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한학자 도움받아 읽고 메모하길 6~7년 했지요”
“조선왕조실록, 한학자 도움받아 읽고 메모하길 6~7년 했지요”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4.07.04 11:44
  • 호수 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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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송사극 개척자’신봉승 작가

조선 선비처럼 사회문제에 책임지고 물러나는 장관 못 봐
5년전 폐암 선고, 약 안먹고 무관심하니 지금껏 별 탈 없더라


국무총리 후보 2명이 잇따라 낙마하고, 사퇴했던 총리가 유임 되는 가운데 일본의 아베 총리는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드는 등 국내·외 분위기가 혼란스럽다. 해법을 조선 5백년의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제1세대 방송사극 개척자’ 신봉승(81) 작가를 찾았다. 서울 관훈동 백상빌딩 10층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 마주앉아 난세를 푸는 지혜를 비롯해 전성기 시절의 에피소드, 노인의 고독사 문제 등에 대해 들었다.

-사무실이 꽤 크다.
“인사동 한복판이라 자리가 참 좋아요. 역사서적 전문 출판사 회장이 이 방과 전화 같은 집기를 내줘 7,8년 잘 썼다가 그 양반이 돌아간 후로는 임대료 내기가 힘에 겹기도 해요. 탁 털고 일어설 용기도 없고 울며 겨자 먹기로 있는 거지요.”

-문창극 총리 후보 사퇴를 어떻게 보나.
“언행을 그렇게 하면 총리될 자격이 없는 거지요. 총리라면 몸가짐이 가지런해야 하고, 언행이 똑 바라야 하고, 책임감이 있어야 해요. 조선시대 법도이지만 지금도 통해요.”

-재발 방법은 없을까.
“조선시대에는 발탁이란 게 없었어요. ‘과거’에 급제하더라도 9품부터 밟고 올라가 능력이 되면 1품도 되고 판서도 되고 영의정도 되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대통령이 마음에 들면 하루아침에 전북의 무슨 교수가 총리가 되는 식이에요. 예를 들어 안전행정부에 9급으로 들어가 10여년을 꼬박 일해 사무관이 됐다고 쳐요. 절간에 들어가 3개월 고시 공부해 합격한 젊은 사람이 그 위로 덜컥 앉는 나라가 어딨어요.”

-고시를 없애라는 말인가.
“그럼요. 공무원 시험은 딱 한 번만 보면 되는 거예요. 그게 일제 잔재 중 하나에요. 일본이 식민지 한국을 다스리기 위해 사람이 필요했고 서둘러 뽑으려고 고등문관제도를 만들었어요. 일정 때 이 시험에 합격하면 바로 군수로 나갑니다. 내 외삼촌도 20대 때 합격해 삼척군수로 나가는 걸 봤어요. 그것이 바로 오늘날 사회의 적폐를 만드는 원인이에요.”

-문 후보의 경우는 청문회까지는 가야 한다는 여론도 있었다.
“조선시대는 임명되는 순간 검증이 다 끝나요. 왕과 신하가 국정 등을 논하는 ‘경연’이란 제도가 있었어요, 10명의 경연관과 왕이 오전, 점심, 저녁, 밤 등 하루 네 차례 만나 토론을 해요. 이 과정에서 누가 말을 잘하고 누가 거짓말을 잘 하고 다 아는 거지요. 그게 바로 검증입니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이를 고위관직에 임명하는 건 국민을 우습게 아는 행위에요.”

-아베 총리가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었다.
“신문·TV에서 떠들썩한데 그거 전부 과대한 겁니다. 일본이 무장한다고 전쟁을 어떻게 일으키겠어요. 전에는 중국이 형편없는 나라였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이제는 우리나라 GNP가 2만 달러가 넘어요. 전쟁 못 일으켜요.”

-현 상황이 구한말과 비슷하다며 우려하는데.
“어디가 같아요? 지금이 훨씬 낫지요. 그런 얘기 자꾸 만들지 말아야 해요. 국론이 통일되지 않았다고 그러지만 제국주의도 아니고 국론이란 게 통일돼야 하나요? 그러면 북한과 똑같아지게요.”

