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상처 그림으로 표출… 미술이 ‘치료사’
내면의 상처 그림으로 표출… 미술이 ‘치료사’
  • 김지나 기자
  • 승인 2014.07.04 11:20
  • 호수 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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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미술치료 복지관 등서 러브콜
▲ 노인 미술 치료의 하나로 활용되고 있는‘만다라’그리기.

자기 성찰 도구로도 활용… 우울증‧분노‧치매 완화
원 안의 무늬 색칠하는‘만다라’통해 혼자도 가능

 

▲ 정여주 미술치료연구소 소장

80대 A어르신은 아침식사 후 ‘색칠 공부’로 본격적인 하루를 시작한다. A4용지보다 작은 종이에 원이 그려져 있고 원 안에는 선으로만 꽃 형태가 표현돼 있다. A어르신은 여러 곡선으로 나누어진 빈 공간을 색연필로 꼼꼼하게 칠한다. 오늘은 빨간색 두 칸, 노란색 두 칸씩 대칭을 이루게 해본다.
A어르신이 하고 있는 색칠하기 활동은 노인미술치료의 하나로 이용되고 있는 ‘만다라’ 그리기다. 단순한 그림 같지만 그 그림 안에는 중심이 있고 리듬이 있다.
동물, 식물 등 다양한 주제로 그려진 형태에 색을 칠하면서 정신을 정돈한다. A어르신은 치매를 진단 받은 10여년 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두 장씩 그려왔다. 현재 A어르신은 치매가 악화되지 않고 진단 때와 같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노인 우울증, 자살 등 노인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면서 이를 예방할 노인 복지 프로그램의 하나로 각광받고 있는 미술치료는 어르신들의 만족도가 높아 각 복지센터와 경로당 등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말로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아동들에게 적합한 치료 방법으로 사용되었던 미술치료가 노인들에게도 이렇게 널리 사용되고 만족도가 높은 이유는 뭘까.
그 이유 중 하나는 미술치료에서의 ‘치료’ 범위가 특정 질병의 치료가 아닌, 예방적 또는 자기성찰적 의미로 넓게 확대됐기 때문이다.
정여주 미술치료연구소 소장은 “심리적으로 우울한 기분이 장기간 지속되거나, 화를 자주 내거나, 무기력감이 오래가는 등 본인 스스로도 ‘내가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구나, 조심해야겠구나’ 하고 느끼는 수준에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우울증이나 치매 등 진단을 받은 사람이 그 병을 완화시키기 위한 목적 외에도 정서적‧정신적‧신체적 면을 활성화하고 심리적 갈등을 치유‧경감시켜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아이들 뿐 아니라 노인들 역시 감정적 표현에 서툴다는 점이다.
정 소장은 “미술치료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미술이라는 예술 활동을 통해 내면에 가지고 있는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미술활동을 할 때에는 특정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와 관련한 상황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심리적 치유가 일어난다.
특히 노인들의 미술작품에는 현재보다 회상에 대한 내용이 많다. 이는 감정 역시 과거에 붙들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뜻한다. 사별했지만 젊었을 적 마음을 아프게 한 남편을 여전히 용서하지 못하거나 어렸을 때 배우지 못했던 한도 현재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노인들은 그림을 그리면서 ‘채송화 꽃밭이 참 예뻤지. 하지만 그땐 내가 참 옹졸했어’ ‘그때 비단 이불 감촉이 참 좋았는데’하며 과거의 사건과 기분을 떠올리고, 바로 그 감정을 담아 채송화 꽃밭을 그리기도 하고 천을 이용해 직접 이불을 만들기도 한다. 노인들에게는 과거가 현재가 되는 순간이고 행복이든 고통이든 그때의 감정을 내면에서 드러내게 된다. 이를 통해 잊고 있던 행복감을 맛보기도 하고 지속되는 고통과 화해하는 과정을 거친다.
노인들은 잘 안 변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지만 미술치료를 꾸준히 진행한 어르신들의 변화는 도드라진다. 우선 심리적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정 박사는 “미술활동을 하는 순간에는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에만 집중하게 되는데 바로 이 순간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며 “과거를 회상하며 ‘그때 내가 노래도 불렀지’ 하던 한 어르신은 그림을 그리다 말고 직접 노래도 불렀다”고 전했다.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저절로 노래가 나오긴 힘들다는 게 정 박사의 설명이다.
이렇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느끼면 자신을 넘어 다른 사람을 수용하게 된다. 전에는 자기 말만 하고 화를 잘 내던 사람이 경로당에서 다른 사람들의 말에 집중하고 공감해주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회성이 좋아지는 한 예다. 이렇게 미술치료가 사회적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면 만족도는 특히 높아진다.
미술치료는 항상 감각적인 자극이 필요한 어르신들에게 다양한 자극을 준다는 이점도 있다. 나무, 솜, 크레파스, 천 등 다양한 미술재료로 느끼는 자연스럽고 다양한 자극은 뇌를 활성화시키고 치매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부천 오정보건소가 치매예방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만다라 그림 그리기’를 진행한 것이나 안산 단원보건소가 올 상반기에 진행했던 ‘똑똑해유(YOU)’ 치매예방 미술교실은 이 같은 장점을 활용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자극은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기관을 찾지 않더라도 개인적으로도 미술치료를 할 수 있다. 그 중에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만다라’ 그리기다.
만다라는 원이라는 뜻으로 불화(佛畵)의 하나다. 현대에 와서 정신의학자 칼 융에 의해 치료의 도구로 발전했다. 융은 만다라에 대해 ‘내면세계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원과 원 안의 형태를 직접 그리기도 하지만 형태를 만들기 어려운 사람은 만들어져 있는 형태에 색만 칠하면 된다. 다만 만다라 그리기는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외에도 색연필로 그리고 싶었던 것을 그리거나 종이접기, 조화로 집 꾸미기 등도 도움이 된다.

 

* 도움말 주신 분=정여주 박사. 독일 쾰른 대학교에서 교육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미술치료 워크숍과 임상감독, 서울여자대학교 특수치료전문대학원 미술치료 교수를 거쳐 현재 정여주 미술치료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저서로는‘노인미술치료’‘미술치료의 이해’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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