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냄새지?“나는 그 정체를 알아도… 모른다”
무슨 냄새지?“나는 그 정체를 알아도… 모른다”
  • 김지나 기자
  • 승인 2014.08.01 13:51
  • 호수 4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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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 풍기기’
▲ 연극은 노인의 고독사를 통해 메마른 현대사회를 그려냈다.

노인 고독사 다룬 작품… 인간 이중성 드러낸‘반전’묘미
자기 일에 바빠 주변에 무관심한 메마른 현대 사회 조명


당신이 탄 지하철에서 한 노인과 건장한 청년 사이에 사소한 다툼이 일었다. 다툼은 점점 커져 서로 밀치는 몸싸움으로까지 번져 자칫 노인이 다칠 수 있는 상황이라고 가정하자. 당신은 그 상황에 뛰어 들어 말릴 것인가, 아니면 귀찮은 일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모른 척 할 것인가.
지난 7월 27일 막을 내린 연극 ‘냄새 풍기기’는 극장을 찾은 관객에게 가볍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유쾌한 농담에 웃고 즐기는 사이 맞닥뜨리는 반전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나름 잘 살아왔다는 안도를 머쓱함으로 바꾸어놓는다.

후미진 곳에 위치한 낡은 세진빌라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산다. 30년을 개인 기사로 일하고도 개인택시를 모는 아저씨, ‘대박’을 노리며 경마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남편, 그런 남편에 지쳐 반상회 회장을 맡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내, ‘공동체’를 외치는 시간강사 장 교수, 얼른 취업해서 소속감을 가지고 싶은 청년, 그리고 폐지를 주우며 살아가는 할머니.
그런데 어느 날부터 빌라 주변에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낡은 건물에서 나는 냄새라고 말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역해지기만 할뿐 가시지 않는다. 탈취제를 뿌리고 세제로 바닥을 닦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
바닥만 닦을 뿐 다른 방안은 찾지 않는 주민들은 그들 중 가장 고학력자인 장 교수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얼마 후 장 교수가 등장하고, ‘공동체’를 주장하는 교수를 중심으로 주민들은 악취의 원인을 추적해 나간다. 한 명 한 명 냄새에 대한 자신의 기억들을 떠올린다.
기억을 떠올리는 사이 한 데 모인 주민들의 상처가 드러난다. 개인기사로 일하며 평생 지시만 받았던 아저씨는 수상한 냄새가 나지만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평생 스스로 확신하거나 결정하는 일 없이 하라는 일만 수행해온 탓이었다.
반상회장인 ‘아내’는 경마장에 드나드는 남편 덕분에 아직 아기를 갖지 못한 삶을 한탄한다. 백수 청년은 학자금 대출을 받아 대학을 졸업하고도 정규직 채용에서 매번 떨어졌다.
강퍅한 세상을 살면서 얻은 상처들이 드러나며 심각해지는 듯했던 무대는 ‘남편’이 청년을 위로하고자 경마장에서 어렵게 구했다는 ‘운명의 동전’을 장난스럽게 던지는 것으로 밝아진다.
순간 저 멀리 반 지하 근처로 굴러가는 동전. 동전을 찾으러간 청년은 역한 냄새를 맡고 괴로워하며 뛰쳐나온다. 악취의 근원지는 바로 반 지하 혼자 사는 할머니의 집이었다.
반전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극은 시계를 반대로 돌리듯 바닥을 청소하던 그 전날로 돌아간다. 출근을 하던 중 역한 냄새를 맡고 구석구석 살피던 장 교수를 비롯해 빌라 주변 샅샅이 냄새를 맡아보던 ‘아내’까지 주민들은 하나같이 반 지하 계단에서 걸음을 멈춰서고, 코를 움켜잡으며 황급히 그곳을 빠져나온다. 모두들 노인의 죽음을 짐작하면서도 그 일에 엮이지 않으려는 듯 모른 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극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주민들을 비추는 조명. 모두 시치미를 떼고 여전히 모르는 척 하려는 주민들을 마주한 관객들은 묘한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특히 공동체를 외치던 장 교수의 모순된 행동에 이맛살이 구겨진다.
장 교수와 ‘아내’는 여전히 “마을의 소각장 냄새도 악취에 한 몫 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진실을 외면한다.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괴로워하던 청년 역시 “이번만이라도 어딘가에 속하고 싶다”며 장 교수의 편에 선다.
오직 ‘남편’만이 공동체를 강조하던 장 교수를 향해 “어쨌든 당신의 뜻대로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일치해서 참 좋겠다”며 비아냥거릴 뿐이다. 이 대목에서 관객은 진실을 향한 작은 희망을 가질지 모른다.
그러나 이 또한 청소업체가 등장하면서 무너져 내린다. “냄새나는 곳이 어디냐”는 업체의 직접적인 질문에 ‘남편’은 “그런 곳이 없다”며 말을 바꾼다.
결국 각자 핑계를 대며 한 명씩 사라지고 텅 빈 무대는 할머니의 고독사를 알리는 짧은 뉴스 멘트로 채워지며 어두워진다.
연극은 노인의 고독사와 주변의 무관심, 비합리적인 집단사고(소규모 집단에서 다른 대안이나 이의 제기를 억제하고 자기들이 정한 입장을 최선이라고 믿고 합리화하려고 하는 현상) 등 전하려는 바가 명확하다. 특히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이 이미 죽은 줄도 몰랐던 무관심과 ‘알았더라도 모르고자 하는’ 주민들의 자세는 현대인의 메마른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한 관객은 “내 입장이었더라도 모른 척 했을 것”이라며 “하루 하루 힘들게 사는데 나쁜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고, 여러 사람이 동의한 의견이니 옳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마지막까지 진실하고자 노력하지만 결국엔 다수에 편승하는 ‘남편’의 미묘한 감정변화도 인상적이다.
연출가 이재윤 씨는 “집단에 자리잡은 인간은 내부의 정당성을 믿게 되는데, 이 집단화의 정당성은 때로 부정성과 편협함을 지닌다”며 “그들에겐 소소한 외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절실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극은 시종 찝찝한 냄새를 떠올리게 하고 어느 순간 뒤통수를 때리더니 마지막에는 처연한 여운을 남기고 끝이 난다. 사람 냄새가 사라진다는 요즘, 우리는 각자 어떤 냄새를 풍기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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