-좌편향 역사 교과서에 문제가 많다.
“말도 꺼내기 싫은 문제에요. 내가 고향이 강원도 강릉 3·8선 바로 아래 있는 동네에요. 6 ·25가 날 때 고1이었어요. 그날 친구 집에 가려고 길거리로 나왔는데 군인 지프차가 왔다 갔다하면서 휴가 나온 장병들은 속히 귀대하라고 방송하는 겁니다. 강릉에 8사단이 있었어요. 아니, 전날 휴가 보낸 부대가 어떻게 침략을 해요. 눈으로 본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 있는데 40대가 뭘 안다고 앉아서 북침, 남침 하는지 모르겠어요. 난 소름이 다 끼쳐요. 유치원, 초등학교 커리큘럼을 다시 짜 교육을 철저히 시켜야 합니다. 일본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국가관을 완벽하게 심어줍니다.”

-나라가 왜 이렇게 시끄러운가.
“일본의 명치유신처럼 자체의 근대화 과정이 없어서 그래요. 근대화라는 게 철도를 놓고 기차가 달리게 하고, 항구를 열어 세계와 교역하고, 은행을 열어 화폐를 통용시키고 하는 게 근대화이지요. 일본의 경우 레일을 100m 깔아놓으면 다음날 레일이 없어졌어요. 찬반 격론 때문이지요. 이걸 겪어야 국민이 성숙해지고 근대화 정신을 갖는데 불행히도 우리는 일제가 하는 걸 옆에서 찍소리 못하고 보기만 했던 거지요.”

신봉승 씨는 강릉사범학교를 나와 6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시인의 꿈을 갖고 있던 그는 시나리오 공모전에 ‘두고온 산하’란 작품이 당선되는 계기로 영화 시나리오 작가의 길을 걸었다.
‘하숙생’ ‘독짓는 늙은이’ ‘저 하늘에도 슬픔이’ 등 그가 시나리오를 쓴 영화마다 ‘히트 행진’을 이어갔다. ‘연화’, ‘윤지경’ 등 방송 사극물도 잇따라 시청률 대박을 터트리며 몸값도 최고에 달했다. TBC·KBS·MBC 등 세 방송국에서 서로 신씨를 독점하려고 해 전속금이 3억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MBC에서 ‘조선왕조 5백년’(1983~1990 방영)을 7년 9개월간 쓰는 동안 ‘방송 사극의 개척자’, ‘최고 대하드라마 작가’라는 칭호를 얻으며 스타급 작가가 됐다.
신씨는 “조선왕조 5백년을 시작할 때 약속한 방영 기간 2년 후에 보니까 ‘세종’이었다”며 “어떻게 할까 하고 방송국 측에 묻자 담당 제작이사가 ‘쓸 때까지 쓰는 거지 뭘 물어’라고 대답했다”고 기억했다. 방송사가 계약서 한 장 없이 한 작가에게 이처럼 장기간의 프로그램을 맡긴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신씨는 “세계 방송사에 찾아볼 수 없는 기네스 감”이라며 웃었다.

-영화 시나리오도 썼다고.
“총 113편의 시나리오를 썼어요. 국제극장에서 한 달 동안 관객 20~30만명이 봤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8개 체인으로 합산하지도 않았어요. 당시 서울 인구가 300만이었을 때 얘기죠. 지금으로 치면 1000만 관객 동원이나 같은 겁니다. 그런 영화가 수두룩해요.”

-돈도 많이 벌었겠다.
“그건 별로였어요. 영화감독은 현금으로 받았지만 작가는 3개월 어음으로 줬어요. 그걸 받아갖고 있으면 영화사가 4분의 1은 부도가 나요. 가서 싸울 처지도 못됐어요. 당장 하고 있는 일이 급했기 때문이지요.”

