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양극화의 해답은 사람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정신에 있어요”
“사회 양극화의 해답은 사람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정신에 있어요”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5.01.23 11:25
  • 호수 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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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개발연구원 창립 40주년 맞은 장만기 회장

40년간 1823회 개최, 정상급 강연자 등 참석자 30여만명… 국내 조찬 모임의 효시
모임서 만나 공동창업도…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나’에 확고한 철학 가져야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인물들 가운데 ‘장만기’라는 이름 석자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가 이끄는 조찬 모임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됐고, 강단에 선 이들의 면면이 정상급이기 때문이다. 매주 목요일 오전 7시 시작하는 조찬 모임의 제목은 ‘인간개발경영자연구회’(지난해부터 월 1회 개최). 1975년 2월 5일, 조선호텔에서 첫 모임을 개최한 이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이어져와 올해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연구회를 창안한 장만기(78) 인간개발연구원 회장을 만나 40년의 의미와 롱런 비결 등을 들었다. 10명의 직원을 둔 인간개발연구원은 서울 대치동 휘문고교 앞 오래된 5층 건물 2층에 있었다.

 

-유명세와는 다르게 번듯한 빌딩조차 가지고 있지 않나보다.
“우리는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고 인간 개발에 주력했어요.”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았다고.
“1979년 10·26 다음날에도 열었을 정도니까요. 그동안 정권이 7차례 바뀌었고, 37세에 시작해 40년 동안 몸이 아플 때도 있고 사고가 났을 수도 있었겠지만 매주 연구회를 열었어요.”

-유사한 모임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대학교수도 잘 되겠다 싶어 대학에 조찬 모임을 열고, 경제인 단체도 하고, 국회도 하고 해서 우리나라 조찬 모임 문화가 하루아침에 생겨났어요.”

-왜 아침을 택했나?
“기독교의 새벽기도를 본받았어요. 기업인들이 밤낮으로 일에 쫓겨 지내니까 따로 시간 내기 힘들어 그 시간을 택한 겁니다.”

-어떤 인사들이 강단에 섰는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일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등 경제계 거물급을 비롯해 이명박·황장엽·안철수 같은 정치인·기업인·학자·예술가 등 대한민국의 대표적 인물들이지요. 김영삼·김대중·김종필 같은 분들은 조찬 모임이 정치활동 재개의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총 1823회를 했고, 토론에 참가한 이들이 30만명이 넘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강연했다고.
“그분이 강연하고 나서 ‘기업인과 경제문제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누군가를 만나 얘기하면 그 사람이 피해보게 돼 못했다’며 무척 고마워했어요.”

-위험을 감수하고 DJ를 초빙한 이유는.
“당시 88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이었어요. 올림픽 그거 우리 맘대로 열지 못해요. 올림픽을 열 정도로 한국의 정치·사회가 안정됐다는 걸 보여줘야 했거든요. 군사 정권의 요주의 인물을 대중 앞에 자유롭게 내세워 미국의 인정을 끌어내겠다는 심사였어요. 우리 연구회를 관할하는 정부 부처 고위 책임자가 강연 직전 저에게 전화로 걱정을 많이 했지만 실제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연구회를 만든 단초는 무엇인가.
“서울대 경영대학원 재학 시절에 우연히 ‘하버드비즈니스’ 리뷰에 실린 사회심리학자 데이비드 맥크릴랜드의 ‘성취동기 이론’을 보고 ‘이거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성취동기 이론은 뭔가.
“‘바이 아메리칸’이란 말을 아세요? 1960년대 나온 미국상품우선구입정책이에요. 겉으로는 후진국을 도우면서 자국의 잉여농산물을 처분하는 등 실속도 차리는 정책이었지요. 데이비드 교수는 이런 정책을 쓰면 미국이 고립된다고 경고하면서 돕고자 하는 나라의 지도자·정치인·경제인·종교지도자들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도록 교육하는 걸 도와주는 게 좋다는 말을 했어요. 감동적이었어요. 그때 국가 부의 창출은 국민의 마음속에서 일어난다는 생각을 갖게 됐지요.”

-구체적으로 얘기한다면?
“패전국에서 경제대국이 된 일본의 성공신화를 배워 적용한다면 우리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거지요. 그럼 누가 그걸 하느냐, 기업인과 경영인이 하는 겁니다. 회사를 세우고 주주가 된 기업인과 경영을 전문으로 하는 경영자가 함께 참여하는 연구회를 만들되 연구회의 주 내용은 뭐냐, 인간 개발이다. 사람의 능력을 개발하는 거지요. 또 하나, 우리는 출세지향주의 속에서만 살았지 남과 더불어 어떻게 살아야 되나, 그 점을 등한시 했어요. 연구회는 그걸 연구하는 기관이기도 합니다. 인간 존중이에요. 종업원은 기업에서 상품만 만들어내는 존재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기업이라는 공동체에서 바른 인생관을 가지고 성장하도록 만들고 회사를 나가서도 독자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해요. 그런 건 정부도, 교회도 하지 못해요. 우리가 그런 걸 하고 있는 겁니다.”

