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례 없는 결혼식 늘어 주례 알바 시들
주례 없는 결혼식 늘어 주례 알바 시들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5.02.13 10:18
  • 호수 4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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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째 주례 해온 전직 교수 “최근 의뢰 건수 예년의 절반”

대기업 임원 출신의 송대상 씨(68·서울 거여동)는 7년 전부터 용돈이라도 벌기 위해 결혼주례 알바를 해오고 있다. 수려한 외모와 달변으로 일거리도 끊이지 않았다. 토·일요일 4~5건의 주례를 서 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 잘 될 때는 한 달 70만원까지 벌기도 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주례 의뢰 건수가 줄다가 요즘은 아예 일거리가 뚝 끊기기까지 해 다른 알바를 찾아야할 처지가 됐다. 송씨는 “주례 없는 결혼식이 유행하면서 주례를 찾는 신랑 신부가 눈에 띄게 줄었다”며 “이대로 놀 수는 없어 아파트 경비 자리를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 4~5년 전부터 주례 없는 결혼식이 늘면서 노인들의 주례 알바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결혼주례는 송씨 같은 퇴직한 노인들에게 안정된 수입을 보장하는 알바이다. 그런데 4~5년 전부터 결혼식이 이벤트화 되면서 주례를 찾지 않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노인들이 늘어나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10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는 결혼주례협회 이상덕(65) 대표는 “주례 없는 결혼이 늘면서 3년 전 4000건이 넘었던 의뢰건수가 작년에 3000건으로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건국대 교수를 지내고 방송프로에도 출연하는 이 대표 역시 결혼 주례를 11년째 해오고 있다. 이 대표는 “한창 잘 될 때는 토·일요일 7~8곳의 예식장을 돌며 주례를 섰지만 요즘은 반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결혼주례 알바는 대기업·은행·학교·군에서 퇴직한 60~70대 남자들이 주로 해오고 있다. 대부분 경력도 화려하고 외모도 출중한 편이다. 결혼주례협회는 일자리박람회에서 구직을 원하는 이들의 이력서를 받아 이 가운데 스펙이 좋은 이들을 선별해 주례 알바로 채용한다.

주례사 대신 둘만의 서약, 양가 부모의 덕담 형태로 변화

사례비는 10만원 선. 이 가운데 웨딩컨설팅업체가 수수료 30%를 챙기고 결혼주례협회가 남은 금액의 일정 부분을 가져가 결국 주례 당사자에겐 3~4만원이 주어진다. 이런 이유로 일부 노인들은 협회에 가입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홈페이지를 만들어 의뢰인과 직접 접촉하는 경우도 있다.
주례 없는 결혼식이 느는 이유는 전통 결혼식에 대한 거부감을 갖거나 새로운 유행의 결혼식을 찾기 때문이다. 현대의 젊은 커플들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예식의 주체가 돼 가족 친지와 함께 즐겁고 영원히 기억될만한 축제의 장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들은 딱딱한 주례사 대신 둘만의 사랑의 서약이나 부모님에 대한 감사편지 낭독, 이색축가 등으로 예식을 진행한다. 또한 주례사가 시작되자마자 하객들 대부분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으로 몰려가는 등 기존 결혼식의 낯뜨거운 면도 주례 없는 결혼식을 선호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오는 5월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 박고을(33·서울 논현동)씨는 “처음엔 주례 선생님을 모시고 하려 했지만 친구의 독특하고 멋진 결혼 예식을 보고 난 후로 생각이 바뀌었다”며 “마땅히 모실 주례 선생님도 찾지 못해 차라리 양가 아버님에게 덕담을 부탁했다”고 말했다.
서울 역삼동의 대형 웨딩홀 매니저로 일하는 김소영(37)씨는 “지난 주말에 열린 24차례 결혼식 가운데 주례가 있는 경우는 13차례에 불과했다”며 “주례 대신 양가 아버지가 성혼선언과 덕담을 해주는 게 요즘 유행이다”고 말했다. 하객들의 반응도 좋다. 최근 주례 없는 결혼식을 다녀온 장국진(66)씨는 “처음엔 거부감도 생겼지만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면서 생동감이 생기고 하객들의 집중도와 참여율도 높아져 결혼식 내내 기분이 유쾌했다”고 말했다.
주례의 빈자리는 전문 사회자들이 대신하고 있다. 5년째 전문 사회자로 활동 중인 정소영(34)씨는 “신랑 신부의 연애담을 바탕으로 토크쇼, 뮤지컬을 선보여 반응이 좋다”고 했다.
그러나 신성하고 엄숙해야할 결혼식이 즉흥적이며 가벼운 쇼처럼 치러지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이상덕 대표는 “우리나라 민법에서 규정하는 결혼식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큰 문제”라며 “신랑 신부가 증인(주례) 앞에서 남편, 아내가 되겠다고 약속하는 건데 증인 없이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에서는 주례 없는 결혼이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로 주례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주례가 실질적으로 신랑 신부와 하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주례사를 하지 못하고 ‘검은머리 파뿌리…’식의 판에 박은 주례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줄이기 위해 대부분 결혼주례협회에서는 자체 교육을 실시한다. 결혼주례협회의 한 회원은 “진정성 없는 주례사를 지양하고 감동을 주는 주례사를 하도록 교육을 받는다”며 “내 경우는 결혼식 전 신랑 신부의 성장과 교제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이메일을 통해 주고 받아 그들에게 맞는 맞춤형 주례를 해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례 없는 결혼식을 선호하는 젊은층이 늘어나면서 주례 알바로 용돈을 버는 노인들의 호주머니는 더 가벼워지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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