-연속 히트의 비결이라도 있는지.
“29세에 서울에 올라와 공보부 영화과에서 2년간 검열관을 지냈어요. 월급 받으면서 하루에 영화 보는 게 일이었어요. 하루 4편씩 근 1000여편을 봤어요. 나중엔 남녀의 만남과 이별, 고부간 갈등, 빈부 투쟁 장면 등 5만여개의 신이 머리에 들어가 있더라고요. 시나리오를 쓰는데 큰 도움이 된 거 같아요.”

-‘조선왕조 5백년’뒷얘기를 소개해 달라.
“조선왕조실록 원본을 해독할 한문 실력이 없어 한학자들에게 읽어달라고 하고 그걸 메모하고 녹음했어요. 그 일을 6~7년 했지요. 나중에 나라에서 지원하는 고전국역연구소에서 국역본이 나왔어요. 350쪽짜리 책 417권의 방대한 분량입니다. 나를 기준으로 이전 사람 중에 실록을 다 읽은 이가 없어요. 역사학자들 모임에서 내가 농담 삼아 ‘조선왕조실록 다 읽은 사람 나와 보라’고 큰소리치기도 했어요. 그거 다 못 읽어요. 재미없어서요.”

-‘조선왕조 5백년’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조선은 사람이, 선비가 다스리는 나라였습니다. 쉽게 말해 이원익 같은 영의정은 장마가 날 때마다 사표를 냈어요. 평생 3차례 영의정을 지냈는데 총 54번 사표를 냈어요. 하늘에 비가 그치지 않는 게 자기 탓이라는 것이지요. 이게 조선이 가지고 있던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대한민국 역사 66년에 사회 전체를 책임지고 물러나겠다고 사표 쓰는 장관 어디 있나요?”

-드라마 끝난 후 한 동안 소식이 끊겼는데.
“이 일이란 게 방송국에서 불러줘야지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드라마 끝나고 얼마 있다가 출판사에서 대하소설 ‘조선왕조 5백년’을 내자고 해 48권을 썼어요. 자질구레한 책을 합쳐 내 책이 총 124권 됩니다. 전에는 자주 했지만 요즘은 숨이 차 한 달에 너댓번 강연을 나가요. 난 한번 강연에 200만원을 받아요. 그걸로 사무실 임대료 내고 그래요.”

-노인이 고독사, 자살률이 높다는 얘기를 들으면 어떤가.
“여기서 가까운 파고다공원에 가끔 나가봅니다. 노인들이 3000여명이 있어요. 무슨 말들을 하나 옆에 가서 앉아 듣기도 하고 대화에 끼기도 해요. 나쁘게 말하자면 ‘무위도식’이에요. 할 일이 없는 겁니다. 사람마다 경우가 달라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건 일이 있고 경제력도 가지면 불행한 일은 적다는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직후 신씨에게 측근을 보내 정책 자문을 받기도 했다. 당시 신씨는 “조선의 27명 왕들이 즉위하면서 부모를 죽인 흉악범이 아닌 모든 죄인을 석방했듯이 사면복권을 하고, 우리나라의 표준시를 찾으라”고 일러주었다. 우리나라가 동경 시간에 맞추는 건 일제의 잔재이며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는 것이다.
신씨는 “세종대왕은 600년 전 ‘우리는 중국과 달라 중국식으로 농사를 지으면 안된다’며 ‘농사직설’을 펴냈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은 첫 번째 조언은 실행했지만 두 번째는 국제무역 간 복잡한 문제를 이유로 들어 실천하지 않았다고 한다.
예술원 회원인 신봉승 씨는 5년 전 폐암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투병은 남다르다. 폐암과 관련된 책 한 권 사보지 않고 항암 치료도 거부한 채 무관심하다. 그로 인해 불편하지 않아 ‘약을 먹자, 언제까지 고쳐야 한다’ 같은 생각이 없다고 한다.

분당에서 버스로 연구실까지 출·퇴근하는 신씨는 오전 10시, 사무실에 나와 수필이나 문집의 서문 등을 써주며 지내다 오후 5시면 퇴근한다. 신씨는 “버스 타고 오가는 시간이 나에겐 참 좋은 시간이다. 여러 가지로 무아경이 돼 생각하고 스스로 그 시간을 즐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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