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닮고픈 박 대통령, 위대한 업적 내려고 너무 욕심”
“아버지 닮고픈 박 대통령, 위대한 업적 내려고 너무 욕심”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4.07.18 11:32
  • 호수 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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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의회인’박관용 전 국회의장

첫 출마 때 셋방살이… 돈 없는 선거 치르며 6번 내리 국회의원에 당선

노인빈곤 줄이려면 대한노인회가 정부 상대로 구체적으로 요구해야 돼


6선(11~16대)의 박관용(76) 전 국회의장은 정치자금 받지 않고 돈 안 쓰는 선거 풍토를 남긴 깨끗한 정치인으로 평가 받는다. 최근 펴낸 ‘나는 영원한 의회인으로 기억되고 싶다’(조선뉴스프레스)란 자신의 책에서도 ‘돈 없는 국회의원이 지역구 관리를 하기 위해 주례를 2000건 정도 섰다’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박 전 의장은 또, 책에다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대통령탄핵 결의를 기각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적기도 했다. 탄핵소추 때 그는 의사봉을 잡았다. 지난 7월 15일, 서울 반포동에 있는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에서 박 전 의장을 만나 현실정치에 대한 쓴소리와 40년 의정 활동, 노인 문제 등에 대해 들었다. 박 전 의장은 대한노인회 고문이기도 하다.

-헌법재판소의 기각은 월권이라고.
“전 세계를 봐도 국회에서 탄핵을 하면 그것으로 끝이에요. 국민이 국회의원을 뽑을 때 탄핵권, 입법권을 준 것이고, 대통령에게는 행정권을 준 겁니다. 양쪽에 위임을 했다고 해 ‘이중적 위임’이라고 합니다. 대통령을 견제하는 건 국회 밖에 없어요. 헌법재판소는 국회의 의사를 존중하면서 탄핵 결정 과정의 절차적 합법성만을 따지는 것이 옳은 겁니다.”

2004년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편 가르기식 정치, 반의회주의적인 정치행태에 대한 반발로 탄핵을 결정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투표자 195명 가운데 193명의 압도적인 찬성을 얻어 가결됐다.
양원제를 택한 나라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하원이, 탄핵결정은 상원이 하지만 단원제를 택한 우리나라의 경우 탄핵소추권은 국회가, 탄핵결정권은 헌법재판소가 갖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일부 위반했으나 그 위반 정도가 탄핵의 사유가 될 정도로 중대하지는 않다”며 탄핵소추를 기각했다.

-그 이후 탄핵 얘기는 쑥 들어갔다.
“‘정치 쓰나미’처럼 한 번 지나고 나서는 아무도 얘기를 꺼내지 않지만 나는 권한이 없는 헌법재판소가 월권한 것이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해요. 교수들도 옳은 주장이라며 토론을 통해 바꿔야 한다면서도 아무도 나서지를 않아요. 그때도 언론이 강하게 비난을 했어요.”

-정치자금을 받지 않았다는데.
“내가 김영삼 대통령 비서실장(1993~1994)할 당시 강력한 의지를 갖고 돈 안 쓰는 통합선거법을 만드는데 참여했어요. 그런 사람이 남 주는 돈 받아서 선거를 치르면 말이 안되지요.”

-돈 안 들이는 선거가 가능한가.
“지역구(부산 동래)에서 내 인기가 돈을 안 받고 할 정도로 높았어요.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정치자금을 받았겠지만…. 처음 출마할 때 셋방살이하면서 10원도 없이 시작했어요. 당원들이 왔다가 돌아가기도 했지요. 돈 받고 싶으면 상대편으로 가라고 했어요.”

박 전 의장은 7월14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전당대회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지역구 대의원 40여명을 만나 일일이 악수하고 안부를 물었다.
박 전 의장은 “다른 이들은 의원 임기가 끝나면 연락도 끊어지지만 24년을 한곳에서 선거를 치른 나는 그들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현재 동래구 국회의원과 구청장이 모두 박 전 의장의 비서관 출신들이라고 한다.

-선거에 부인의 역할이 컸다고.
“선거가 시작되면 몇 달을 지역을 걸어 다녀요. 누구는 노래하고 가라 하고, 누구는 절하고 가라 하고, 누구는 밥값 내라고 하고…. 수줍음이 많은 아내가 그걸 모두 웃으면서 받아주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요. 한번은 내리막길에 굴러 10개월여를 누워 지낸 적도 있어요.”

-6선 중 일부는 부인 몫이겠다.
“친구와 골프 치러 갔다가 그 친구가 캐디에게 ‘누굴 찍었느냐’고 물었어요. 캐디 아가씨가 ‘박관용을 찍었다’고 대답하자 그 친구가 ‘박관용의 뭘 보고 찍었냐’고 재차 물으니까 ‘사모님 보고 찍었다’고 해요.”

-재산은 많이 모았는지.
“대한민국에 내 이름으로 된 땅 한 평 없어요. 망원동 살 때 수해를 두 번 입었고, 셋방살이를 9번이나 했어요. 지금 살고 있는 용산의 아파트가 유일한 재산이요.”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이 크다.
“물론 비리도 있겠지만 국회가 할 일을 제대로 안하고 싸움박질만 해서 그래요. 나도(싸움을) 했지만 내 때까지는 정통성이 없는 정권이었기 때문에 그랬지요. 쿠데타로 정권 잡은 전두환 정권을 두고 야당이 가만히 있었겠어요. 야당이 투쟁일변도의 생활을 해온 게 체질화됐어요. 이제는 타도할 정권도 없고 정통성 없는 정권도 없지만 야당은 으레 싸우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세월이 지나면 성숙해질 겁니다. 영국도 300년, 미국도 200년이나 걸렸잖아요.”

