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금속에서 따뜻한 감성이 물씬
차가운 금속에서 따뜻한 감성이 물씬
  • 김지나 기자
  • 승인 2014.06.20 13:30
  • 호수 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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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국립현대미술관‘강찬균_새 손길’展
▲ ‘生의 안단테’(1989) 중 ‘5 그리고 뛰었지’ .

한국 1세대 금속공예가 강찬균 데뷔 반세기 회고전
60년대부터 5섹션 나눠 전시… 금속공예 변천사 한눈에


대리석으로 빚은 송편을 볼 기회는 흔치 않다. 금으로 만든 개구리나 백동과 아크릴로 만든 고드름은 또 어떤가. 대리석이나 은, 동, 쇠 등 차가운 금속으로 따뜻한 감성을 담아낸 작품이 인상적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 ‘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 공예부문 첫 전시로 지난 4월 22일부터 ‘강찬균_새 손길’전을 개최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 1세대 금속공예가 강찬균의 50여년의 작품세계를 망라하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강 작가는 미개척 분야였던 금속공예를 발전시킨 금속공예의 선구자로 불리며 서울대 정문을 디자인하고 서울 종로 보신각종 재건 사업 때 종의 조각을 맡기도 해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졌다.
전시는 60년대부터 현재까지 시대별로 5섹션으로 나누어 구성했다. 그래픽 디자인, 도자공예, 목공예 등 다양한 장르와 재료를 탐구하는 시기였던 1960년대를 시작으로 이태리 유학을 통해 금속공예 장르에 몰입하게 되는 1970년대, 한국적이면서 자연의 모티브가 돋보이는 작품을 제작했던 1980년대, 과반(과일을 담는 쟁반)이나 렌턴 등의 작품이 도드라진 1990년대를 지나 2000년대 이후의 비교적 최근 작품까지 만날 수 있다.

▲ ‘무궁무궁’(2011).

1970년대에는 ‘두 얼굴’ ‘은하수’ ‘구월’ 등의 작품을 통해 파새김(조각, engraving), 돋을새김(금속판을 두드려 새김, chasing), 은입사(銀入絲) 등의 전통공예기법을 활용해 작업하고, 전동롤러를 사용해 합금작업을 하는 등 금속재료를 다양한 방법으로 조형한 작품들이 전시됐다.
1980년대에는 새, 달, 개구리 등 자연과 살아 있는 생명들이 소재로 등장하고 스토리가 있는 작업이 두드러진다. ‘개구리 작가’로 알려졌을 만큼 작가가 즐겨 사용하는 소재인 개구리는 생명력을 가진 인간을 상징하는 모티브다. 도화진 학예연구사는 “때로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대입하기도 했던 이 개구리들을 찾아가면서 관람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라며 “도시에 온 개구리가 느꼈을 좌절감, 도약하거나 우는 모습 등 다양한 모습이 작품 사이사이에 표현돼 있다”고 전했다.
전통 새김기법들을 활용해 작업한 ‘生(생)의 안단테’ 연작은 인간 삶의 순환과정을 표현한 작품으로, 창문이나 달에 걸터앉은 손톱만한 개구리를 발견할 수 있다. 1989년 작 ‘파초가 있는 뜰’에서는 파초가 돋아난 링(ring) 안쪽에 한가롭게 팔베개를 하고 누워 있는 14k 개구리를 만난다.
90년대로 넘어오면 ‘강강수월래’(1993)에서 볼 수 있듯이 어둠을 밝히는 존재로서 달과 촛불이 소재로 자주 등장하고, 2000년대 이후로는 작품의 재료와 상징, 스토리가 좀 더 다양해진다. 가장 최근작에 속하는 작품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2014) 속에는 반사경을 설치해 놓아 속을 들여다보는 관람객의 모습이 보이도록 했다.
장난스럽고 천진한 동심을 형상화한 작품들도 눈에 띈다. 수수께끼 같은 작품 ‘눈눈눈눈’에는 여러 의미의 ‘눈’이 숨어 있다. 눈사람의 눈, 영어 철자 ‘NOON’의 눈, 새싹의 눈, 눈금의 눈 등으로 작가의 유쾌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또 토끼 등 동물들의 모습이 등장하는 아기자기한 작품들도 만날 수 있는데, 이는 작가가 손주를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작품을 올려놓은 조각대의 높이가 낮은 이유도 ‘어린 관람객’의 감상을 위해 작가가 특별히 요청한 사항이다.
이렇게 시대별로 흐르듯이 감상을 하다보면 금속공예가 조금은 낯선 예술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그 매력에 금세 빠지게 된다. 이는 전통적이고 한국적인 소재가 자주 등장하면서도 세련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어 심미적 감상의 폭을 넓혀주기 때문이기도 하고, 금속이라는 재질적 특성이 무색할 정도로 따뜻하게 다가오는 작품의 정서 때문이기도 하다.

이를 구체화시키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작품의 제목이다. 제목에는 ‘사르르르’ ‘개골개골’ ‘당 닷궁 당 닷궁’ 등 한글로만 표현이 가능하거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의성어‧의태어가 자주 등장하고, ‘먼동이 틀 때’ ‘무궁무궁’ ‘그 겨울의 동화’ ‘봄의 수채화’ 등 시적인 표현들도 많다. 재밌는 것은 작품만을 볼 때와 제목과 함께 작품을 볼 때의 감상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직사각형 모양의 작은 은판 아래에 은색의 반질반질하고 동그란 구 하나가 박혀 있다. 그 은판 오른 쪽 윗면에 또 하나의 구가 걸쳐 있고, 그 구의 옆면에 세 번째 구가 사각 면과는 떨어져서 붙어 있다. 동그란 구 세 개가 은판을 중심으로 맨 아래에 하나, 은판 윗면에 걸쳐서 하나, 허공에 하나 있는 형상이다. 처음 작품을 보면 관람객은 은색의 반질반질한 구면이 아름답다고 느낄 것이고 물방울이나 우주의 작은 행성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제목은 ‘도미솔’이다. 오선지에 콩나물 머리로 그렸던 화음이 우아한 금속 작품으로 재현됐다.

▲ ‘파초가 있는 뜰’(1989).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전시장 마지막에 다다르면 작가의 작업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아틀리에가 있다.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쇠를 두드리는 망치질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데 그 시작이 바로 이곳이다. 작가가 실제로 작업을 할 때 녹음한 소리다. 눈으로는 매끈하게 완성된 작품을 보면서도 귀로는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듣는 셈인데, 쉬지 않고 금속을 두드렸을 작가의 손이 떠오른다.
운이 좋으면 이곳에서 작가를 직접 만날 수도 있다.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작가가 거의 매일 아틀리에에 나와 관람객과 직접 만나고 작품해설도 해준다”는 학예연구사의 귀띔이다. 이번 전시는 8월 24일까지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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