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 간 배우가 슈퍼스타로 날아오를 수 있을까
한물 간 배우가 슈퍼스타로 날아오를 수 있을까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5.03.06 13:34
  • 호수 4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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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작품‧감독상 휩쓴 영화 ‘버드맨’
▲ ‘버드맨’은 주연을 맡은 마이클 키튼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블랙코미디다. 사진은 영화 속 주인공이 환각에 빠진 모습.

퇴물 배우가 연극에 도전하며 겪는 이야기 다룬 블랙코미디
사실과 거짓이 뒤섞인 혼탁한 사회 살아가는 우리 모습 그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의 한 극장에서 ‘미국의 안톤 체호프’라 불리는 레이먼드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 공연되고 있다. 연극은 주인공이 부정을 저지른 아내와 그의 정부를 죽이기 위해 총을 든 결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아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모든 것을 체념한 주인공은 ‘난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스스로를 조롱하는 대사와 함께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눈다. 영화 ‘버드맨’이 절정에 달한 순간이다.
지난 2월 22일 개최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등 4개 부문을 휩쓴 영화 ‘버드맨’이 개봉했다. 영화는 한때 버드맨이라는 작품에 출연해 큰 인기를 모았다가 이후 변변한 히트작을 내지 못한 리건 톰슨이 연극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다룬 블랙코미디다. 특히 영화는 리건 톰슨 역을 맡은 마이클 키튼(64)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큰 화제를 모았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새(鳥) 가면을 쓴 영웅의 이야기를 그린 버드맨을 통해 미국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에 올랐지만 지금은 잊혀진 배우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 분)은 명성을 되찾기 위해 연극 무대에 도전한다. 사비를 털어서 의욕적으로 준비하지만 상대배우의 역량부족으로 난관에 봉착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리건은 브로드웨이에서 큰 유명세를 얻고 있는 배우 마이크(에드워드 노튼 분)를 영입하지만 오만한 마이크는 사사건건 리건과 부딪힌다.
또 마약중독으로 인해 재활원에 들어갔던 그의 딸은 다시 마약에 손을 대고 연극계를 좌지우지 하는 유명 평론가는 그의 연극을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악평을 예고한다. 영화 속에서 영웅 역을 맡아 강력한 힘으로 악당들을 제압했던 ‘버드맨’은 온갖 조롱 속에 점점 작아지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상황에 이른다.
영화는 편집 없이 한 번의 촬영으로 완성한 듯한 편집방식을 사용했다. 대부분의 영화는 연극보다 다양한 장소가 등장하기 때문에 여러 장면을 끊어 쵤영해 매끄럽게 이어 붙인다. 하지만 영화 버드맨은 장소의 이동이 물 흐르듯이 전개되면서 극장에서 연극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들게 한다. 영화의 첫 번째 감상포인트이다.
앞서 밝혔듯이 영화는 배우 마이클 키튼의 실제 이야기와 흡사하다. 키튼은 1990년대 배트맨1과 배트맨 2에 출연해 억만장자 영웅 ‘배트맨’역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후 제작된 3편에는 출연하지 못했고 이때부터 그의 인기는 추락하고 만다. 변변한 히트작도 없고 영화제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영화에서 리건의 이야기는 키튼의 이야기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실제와 영화 속 현실이 구별 되지 않는 것, 이 부분이 두 번째로 주목할 부분이다.
영화에서는 실제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감독과 배우의 이름이 그대로 등장한다. 주연배우들의 입을 통해서 실제 배우와 감독은 찬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조롱거리로 전락하기도 한다. 가짜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포장해 사실과 가짜 정보가 마구잡이로 섞여 있는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확대되면서 걸러지지 않은 정보가 많이 유통되고 있다. 몇 해 전 모 식당에서 임산부가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다. 하지만 불과 며칠 뒤에 다른 주장이 제기됐다. 임산부가 폭행을 당한 것이 아니라 폭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영화는 이처럼 무엇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러한 세계를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어떨까.
리건은 버드맨의 가면은 벗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그를 버드맨이라 부른다. 그가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팬티만 입은 채 돌아다녀도 사람들에게 그는 버드맨이었다. 리건은 버드맨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연극에 도전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버드맨이라 부르는 것에 화를 내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잊고 싶은 과거지만 동시에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기 때문이다. 결국 리건은 버드맨의 목소리가 들리는 환청과 초능력을 발휘하는 환각에 시달린다. 혼란에 빠진 리건은 큰 사고를 당하고 얼굴에 붕대를 감게 된다. 붕대를 감은 모습은 다시 가면을 쓴 것처럼 보인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본모습 위에 가면을 쓴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영화는 예술만능주의에 빠진 연극계를 비꼬면서 동시에 영화계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계는 이 영화에 각종 상을 수여하며 찬사를 보내고 있다. 비록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은 놓쳤지만 ‘팬티 투혼’을 펼친 60대 배우 키튼의 연기는 긴 여운을 남긴다.
3월 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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