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 위주 평가로는 학대 못 막아
서류 위주 평가로는 학대 못 막아
  • 한성원 기자
  • 승인 2015.01.23 10:51
  • 호수 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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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어린이집 등 사회복지시설
▲ 보육교사가 4세 여아를 폭행해 물의를 일으킨 인천의 어린이집이 복지부 평가인증에서 우수한 점수를 획득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노인요양원 등 사회복지시설의 평가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복지부 평가 최우수등급 요양원서 노인 학대 빈발
평가 시 서류 확인하는 수준… 대행업체들만 성업
요양보호사 등 면담 통한 질적 평가 이뤄져야

최근 인천의 한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가 4세 여아의 얼굴을 가격하는 모습이 담긴 CCTV 화면이 공개되면서 전 국민을 경악케 했다.
특히 해당 어린이집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으며 평가인증을 획득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당국이 사회복지시설 등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평가제도의 실효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노인요양시설의 경우 2년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이 해당 시설을 직접 방문해 정기평가를 실시해왔다.
그 결과 A등급부터 E등급까지 각각 최우수·우수·양호·보통·미흡 등으로 점수를 매겨 최우수기관(A등급)과 우수기관(B등급), 그리고 2등급 상승 기관 등에 가산금을 지급하고 최우수기관에는 인증마크도 수여한다.
문제는 현행 노인요양시설 평가제도가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노인학대 등을 제대로 평가하고 있느냐에 있다. 100점 만점에 각각 95.36점, 94.33점을 획득해 보건당국의 평가인증 기준 75점을 훌쩍 뛰어넘었음에도 보육교사의 아동학대를 예방하지 못한 인천 송도와 부평 어린이집의 경우처럼 말이다.
지난해 8월 경기도 평택의 한 요양원 원장과 요양보호사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입건됐다. 2013년 2월부터 9월까지 요양원에 입소해있던 노인 7명을 학대한 데 따른 것이다. 이들은 거동이 불편한 80대 노인 2명을 침대에 묶어둔 채 열흘 넘게 방치하는가 하면 야간에는 다른 노인 5명을 병실에 방치한 채 모두 퇴근해버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침대에 두 팔이 묶여 있던 한 노인은 대퇴부 뼈가 부러진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더 놀라운 건 이 요양원이 보건당국의 노인요양시설 평가에서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는 점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인천의 한 요양원 관계자는 “보건당국의 평가자가 직접 시설을 방문해 평가를 하지만 결국 서류를 확인하는 수준에 머무는 것이 문제”라며 “시설에 입소해 있는 노인, 그리고 이들을 보살피는 요양보호사 등과의 면담을 통한 제대로 된 평가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서류만 완벽하게 준비해 놓으면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대행해주는 업체까지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올해부터 노인요양시설의 정기평가 주기가 2년에서 3년으로 늘어난 데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해 말 예고한 ‘장기요양기관 평가방법 등에 관한 고시’ 일부 개정안을 통해 노인요양원 등 평가기관의 부담 완화를 위해 정기평가 주기를 변경키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노인요양시설 및 요양보호사 관련 단체들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기평가를 준비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경제적·시간적 노력에 비해 평가 결과에 따른 변별력이 크지 않다는 것.
다만 일각에서는 노인학대, 특히 관련 시설 내에서 발생하는 노인학대 사례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 같은 규제 완화가 다소 성급했다는 지적을 쏟아내고 있다.
실제로 복지부와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이 발표한 ‘2013 노인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요양원 등 노인생활시설에서 발생한 노인학대는 2008년 55건에서 2013년 251건으로 4.6배나 증가했다. 전체 노인학대에서 노인생활시설 내 학대가 차지하는 비중 또한 같은 기간 2.3%에서 7.1%로 크게 늘었다.
전문가들은 노인요양시설 평가제도가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서류 위주의 평가에서 벗어나 실제 요양서비스의 질적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국노인복지중앙회 관계자는 “예를 들어 요양보호사의 교육을 평가할 경우 이전처럼 서류를 통해 교육 실시 여부만 확인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직접 요양보호사를 불러 교육 내용을 숙지하고 있는지 등까지 검토해야 한다”며 “아울러 현행 줄 세우기식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전환해 모든 요양시설의 서비스가 일정 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재평가를 받도록 하는 등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인천 어린이집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대부분의 아동학대가 보육교사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노인요양시설 평가 시 요양보호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요양보호사협회 관계자는 “어린이집 보육교사도 마찬가지겠지만 노인요양시설의 요양보호사들 역시 업무상 스트레스가 많은 감정노동자인 점을 감안하면 이번 아동학대 사건을 비롯해 일련의 노인학대 사건들은 예견된 일”이라며 “열악한 근무환경과 처우 등 요양보호사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파악해 이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보임으로써 요양보호사들이 자긍심을 갖고 요양서비스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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