부산 출신의 박관용 전 의장은 동래고·동아대를 거쳐 한양대 대학원·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법학·행정학을 전공했다. 조봉암 선생의 유세장에서 정치테러를 목격한 이후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기택 의원 비서관으로 국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국회 전문위원을 거쳐 1981년 11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부산 동래에서 내리 6번 당선됐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2년간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다. 2002년 국회의장으로 선출돼 건국 초를 제외하면 대통령이 지명하지 않은 최초의 국회의장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36년 정치 인생 대부분을 의회에서 보내면서 한국 정치의 진정한 민주화는 의회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실천해왔다. 정계 은퇴 후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NDI)이사장, 동아대 석좌교수로 있다. 저서 ‘다시 탄핵이 와도 의사봉을 잡겠다’ ‘통일의 새벽을 뛰면서’ 등이 있다.

-‘NDI’는 어떤 곳인가.
“19년 전 비서실장을 그만두면서 문민정부 당시 장·차관을 지낸 분들을 중심으로 ‘마포포럼’을 만들었어요. 여기서 정책추진 과제에 대해 격론을 벌여 토스해주면 대통령이 받아서 참고하고 그랬지요. 그게 커진 겁니다.”

-주로 어떤 일을 하는가.
“매달 한 번씩 팔레스호텔 강당에서 조찬세미나를 하고, 일년에 한차례 고려대 북한문제연구소와 심포지엄을 해요. 연구원 문을 닫으려 했지만 일본과 미국에도 소문이 나 운영에 대한 협조도 들어와 그만두지 못하고 이어가고 있어요. 북의 급변 사태에 대한 정부측 자료는 우리 것밖에 없을 겁니다.”

-‘통일은 산사태처럼 온다’고 했는데.
“북은 그동안 외부 정보와 차단되고 조직화된 억압체제에 눌려 왔지만 요즘은 그쪽도 휴대전화 가진 이가 250만명에 이르고, 남한의 드라마도 많이 보고, 외부 원조를 통해서도 바깥세상의 정보가 들어가고 있어요. 북한 주민이 어느 순간에 더 이상 살기 힘들다고 터져 나올 겁니다. 무엇이 계기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시진핑은 한국을‘친구’라고 부르지만 거부감이 든다.
“과거를 잊으면 안 되겠지만 정치는 현실과 미래가 중요해요. 프랑스와 독일은 우리보다 훨씬 더 비참한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시진핑이 왜 한국에 목을 매는가. 중국이 강대국이 되면서 미·일·  한국이 삼각동맹을 맺고 중국을 포위하고 있어요. 이 포위망을 뚫으려면 한국밖에 의존할 나라가 없다는 거지요. 한국은 일본과 사이가 안 좋고, 중국에 경제적으로 의존 안할 수 없는데다, 북한 문제 해결에 중국의 도움이 필요하니까 이런 약점들을 이용하려는 겁니다. 미국과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하면서 중국과 잘 지내는 ‘균형외교’를 해야 해요.”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는 어떤가.
“지금까지는 외교는 잘 하고 있다고 봐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만나보니까 이 분은 정부가 일본과 너무 가까우면 국민들로부터 인기가 떨어질 것을 우려하는 것 같아요. 지혜를 가져야 해요. 대통령 혼자서는 못해요. 보좌진이 유능해야 합니다. 일본을 너무 등한시하면 안돼요.”

-박 대통령 혼자 다 하려는 욕심이 지나치다.
“박 대통령은 사심도 없고, 개인적 비리나 부정은 아예 저지르지 않을 사람이지만 너무 아버지를 존경하고, 아버지 업적이 너무 위대하고, 아버지가 돌아간 이후 너무 그리워한 나머지 아버지를 닮고 싶고, 아버지의 위대한 업적과 같은 성과를 내려는 욕심 때문에 잘못 돼가고 있는 겁니다.”

-세종시의 국가적 낭비가 크다.
“정부를 반쪽 낸 건 잘못된 겁니다. 기본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민과 상의도 없이 충청도 표를 얻으려고 수도 이전을 약속한 거지요. 이명박 전 대통령은 수도 옮기는 거 안 된다고 국민을 설득하고 밀고 나가야 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반대하자 포기했지요. 표를 얻으려고 끝까지 밀고나간 박 대통령 등 세 사람의 책임이에요.”

-노인 빈곤률을 낮추려면.
“우리나라는 고령화 사회에 들어갔어요. 그걸 해결하려면 첫째가 예산입니다. 무조건 노인을 위해 뭘 해줄 건가 요구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정년퇴임을 62세에서 63세로 올리자든가, 틀니를 무료로 해주자든가, 그런 구체적인 걸 자꾸 논의해야 정부가 노인에게 배당하는 예산을 올려줍니다. 노인이 할 수 있는 직종을 개발해 노인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을 비롯해 정부의 능력으로 얼마나 많은 노인복지혜택을 줄 수 있는가 그런 걸 대한노인회에서 따지면 됩니다.”

-임플란트 혜택을 보았는가.
“나는 몇 년 전에 해서 혜택을 보진 않았어요.”

박관용 전 의장은 ‘노인은 많지만 어른이 없는 사회’를 안타까워했다. 박 전 의장은 “우리 사회가 불행해지는 원인 중 하나는 어른이 어른 노릇을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물론 대가족이 아니고 핵가족이란 사정도 있겠지만 나부터 집안 자식 교육을 시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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