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무임승차제 35년
지하철 무임승차제 35년
  • 차흥봉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
  • 승인 2014.11.07 15:00
  • 호수 4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는 우리나라 노인들이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는 경로우대제도를 처음 만들었다. 지금부터 34년 전 보건복지부 노인복지담당 공무원으로 일할 때 제정한 ‘경로우대제도 운영규정’이 바로 그 근거 법령이다. 나는 이 제도를 만들기 전 해인 1979년 국제사회보장회의 참석차 구 소련을 방문하였다. 러시아가 개혁·개방을 하기 전인 당시 우리나라와 소련 사이에는 국교가 없었다. 한국 사람이 소련여행을 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때였다. 회의 주최측이 소련국적기를 이용하면 무료혜택을 제공한다고 했지만, 겁이 나서 그 비행기를 타지 않고 일본 비행기를 이용할 정도였다.
참으로 어렵게 모스크바를 방문한 길이라 회의 기간 중 일요일에 모스크바대학을 구경하기로 마음먹었다. 호텔에서 지하철을 이용하여 대학인근 역에 내렸다. 주변에 물어보고 대학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갈아탔다. 대부분 학생 이용자들이 버스요금으로 동전을 요금통에 넣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할머니 한 분은 동전이 아니라 버스표 같이 생긴 조그마한 종이를 요금통에 넣었다. 같이 탄 대학생에게 “저 할머니는 왜 돈을 넣지 않고 흰 종이를 사용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 대학생 대답이 소련에서는 노인에 대한 경로혜택으로 시내버스를 무료로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그동안 공산주의 국가란 사람이 사는 데가 아니라는 교육을 받아온 나로서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노인을 어른으로 대접하는 인간적 서비스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소련여행 후 돌아오자마자 당시 보건복지부장관에게 모스크바에서 체험한 것을 보고하고 건의 말씀을 올렸다.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에서도 노인을 위한 경로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야말로 노인을 위한 경로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1979년 당시에는 노인복지법도 없었고, 국가의 노인복지제도란 45개 양로원에 대한 생계지원 이외에는 사실상 아무 것도 없을 때였다.
장관이 나의 건의를 흔쾌히 받아주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경로우대제도이다. 지하철 무료이용 등을 그 내용을 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그 이듬해인 1980년 5월 8일 어버이날을 기하여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그 다음해에는 노인복지법상의 제도로 법제화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노인 지하철무임승차 제도가 지금까지 35년간 운영되고 있다. 지금부터 7년 전, 이 제도 시행 후 28년이 되던 해 나는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얼마동안 나는 지하철을 무료로 타지 않고 돈을 내고 이용하였다. 무임승차제도를 만든 사람이 스스로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는 것이 무언가 꺼림칙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후 몇 개월이 지났을 때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봉직해 왔던 대학의 총장과 국무총리까지 지내신 어르신 한 분을 서울의 어느 지하철역에서 만났다. 그 어르신도 매표창구에서 무료티켓을 받아들고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고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국가사회를 위해 많은 일을 하고 나이가 들어 아흔 가까운 어르신이 나라에서 만든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는 모습이 경로우대제도의 정신에 딱 들어맞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경험을 한 후 지금까지 나도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고 있다.
지하철무임승차 제도가 만들어지고 34년이 지난 지금 노인복지환경이 크게 변하고 있다. 노인인구가 크게 증가하고 있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노인 수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노인들이 무료로 이용하는 지하철 요금의 규모가 연간 수천억 원을 넘어서면서 지하철 적자운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제도를 폐지해야한다는 소리도 커져가고 있다. 노인은 왜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느냐는 젊은 세대의 비판의 목소리도 생기고 있다. 지하철 내의 경로문화도 변화하고 있다. 노인과 젊은이들이 자리 때문에 서로 눈치보고 서로 다투는 모습도 자주 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요즈음 지하철을 탈 때면 될 수 있는 대로 경로석에 앉지 않고 객차 한가운데 서서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경로’ 덕분에 무임승차하는 지하철인데 자리문제로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서 가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하니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지하철 무임승차에 대해 왈가왈부 논란이 커져가고 있는 지금,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도록 만든 경로우대제도가 단순한 노인복지보다는 우리의 오랜 전통인 경로효친사상에 기초하여 그 동안 국가사회 발전을 위해 헌신해 온 노인들에 대한 대우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국민 모두가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