 벌렸던 위선적 행태가 오히려 문제가 아닌가”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을 어떤 도시로 만들고 싶은가.
“잠자는 서울을 깨운다는 생각으로 좋은 투자와 좋은 일자리를 만들 겁니다. 서울의 경쟁력이 곧 대한민국의 경쟁력입니다. 내수 진작만으로는 경제 살리기는 한계가 있어요. 서울에서 3시간 비행거리 안에 15억명의 인구가 살고 있어요. 이들 외국인을 끌어들여 장사가 잘 되는 서울을 만들려고 합니다.”

-강남에 비해 뒤처진 강북의 발전 계획은.
“강북은 서울의 원조로 행정의 중심이자, 500년 조선시대 문화유적 대부분이 이곳에 남아 있습니다. 우선 10만여평의 창동차량기지에 공항터미널과 복합단지를 건설하려고 합니다. 노원 ·은평구에는 엔터프라이즈존을 만들어 기업 본사, 연구소 그리고 금융회사를 유치할 겁니다. 동부간선도로의 일부를 지하화해 상층부를 수변공원으로 만들고 친환경 관광존을 북한산에 만들 겁니다.”

-시정 운영은 어떻게 할 건가.
“박원순 시장은 소통과 마을공동체 같은 것을 강조하지만 서울시민들의 관심은 일자리와 경제활성화 이런 것입니다. 이런 분야에 제가 열심히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뉴타운을 많이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유휴부지 개발 등을 하겠다는 겁니다. 서울시내에 사업을 할 수 있는 유휴부지가 100군데 되는데 그중 30개 정도는 투자자들이 투자신청을 했지만 시는 특혜를 우려해 그중 2개만 허가해줬다고 해요. 사업을 할 때 주변 땅값이 올라가서 특혜라고 하는 것은 너무 단편적이고 피상적이라고 봐요. 투자를 해야 일자리가 생겨요.”

-누구나 일자리 창출을 말하는데.
“고용효과로는 건축을 제일 많이 꼽지요. 복지를 말하는 시대에 갑자기 토건이나 건축이 무슨 말이냐고 할 수 있지만 나는 공간복지에 관심이 있어요. 문화도 교육도 필요하지만 생활의 기본은 의식주입니다. 그중에서도 정부와 서울시가 힘써야 할 것이 문화적인 주거생활, 바로 주택입니다. 그런데 주택만으로는 안 되고 교통정책이 같이 가야 해요. 공간복지에는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노인의 고독사가 종종 발생한다. 이에 대한 대책은.
“우리나라는 핵가족화와 고령화시대 진입으로 독거노인의 수가 증가할 수밖에 없지요. 이들 어르신들은 대부분 빈곤 상태이거나 질병을 앓고 계세요. 가족의 지원도 받지 못하고 정서적 유대감마저 상실해 더욱 고독해지는 겁니다. 노인요양시설을 대폭 확충하고 무한 돌봄 제도의 시행을 통해 어르신들의 고독사가 최소화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정 후보는 이밖에도 ▲ 모든 지하철역에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설치 ▲ 어르신 안전·건강센터 설치 등을 약속했다. 정 후보는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지하철역의 경우 노인의 불편이 증가하고 있다”며 “안전사고도 예방하기 위해 이들 시설을 우선적으로 설치하고 홀로 사는 어르신이 안심하고 지낼 수 있도록 통합 서비스 체계도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정몽준 의원은 1951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6남으로 태어났다. 중앙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국제관계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ROTC로 중위 만기 제대했다. 13대~19대 7선 국회의원이다.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을 지냈다. 현대중공업그룹 대주주이자 아산사회복지재단이사장, 울산대 명예이사장이다.
한 일간지는 정 후보에 대한 시시콜콜한 신상명세를 공개했다. 재산은 2조396억원이고 지갑에는 30만원을 넣고 다닌다. 좋아하는 음식은 오이지·짜장면·설렁탕이다. 초등학교 때 장래 희망은 아이스크림장수, 좋아하는 연예인은 손숙·박정자·김상희·패티김 등이다. 성격은 신중, 일단 결정하면 뒤돌아보지 않는다. 인생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은 부모님, 종교는 기독교, 별명은 꺼벙이. 부인 김영명(58) 씨와는 친척의 소개로 결혼했고, 김씨가 다니던 웨슬리 대학에서 프러포즈했다. 살면서 가장 창피했을 때는 대학 1학년 때 낙제를 했던 것, 정치를 안했으면 지금 초등학교 교사가 됐을 것이다.

-의정 활동 중 보람을 느꼈던 일이라면.
“1988년 13대 총선에 당선돼 국회에 들어온 후 27년간 시련도 많았지만 국회는 나에게 많은 걸 가르쳐주었어요. 무엇보다 국민과 대화하는 방법을 배웠으며,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국민을 위한 방법인지 고민하고 토론을 했지요. 한나라당 대표직을 그만 둘 때 당시 야당 대표가 나에게 ‘정 대표는 여야 관계를 부드럽게 하고 조화롭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을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국회의 기능과 정치를 복원시키려는 노력을 열심히 했다’고 말해주었어요. 지금도 그 말을 감사히 여기고, 그런 부분에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아버지로부터 인생을 배웠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아버지는 ‘나라가 잘 되는 것이 우리가 잘 되는 것이며 우리가 잘 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길’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아버지는 또, 자유를 소중하게 생각하셨지요. 생각이 자유로워야 기존 인습의 한계를 깰 수 있고 그래야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계셨어요.”

-생전의 아버지와 나눈 추억을 소개해 달라.
“아버지는 ‘88서울올림픽’이라는 불가능에 도전하셨는데 그 때 제가 통역 겸 수행비서 역할을 했어요. 당시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유치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정부 인사 가운데 단 한명도 없었지요. 누구보다도 열성적이어야 할 우리나라 IOC위원도 비관적이었거든요. 그 위원이 우리나라는 2표를 얻을 거라고 농담처럼 말한 걸 기억합니다. 한 표는 자신의 표이고 나머지는 미친 사람의 표라고요. 이런 역경 속에서도 아버지는 ‘매사는 사람 하기에 달렸다’며 나를 격려해주셨고 결국 일본을 제치고 올림픽을 유치하게 됐습니다. 그때의 감격과 성취감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어떤 남편이자 아버지인가.
“요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려고 해요. 4남매를 두었어요. 큰아들과 큰딸은 서른 줄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출가를 안했어요. 최근에 원칙을 하나 세운 게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온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는 거예요. 아내가 내 일정을 확인하고 아이들과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 시간을 조율합니다. 주말에는 집사람과 함께 교회에 가고, 시간이 나면 지인을 만나거나 등산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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