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연중 반값 세일’에 숨은 상술
‘아이스크림 연중 반값 세일’에 숨은 상술
  • 유은영 기자
  • 승인 2014.07.18 13:23
  • 호수 4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실제보다 가격 부풀린 후 대폭 할인한 것처럼 현혹

일부 제조업체는 판촉지원금… 판매업자만 배 불려


# 지난 7월 9일 저녁 공원을 산책하던 김모씨는 ‘아이스크림 70%세일’ 현수막이 내걸린 동네 마트에 들어갔다. 아이스크림을 20여개 골라 계산대에 가져갔더니 정가대로 다 받는 거다. 따져묻는 이씨에게 계산원은 “할인 안 되는 제품을 가져오셨다”고 대답했다. 이씨가 가져온 아이스크림은 모두 포장지에 권장소비자가격이 적혀 있었다.
#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이모씨는 인근 슈퍼에서 떠먹는 아이스크림 한 통을 샀다. 분명 냉장고에는 ‘50% 할인’이라고 붙여져 있었는데 주인은 5500원을 청구했다. 즐겨먹는 제품이라 가격이 5500원인 것을 알고 있었던 이씨는 “할인한다고 하지 않았냐”고 항의했다. 그러자 가게 주인은 “원래 1만1000원인데 반값에 파는 거다”고 오히려 큰소리쳤다.

권장소비자가격(권소가)을 판매업체가 정하도록 하는 ‘오픈프라이스제’가 폐지된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판매업자들의 배를 불리는 상술로 이용되고 있다. 마트, 수퍼마켓 등 판매(유통)업자들이 아이스크림 포장지에 소비자가격이 표시되지 않은 점을 이용해 실제로는 제값을 다 받으면서도 마치 대폭 할인해 주는 것처럼 소비자를 기만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아이스크림 판매업자들의 이같은 행태는 아이스크림 시장 가격을 전체적으로 올려 놓았다.
가격표시가 없는 제품의 경우 700원짜리가 50% 할인된 제품으로 둔갑해 그대로 700원에 판매되거나 본래 1000원짜리 제품을 1500원에서 500원 할인해 주는 식으로 판매하는 수법이다. 전국 유통업체가 아이스크림만큼은 1년 내내 할인행사를 계속하는 이유다.
빙과류 제조사들은 이런 판매업자들의 상술을 일관된 가격 숨기기 정책으로 부추기고 있다. 권장소비자가격을 다시 전 제품에 표시하도록 한 정부 권고를 지키지 않는 것이다.
소비자문제연구소 컨슈머 리서치가 최근 롯데제과, 롯데푸드, 빙그레, 해태제과 등 빙과 4사의 아이스크림 10개씩 40개를 대상으로 가격표시 실태를 조사했더니 가격이 표시된 제품은 14개로 35%에 불과했다. 오픈프라이스 제도가 지난 2011년 8월 폐지됐지만 아직까지 가격표시율이 워낙 낮아 판매업자들의 ‘반값 할인’ 등 기만적 상술의 빌미가 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롯데푸드는 조사대상 10개 제품 모두 가격표시를 안 해 놓았다.
일부 제조사는 유통 채널별로 가격 표시를 달리하는 꼼수까지 부리고 있다. 소비자가 많이 찾는 대표제품인 설레임․월드콘(롯데제과), 참붕어싸만코․투게더(빙그레), 부라보콘(해태제과)은 가격 표시제품과 미표시 제품이 시중에 함께 유통되고 있었다. 이는 제조사들이 유통업체들의 입맛에 맞춰 가격표시를 골라서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소비자는 아이스크림 가격이 얼마인지도 제대로 모른 채 ‘50% 할인’ ‘1+1’ 등 가짜 저가마케팅에 현혹되고 있는 셈이다.
아이스크림 유통질서와 가격혼란은 3년 전 시행한 오픈프라이스가 발단이 됐다. 제조사가 갖고 있던 가격 결정권을 최종판매점포로 넘기면 판매자끼리 가격경쟁을 펼쳐 소비자가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판매자마다 똑같은 제품에 다른 가격을 적용해 유통질서 혼란만 초래하고 오히려 가격이 과도하게 올라가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결국 오픈프라이스제는 시행 1년만에 폐지하고 권소가를 부활시켰다.
가격인하 효과를 기대한 정부 판단이 빗나간 이유에 대해 빙과 제조사 관계자는 “원래 제품 가격을 모르는 상황에서는 얼마만큼을 싸게 파는지 소비자가 알 수 없고 세일이라는 말에 현혹돼 다량 구매하는 소비자 심리를 판매업자들이 일종의 ‘담합’형태로 이용했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실제 소비자는 제품 가격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업체들이 가격을 슬그머니 올리더라도 이를 눈치채지 못한다. 반면 판매업자는 대폭 할인을 내세워 대량 구매를 유도해 이윤을 많이 남기게 된다. 소비자의 대량구매는 다시 제조사의 생산비용 절감으로 돌아간다. 제조사들은 자사 제품을 많이 팔아달라며 유통업체에 판촉지원금까지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소가 부활 후 3년이 흘렀는데도 제조사들의 참여는 저조하다.
빙과 제조사 관계자는 “판매처에서 가격 표시를 원치 않아 권소가 표시를 유동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며 “동네 슈퍼마켓은 가격표기를 하면 이윤을 많이 남길 수 없게 된다며 제품구입을 거부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한편 아이스크림 50% 할인이 가능한 것은 권소가 미표시와 빙과 제조사의 판촉지원금 외에 유통기한이 없어서다. 현행법상 아이스크림은 영하 18도 이하의 냉동상태로 제조 유통 관리돼 변질될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유통기한 표시를 생략할 수 있다. 대신 제조일자를 표기한다.
하지만 유통과정에서 온도변화로 아이스크림이 변질되는 사례는 종종 일어난다. 2012년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아이스크림 피해상담건수는 309건이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유통기한이 없기 때문에 동네 슈퍼에선 제조한지 수년이 지난 제품도 가끔 발견된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