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권 열심히 보급 ‘건강 장수’에 기여하고파”
“태극권 열심히 보급 ‘건강 장수’에 기여하고파”
  • 이상연 기자
  • 승인 2014.10.10 10:19
  • 호수 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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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찬 대한태극권협회 총교련
▲ 부채를 들고 태극권을 시연 중인 이 찬 대한태극권협회 총교련. 사진=조준우 기자

20대에 태극권 접하고 매혹…‘화’다스리는 법 깨달아
노인도 쉽게 하는‘건신12단금’… 요청만 하면 달려가 지도

태극권 8단의 세계적인 ‘고수’가 한국에 있다. 바로 이 찬 대한태극권협회 총교련(60)이다. 그의 영향력은 국제적이다. 1996년부터 현재까지 세계태극권연맹 부주석 자리를 맡고 있다는 사실이 그 방증이다. 국제대회가 열리면 심판으로 초빙되거나 경연장에서 태극권을 시연해 보인다. 또한 여러 나라를 돌며 순회 지도를 펼치거나 우리나라 선수단을 이끌고 대회에 나가 각종 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이토록 비범치 않은 이력의 그가 오래전부터 노인들의 건강에 시선을 두고 태극권 ‘건신12단금’ 보급에 매진하고 있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태극권의 매력을 알게 된 계기는.
“10세 때부터 태권도, 18세 때부터 중국무술을 했었죠. 그러다 20대 초반, 우연히 태극권 수련 서적「태극권체용전서」를 손에 넣게 됐는데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태극권의 지향하는 바가 그간 제가 추구하던 수련 방향과 달랐어요. 당시 저는 오직 신체적인 강함만을 추구했어요. 마음속에는 ‘화’(火)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말이죠. 반면, 태극권은 신체단련만큼 정신수양의 필요성도 강조하고 있었죠. 그때부터 독학에 들어갔고, 서서히 마음속의 ‘화’를 식혀갈 수 있었습니다.”

-책을 통한 수련에는 한계가 있을 터인데.
“당시 화교 학교에 다니던 친구 여동생이 내용을 번역해줘 글을 보고 따라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번역본을 통해 본 태극권은 제게 ‘신세계’였어요. 얼마나 즐거웠던지 수련에 수련을 거듭했죠. 그래서 저는 제가 꽤 높은 경지의 태극권을 구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태극권 수련제일의 비결을 ‘송’이라고 부르는데 저는 대단히 높은 수준의 송을 지닌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판단은 오산이었다. 1988년 대만으로 국술(우슈) 국제심판 교육을 갔을 때 만난 진정의 선생의 태극권 시연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진정의 선생님의 동작들은 그간 제가 해왔던 동작들보다 훨씬 여유가 넘쳤고 그 안에 든 힘도 더욱 강했습니다. 그때 ‘아차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싶었죠.”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에 지나지 않았음을 느낀 그는 2년 뒤, 진 선생의 소개로 세계적인 태극권 고수 국홍빈, 서억중 선생을 만나 다시 한 번 깨달음을 얻는다. 태극권이 추구하는 ‘기’의 흐름과 심신합일의 진정한 의미를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 경험을 통해 그는 태극권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도 얻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 순간 그의 뇌리에 ‘이 좋은 운동을 다른 이들에게 전파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 대상은 우리나라의 노약자들이었다.
“몸과 마음을 동시에 단련시키는 운동이 흔치 않잖아요. 하지만 태극권은 그게 가능했어요. 그 길로 귀국해 보급을 위한 기반을 다져나갔습니다. 보급을 위한 첫 단추로는 남녀노소 다 따라할 수 있는 ‘건신12단금’을 선택했습니다.”

-왜‘건신12단금’인가.
“건신12단금은 중국 항일전쟁 당시 남경으로 피신해 있던 태극권 고수들이 ‘양생술’을 총망라해 현대적으로 재정립한 운동입니다. 양생술의 기본 개념은 ‘사전에 병이나 몸의 이상을 예방한다는 것’인데, 노약자를 위한 운동으로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없었어요. 진정의 선생님이 제 앞에서 첫 선을 보였던 태극권도 건신12단금이었고요.”
하지만 태극권 보급은 쉽지 않았다. ‘태극권’이라는 이름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그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1991년, 서울시가 시민들의 건강을 위한 운동교실 사업차 여러 종목을 찾던 중 그 중 하나로 태극권도 채택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1991년 한강시민공원에서 국내 최초의 태극권 교실을 열 수 있었다. 물론 수련생들에게는 ‘건신12단금’을 지도했다.

-태극권 보급의 물꼬를 텄는데.
“그때부터 다양한 시도를 했어요. 같은 해에 세계태극권연맹 대한민국총회와 대한태극권협회도 창립했고, 2년 뒤인 1993년에는 현재도 운영 중인 태극권 전문 도장 ‘이찬태극권도관’도 열었죠. 또 1996년과 2010년에는 서울 리베라호텔에서 ‘세계태극권명가시범대회’를 개최해 우리나라와 해외 여러 나라 태극권 단체 간의 교류에도 신경 썼어요.”
이런 노력 덕분에 그는 중화민국 태극권 총회 갑종 훈장(2회)과 싱가포르 전국 무술교련협회 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편 그 사이 장성한 그의 두 딸과 부인도 그의 곁에서 손과 발이 돼줬다. 세 사람은 모두 태극권 수련 20~30년차의 고수들이다. 특히 둘째딸 이가인(30)씨는 그의 도관에서 사범으로 활동 중이다. 2011년 발간한 서적 ‘30분 태극권-테라피 타이치’ 집필에도 큰 힘을 줬다. 이런 든든한 ‘지원군’ 덕분인지 그간의 노력들이 조금씩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노인 전문 시설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지도편달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럴 때면 어느 곳이든 달려갔죠. 10년 전부터는 제 손으로 모자라 전문 지도자도 양성 중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같은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태극권에 입문하려는 노인들을 위한 당부 사항은.
“우선 ‘여유’를 가지셔야 합니다. 이에 더해 마음을 비우시는 것도 중요해요. 태극권은 절대 급해선 안돼요. 자신이 소화 가능한 일정량을 파악해 그에 맞춰 천천히 점진적으로 운동량을 늘려나가셔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소기의 성과를 얻으실 거예요. 그런 사례들을 제 눈으로 수 없이 봐왔습니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사실 무술 수련에 대한 갈급함은 없습니다. 오직 목표는 노인 분들을 포함한 대한민국 많은 사람들이 태극권 수련으로 ‘건강한 장수’를 영위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 목표이자 저만의 ‘송’ 추구를 위한 당위성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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