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에게서 받는 포근함
노인에게서 받는 포근함
  • 김지나 기자
  • 승인 2014.09.26 11:40
  • 호수 4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걸핏하면 하늘을 올려다보며 달을 보게 한 드라마가 있었다. 서울에 상경한 두 청년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달동네 서민들의 삶을 그린 드라마 ‘서울의 달’이다. 이 드라마는 지금까지도 ‘최고의 드라마’로 회자된다.
‘제비족’으로 거듭나 사기를 치며 세상을 쉽게 살려는 홍식을 연기하는 한석규와 순수하고 착한 춘섭 역의 최민식, 홍식의 춤선생 김용건, 고등학교 미술교사로 등장하면서도 ‘변태’란 별명을 가진 백윤식 등이 등장해 서민들의 애환을 대변했다.
요즘 이와 같은 냄새를 풍기는 드라마가 조용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한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 중인 ‘유나의 거리’다. ‘서울의 달’을 쓴 김운경 작가가 극본을 맡았다. 그래서인지 시간적 배경이 현재이면서도 자꾸 20년 전에 떴던 ‘달’을 떠올리게 된다. 김수현 작가는 “요즘 이 드라마가 날 웃게 한다”며 “같은 동업자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극찬했다.
이 드라마의 배경 역시 서민들이 모여 사는 한 다세대 주택이다. 전직 소매치기 유나(김옥빈)를 비롯해 어려운 환경에서도 경찰공무원을 꿈꾸며 바르게 살아가는 청년 창만(이희준), 유부남을 만나며 술집을 운영하는 미선(서유정), 전직 깡패 만복(이문식)과 장노인(정종준) 등이 등장한다.
그런데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은은한 서정성을 느끼게 하는 이 두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왠지 노인 캐릭터들에 눈길이 간다. 서울의 달에서 뭔가 없어 보이고 ‘찌질해’ 보이지만 돌아서서 툭툭 던지는 말이 인정을 느끼게 하는 ‘한물 간 춤 선생’이나 ‘유나의 거리’에서 전직 깡패였지만 등에는 산토끼 문신을 하고 현재는 치매기까지 보이는 ‘장노인’ 말이다.
“죽더라도 당일 날 발견되고 싶다”며 고독사를 걱정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도 하지만 두 노인 모두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힘들이지 않는 목소리로 “사는 게 다 그런 거야”라며 사람들을 위로하고 청년들에게 지나가듯 무심한 말투로 조언한다. 별로 도움 될 것 같지도 않은 말인데도 노인만이 전할 수 있는 깊이와 포근함이 배어 있어 왠지 안심하게 된다.
이런 노인의 모습은 비단 드라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취재차 갔던 노원구 달동네 백사마을에서, 강남 판자촌 구룡마을에서 만난 노인들은 기자에게 수확하던 가지를 한 아름 안겨주기도 하고 오히려 “힘들겠다”며 물 한잔을 건넸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요즘 노인들의 포근함을 생각해보게 되는 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