-초창기엔 어려움이 많았겠다.
“처음엔 저하고 아내하고 둘이서 다 했어요. 직원을 둘 여유가 없었으니까요. 아내가 강사 섭외서부터 행사 뒤치다꺼리까지 도맡아 하느라 고생 많이 했지요. 집은 전·월세 살면서 겨우겨우 해나갔어요. 연구회에 들어간 돈으로 집 몇 채는 살 수 있었을 겁니다. 인생을 전부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연구회 운영비용은 어떻게 마련했나.
“회원들의 회비이지요. 자기 밥값 내고 와서 공부한다는 뜻에서 30~50만원씩 연회비를 받았어요. 지금은 회원수가 1500여명 됩니다. 기업의 도움이나 정부 예산을 받았다면 쉬웠겠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비정치, 비종교, 비영리의 ‘3비(非) 원칙’을 지켰어요.”

-연구원이 급성장한 배경은.
“1970년대 초 노사분규가 막 일어날 때였어요. 박정희 정부가 그 문제로 골치를 앓았지요. 우리가 그쪽을 연구한다는 말을 듣고 의뢰를 해왔어요. 우리가 노동청(고용노동부)하고 전국 6개 도시를 돌며 최고경영자를 위한 노사협조세미나를 했어요. 100명 이상의 종업원을 둔 기업은 모두 세미나를 듣도록 했지요.”

-40년 성과를 말해달라.
“사람이 소중하다는 사실, 종업원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경영자들이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이 바로 부의 원천입니다. 돈·자본 없고 기술도 없는 나라가 세계적인 경제대국이 된 건 국민이 열심히 공부하고 지도자가 이걸 깨닫고 한 결과입니다. 우리 연구원은 40년 전에 창설돼 그걸 증명해준 겁니다. 그리고 최고경영자가 한자리에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동호회’도 생겨났어요. 서로 다른 업종에서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사업을 구상했지요.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도 동아제약 재직 시절 이 포럼에서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을 만나 공동 창업했고, 윤 회장은 수학자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와의 인연으로 ‘싱크빅’이라는 출판 비즈니스를 구상하기도 했지요.”

-‘땅콩회항’ 사건을 보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볼티모어의 기적’이 시사하는 바가 커요. 모두들 희망이 없다던 볼티모어에서 스포츠 스타 등 인재가 많이 배출되자 한 사회학자가 원인을 조사했어요. 사회학자는 그곳 출신들로부터 ‘우리에겐 훌륭한 선생님이 계셨다’는 말을 전해 듣고 마침 생존해 있던 노선생을 만나 ‘어떻게 가르쳤나’ 하고 물었어요. 노선생은 ‘I Loved them’(아이들을 사랑했다)이라고 대답했어요. 사람은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소중한 존재에요. 조현아 개인으로선 사회가 너무한다고 억울해할 수도 있겠지만 종업원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지 않은데 대한 벌이에요. 자살률 1위, 행복지수 하위권, 노사 갈등 등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양극화에요. 해답은 ‘인간 중심’에서 찾아야 해요.”

-100세시대 노인의 역할이라면.
“직업을 떠나서도 앞으로 40년, 50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건강을 잘 관리하고 계속 공부해서 남과 더불어 살도록 해야 합니다. 자식들이 볼 때 아버지, 할아버지가 비참하게 살면 무얼 배우겠어요. 멋지게, 건강하게, 사회에서 동요하지 않고 중심을 잡아가야 아이들이 존경도 하고 어른을 통해 인생을 배웠다고 할 겁니다. 사회를 책임지려면 나이와 상관없이 강해져야 합니다. 저는 여전히 새벽 3시에 일어나 운동하고 책도 읽고 그럽니다.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 나는 왜 사는가, 뭘 위해 살아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확고한 철학과 인생관을 가져야 해요. 이런 게 없이 숨만 쉬며 산다면 하루를 넘기기 힘들어요. 경로당이 막연히 시간만 보내는 곳이 아니라 자기 관리를 하고 서로 도움도 받는 교육의 장소로 바뀌어야 합니다. 최근에 대한노인회가 노인교육원을 마련하게 됐다고 들었어요. 거기서 그런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장만기 회장 프로필
서울대 대학원 졸업(경영학석사)/UCLA경영대학원 국제경영자과정 수료/명지대 경영학과 교수/코리아마케팅 대표이사/인간개발연구원 창립원장/한러친선협회 이사장/대한노인회 고문
저서 및 역서
‘인간경영학’ ‘간부와 자기관리’ ‘자조론, 인격론’ 등 다수
수상 경력
대통령 표창 산업교육부문(1997)/ 서울대학교 경영인대상(2004)/ 2010 CEO그랑프리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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